대원 스님은 1986년에 학림사를 창건한 뒤 가장 먼저 어린이 포교에 관심을 두었으며 적극 운영해 나갔다. 그 결과 당시에 여건이 충분하지 못했음에도 한동안 학림사 주변 지역의 어린이들이 부처님 품 안에서 자랄 수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스님이 대웅전을 낙성한 뒤 어른들은 물론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들까지 모든 연령과 계층을 대상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골고루 가르치며 실천할 수 있게 하겠다는 원력을 세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님은 그 당시 어린이들에 대한 포교가 미미한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어린이를 비롯해 청소년과 대학생, 군인들까지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불자들을 대상으로 포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절실하다. 그렇기에 불가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해 오고는 있지만 그게 지속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데 문제점이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골고루 알려주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불교가 어떤 이득과 행복을 주는지 인식시켜주는 포교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평소에 이런 원력을 가진 스님이었기에 학림사를 창건한 뒤에는 어린이들부터 먼저 포교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곳으로 수소문하여 지도 법사로 비구니 스님을 초청했고, 또 어린이 포교를 도와줄 대학생들이나 젊은 직장인들이 동참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인근 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림사 대웅전에서 법회를 보게 한 것이 어린이 법회의 첫걸음이었다.
학림사에서 어린이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아이들이 참여해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실제로 어린이 법회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가서 부모에게 반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본인들의 생활도 모범적으로 바뀌어 나갔다. 그 결과 시간이 갈수록 모든 자세와 태도가 달라지고 좋아졌다는 평이 나왔다.
덕분에 학림사 어린이 포교는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창건 초기만 해도 부지가 좁은 데다 몇 년 뒤에는 오등선원과 오등시민선원 등이 건립됨에 따라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없어져 어린이 포교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받고 그 가치를 알게 되면 그런 교훈이 평생 이어진다는 게 대원 스님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미래를 위해 어린이 포교는 모든 사찰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시행해야 할 과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스님은 부득이하게 어린이 법회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상당히 아쉽다는 감회를 전하고 있다.
“어린이 포교를 지속하지 못한 것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어린이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심어 줄 수 있는 포교를 해야겠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지금의 학림사는 1995년에 상선원인 오등선원에 이어 2001년에는 하선원인 오등시민선원을 갖춘, 선 수행 사찰로 특성화된 가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학림사 오등선원에 방부를 들인 스님들은 여느 선방과는 달리 1년 용맹정진을 한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3년’ 용맹정진을 시작한 뒤 성만했으며, 그다음 해부터는 매년 1년씩 용맹정진을 하는 선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말하자면 어떤 스님이 방부를 들이면 처음엔 적어도 3년 동안 매일 철야를 하면서 하루 18시간 용맹정진에 임해야 하니 원력을 대단히 굳게 세운 스님들만 정진할 수 있는 곳이다.
용맹정진 중 포살 법회
한편 하선원인 오등시민선원은 전국에서 모인 일반 신도들이 석 달씩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시민선원과 별도로 운영되는 템플스테이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전국에서 동참하는 남녀노소 대중들이 저녁 8시에 한 시간 동안 법문을 듣고 난 뒤 밤 10시에서 새벽 3시까지 철야 정진을 한다. 다음 날 아침 공양 후에는 7시 30분에 다 함께 모여서 대중 전체가 전날 법문을 듣고, 철야정진한 것에 대한 느낌이나 깨달음에 대한 것을 점검하고 의심 나는 부분에 관해 대원 선사와 문답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학림사 템플스테이
다른 사찰의 템플스테이를 경험했던 사람이 학림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면 인생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깊이 탐구하고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인상적인 곳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학림사 템플스테이가 간화선 수행 위주로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스님이 이처럼 학림사를 선 수행 사찰로 가꾼 데에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겪었던 문화적인 충격이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스님은 1999년 5월 경, 미국에서 법을 펼치고 있던 숭산(崇山, 1927-2004) 스님의 초청을 받아 미국의 6개 주를 다니며 강의와 법문을 이어 나갔다. 그때 많은 일들을 경험했는데 특히 오늘날 한국불교가 국민들에게 이바지할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게 되어 무척 가슴 아프게 여겼다.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불교나 참선이라는 것이 마치 절에 출가한 스님들만 하는 전유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님은 모든 사람들이 참선 수행을 하게 하는 ‘선의 대중화’를 통해 국민의 의식을 높이고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뛰어난 의식을 가지고 문화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미국 방문과 강의는 그런 원력을 세우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원 스님이 학림사 오등시민선원을 세우게 된, 자세한 이야기는 이렇다.
하루는 스님이 LA 달마사에서 대중 법문을 마친 뒤였는데 어떤 미국인 교수가 유창한 한국말로, 대한민국을 소개해 주길 부탁했다. 스님은 평소에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잠시 망설이다가 “대한민국은 높고 큰 나라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교수가 “뭐가 높다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스님은 대한민국이 5천 년의 유구한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국민들 모두 우주 만유 중에서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는 가치를 알고 인본사상으로 살아가니 높은 나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그 교수는 그건 그렇다고 동의했다.
이렇게 시작된 열띤 토론을 통해 스님은 많은 한국인들이 참선을 할 줄 알고 그것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깨달았기에 미국인들보다 높고 크다는 논리를 폈지만 결국 그 미국인 교수로부터 뼈아픈 지적을 당하고 말았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 중에 스님이 말씀하신 불성의 존재 가치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또 스님은 방금 법문하실 때 여기 청중들에게 참선을 하라고 여러 번 강조하셨는데 대한민국 국민 중에 지금 참선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나는 서울대학교 교환교수로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서울대학교 학생들 중 참선을 하고 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절에 다닌다는 불자들 중에서도 항상 참선한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못 들어봤습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스님은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미국인 교수로부터 6·25전쟁, 미국의 지원과 3만 6천여 명에 이르는 미군의 희생, 한국인들이 잘살아 보겠다며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린 나머지 참선이 되었든 다른 정신문명이 되었든 등한시하게 된 게 아니냐는 신랄한 비판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스님들이라도 참선 수행을 대중화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는 게 옳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
“그건 한국 스님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스님도 우리한테 큰소리치고 가르칠 게 아니라 대한민국에 가셔서 높고 큰 나라를 위해 참선을 가르치셔야 합니다.”
그날 스님과 미국인 교수의 불꽃 튀는 논쟁은 늦게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참선 수행을 할 줄 알고 우주 만유 가운데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믿었던 스님은 그 교수의 말에 그야말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머물고 있던 한의사의 집으로 돌아가 밤새도록 울었다. 그러면서 모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민선원을 짓겠다는 원력을 세웠으며 그것이 결국 오등시민선원을 세우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