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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수록 자비사상을 실천하라

전 세계인을 마스크로 무장하게 하는가 하면 몇 차례의 백신주사를 맞고 대중교통은 물론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 출입 제한 조치가 취해졌던 코로나19 시기가 이젠 먼 옛날처럼 기억되고 있다. 모든 일은 지나고 보면 아름답거나 아련할 뿐 부정적인 기억은 그다지 남지 않는 게 인지상정이다.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에서는 코로나가 유행하는 동안 줄곧 이런저런 제한 조치를 취했고 시민들은 대체로 그런 일에 고분고분 따라주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그 시기에 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가 하면 각 종교의 신행 현장인 사찰과 교회, 성당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대원 스님이 조실로 주석하는 학림사에서는 신도들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았으며 평상시와 다름없이 사찰을 운영하였고 신도들은 참선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스님이 그런 엄중한 시기에도 수행과 포교에 전념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 불교는 삼국시대 때 이 땅에 들어와서 과거의 조사스님들은 이 나라 모든 국민들에게 어떤 국난이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국난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진정으로 나의 뜻을 안다면 무간지옥도 마다하지 말고 초연히 들어가서 그곳 중생들을 제도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바로 부처님의 자비사상입니다.” 정부에서 강력한 출입 제한 조치를 취하자 조계종에서는 산문을 폐쇄하여 신도들과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을 사찰 입구마다 부착하게 했다. 이때 스님은 자비사상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진제 종정 스님과 동화사 방장 스님, 총무원장 스님 등에게 전화하여 산문 폐쇄는 부처님 자비사상과 맞지 않는 조처라며 고난과 고통에 빠진 시민들이 절을 찾아와 마음의 평안을 얻고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게 스님들과 불교가 할 일이 아니냐며 설득하였다. 이에 동화사에서는 즉각 산문 폐쇄 현수막을 걷어내고 대신 ‘동화사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도량이니 누구든 찾아와 코로나를 종식시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십시오.’라는 현수막을 부착했다. 종정인 진제 스님도 총무원장 스님에게 전화하여 산문 폐쇄는 부처님 가르침과 맞지 않는 일이라며 현수막을 철거하도록 분부했다고 전한다. 물론 학림사에서는 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라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신도들이 출입할 수 있게 했으며 법회와 수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더니 시청 공무원이 찾아와 왜 국가의 시책을 따르지 않느냐며 대원 스님에게 항의했다. 그때 스님은 학림사에서는 대통령, 국무총리, 도지사, 시장 등 나라와 지방 정부를 책임진 분들이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모든 국민이 하루빨리 코로나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하는 사찰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시청 공무원은 스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또한 아주 넓은 선방에서 대중들 간에 충분한 거리를 두고 조용히 좌선하는 선방 대중들의 모습을 보고는 스님 말씀이 옳은 것 같다며 사과한 뒤 다시는 학림사에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코로나19 기간 중 학림사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법회와 수행을 계속해 왔던 스님의 의지는 그야말로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실천하는 일이며 그만큼 포교에 대한 원력이 매우 크다는 걸 느끼게 한다.
2023년 학림사 설법전에서
한편 대원 스님은 학림사 대중은 물론 전국의 수많은 사찰과 불교 방송 등 언론 매체의 초청을 받아 수없이 법문을 해왔다. 한국의 대표적인 선사로 손꼽히고 있는 스님이 그처럼 많은 대중 법회에서 법문을 했다면 좀 의아하게 여기는 불자들도 있을 것이다. 대개 선사라면 안거 때 선원 수좌들을 지도하고 후학들과 법거량을 통해 깨달음을 점검하는 스승이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은 출가 후 당대의 손꼽히던 강사스님들로부터 경전을 익혔으며 후학들에게 강의를 한 적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최고의 선사로 추앙받던 고승들을 모두 찾아뵙고 법거량을 하거나 문답을 주고받으며 깨달음을 점검받고 인가를 받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스님은 그런 과정을 모두 거쳐 대중들로부터 당대의 선사로 추앙받고 있다. 아울러 그런 경력을 바탕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역대 조사들의 선어록을 강의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여러 종류의 ‘강설집’을 출판해 후학들을 이끌어 주었다. 예를 들면 『무구자 도인 주해 반야심경』, 『대주선사어록 강설』, 『금강경오가해 강설』, 『조주록 강설』 등을 편찬한 바 있다. 그런 스님이 법문할 때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경구나 법어, 법문의 주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스님은 항상 간화선을 골격으로 삼고 그 외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리를 방편으로 삼아 모든 사람에게 법을 전해주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이런 방법은 한국불교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통불교적’인 강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비빔밥을 만들 때처럼 선과 교를 함께 섞어서 그때그때 부처님 가르침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스님은 여기에 덧붙여 법문할 때 『금강경』이나 『화엄경』 구절과 ‘유식론(唯識論)’의 이론을 법문의 주제로 삼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법문하는 경우가 많다.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고 하는데, 마음을 내는 것은 두고, 머무는 게 없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응무소주’는 ‘나는 무엇인고?’하는 데 들어가야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실체는 어떤 모양을 가지고도 거기에 미칠 수 없고, 어떤 종교도 거기에 미칠 수가 없고, 어떤 성인도, 철학자도, 과학자도, 학자도 거기에 미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미친다면 거기에 머무른 겁니다.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불가침인 절대가 되어서 이렇다 말을 하면 벌써 그것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는 머무르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학산 대원 대종사 법어집 『진흙 속에서 달이 뜨네』 중에서)
진흙 속에서 달이 뜨네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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