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대덕화 보살과 호두나무 시

학림사의 대적광전, 설법전, 오등선원 등 경내에 건물이 신축될 때는 자금을 미리 모아놓고 공사가 이뤄진 게 아니었다. 따라서 대원 스님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순차적으로 건물들을 완공해 나갔다. 대적광전만 해도 어떤 신도가 건축자금을 모두 지원하겠다고 약속해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계약금만 3억 원인가를 내고는 더는 못하겠다고 물러났다. 그때부터 스님은 공사를 맡은 대목수에게 돈이 생기는 대로 지불하겠다고 설득해, 100만 원이 생기면 100만 원어치 공사를 진척시키는 식으로 진행하여 마침내 대적광전을 완공할 수 있었다. 다른 건축물들도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불사를 마치게 되었다.
학림사 대적광전
학림사를 창건할 때는 대전의 보덕화 보살이 큰 도움이 되었고 그 밖에도 스님을 존경하는 많은 불자들의 도움이 있었다. 뜻있는 신도들이 정진하러 왔다가 자리가 협소하다며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땅을 보시하여 차츰 확장해나갔다. 그런 가운데 호산 윤홍익 회장은 부지를 여러 군데 많이 확보해 주어 학림사 경내를 지금처럼 1만여 평 정도로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여러 불자들 중 스님이 특별히 기억하는 대덕화 보살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대덕화 보살은 서울에 살면서도 학림사에 자주 내려와 타인의 귀감이 될 만큼 자원봉사를 많이 했다. 더구나 학림사 터를 넓히는데 많은 시주를 했을 뿐만 아니라 내려올 때마다 직접 밥을 지어 공사하는 인부들에게 대접할 만큼 학림사 불사에 각별한 원력이 있었다. 언젠가는 대추나무와 호두나무 묘목을 사다 학림사 샘터에 심어놓았다. 그러던 중 연세가 여든이 넘은 뒤로는 중풍이 생겨, 쉽게 거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하루는 대원 스님이 대덕화 보살이 몸져누운 병원으로 찾아가 문병했다. 그때 스님은 “몇 해 전 보살님이 심어놓으신 호두나무에서 올해 호두가 세 알 열렸습니다.”라고 소식을 전했다. 그랬더니 대덕화 보살은 무척 기뻐하며 죽기 전에 그 호두나무를 한번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며칠 뒤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학림사로 내려왔다. 대덕화 보살은 자신이 심은 나무에 열매가 매달린 걸 보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나는 이제 올라가면 두 번 다시 내려올 수는 없고 이 세상 마지막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내가 심은 호두나무에서 호두가 열린 걸 보니 더없이 기쁩니다. 앞으로 학림사가 더 많이 번창하고 큰 수행 도량으로 발전할 때까지 도와드리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스님께 이 호두나무에 대한 시를 좀 지어주십사 하고 부탁드립니다.” 그런 간절한 부탁을 받은 대원 선사는 망설이지 않고 즉석에서 시 한 수를 읊었다. 티 없는 저 허공이 청춘을 먹고 무상한 세월이 백발을 토하네 호두나무는 청춘이 되고 주인은 백발이 되니 지난 일들 아침 이슬처럼 주렁주렁 눈물이 앞을 가리네 여기 이름 없는 한 여인이 그저 이 한 그루 호두나무에 혼정을 담고 풍상의 여로를 괭이자루 머리에 붙이노니 먼 훗날 이 호두를 거둘 때 혼정도 여로도 다 잊고 자시구려 어느새 감잎이 가을바람에 뚝뚝 떨어지니 이제 조용히 쉴 때가 왔는가 보다 바람 없는 대지에는 파도가 일고 푸른 하늘에 천둥 번개가 일어나니 그 어느 누가 알리오. 대덕화 보살은 이 ‘호두나무 시’를 가지고 상경하여 액자를 만들어, 늘 감상하다가 별세했다고 전한다. 스님도 그 시를 액자로 여러 개 만들어 훗날 미국을 방문할 때 가져가 인연 있는 교포들에게 선물했다. 그때 교포들은 그 시가 자신의 처지를 두고 말하는 것 같다며 감동에 젖고는 했다.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미국에 가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살아온 교포들이기에 그 시를 감상하며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이다.
· 집필자 : 이정범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