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사에서 주석하시는 대원 선사는 출가 이후 줄곧 간화선(看話禪) 수행에 전념했고 간화선의 대중화에 힘을 기울여왔다. 간화선이란 선지식이 일러주는 본지풍광의 전신일구(轉身一句)로 즉시 바로 깨닫게 해주는 탁월한 가르침이며, 만약 그 자리에서 즉각 깨닫지 못한다면 그 일구를 화두공안으로 삼아 깊이 의심·참구하여 깨달음을 얻는 수행 방법을 가리킨다.
중국 송나라 때 임제종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가 제창했으며 이 땅에는 고려 때의 보조국사 지눌 선사가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이란 책을 펴내면서 널리 전파되었다. 그 뒤 임제종의 전통을 직접 이어받은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 국사를 통해 오늘날까지 간화선 수행법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일부 스님이나 불자들은 명상, 관법(위빠사나), 요가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그런 수행법들을 가르치거나 널리 전파하고 있다.
해방 이전에 출생해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출가해 행자 생활을 거친 대원 스님의 경우는 한국불교의 정통적인 간화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스님께 명상, 관법, 요가 등의 수행법과 간화선 수행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여쭤보았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일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기에 바로 이 부분에서 포교라는 게 꼭 필요합니다. 많은 이들은 그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 몸부림을 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명상이나 관법, 요가 등이 그런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수행법으로는 우리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근기가 천차만별이라 명상이나 관법 등은 임시로 심리를 치유하는 데 사용되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해 참선 수행법은 모든 사람의 근본적인 괴로움을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궁극적인 수행법입니다.
간화선 수행법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 수행법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사실 명상이나 관법도 참선 수행처럼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렇기에 똑같이 힘이 든다면 간화선을 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확신을 가져왔고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 점을 바로 인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명상이나 관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간화선이라야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우리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간화선에 대한 문제를 모든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이 선승의 한 사람으로서 내 허물이라고 봅니다.”
스님의 말씀을 정리한다면, 근래에 유행하는 명상이나 관법·요가 등은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방편이긴 하지만 깨달음을 얻거나 인생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행법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관법이란 산스크리트어 위파사나(Vipasyana)를 의역한 말로 관(觀)·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이라고도 부른다. 이 관법에는 수식관, 지관, 자비관, 부정관 등이 있으며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유지하게 해주는 중요한 수행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원 스님은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든 행복하고 영원히 편하게 살고 싶은 염원을 가지고 있지만 과학이나 물질문명으로는 그런 꿈을 결코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한다.
“과학과 물질문명이 많은 발전을 했지만 우리의 괴로움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1950년대나 60년대나 지금까지도 물질문명은 발전됐지만 괴로움은 지금까지 쭉 이어 내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 시절에도 서로 배신하고 죽이고 살리는, 사회의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있었고 물질문명이 상당히 발전한 지금 이 시점에도 그 문제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괴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해 왔는데 지금 언급된 명상이나 관법 등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영원히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내보겠다는 사람들이 꽤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관법이나 명상으로는 임시방편으로 치유하는 것만 가능하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간화선(看話禪)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든 분들이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근래 들어 남방 불교의 수행법이나 명상 등이 하나의 유행처럼 널리 전해지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간화선을 등한시한 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대원 스님은 불교계 원로의 한 사람으로서 간화선을 많은 대중들에게 제대로 전파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간화선은 불성을 즉시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간화선이 근본적으로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고 또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데 그것을 모르고 어렵고 먼 길로 돌아가는 명상, 관법을 하겠습니까? 여기엔 우리 스님들이 바로 포교해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한 허물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원 스님의 지적처럼 간화선 수행이나 명상, 관법 등은 모두 쉽지 않은 수행법이다. 그럼에도 근래의 많은 대중들이 명상, 관법, 요가 등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간화선 수행이 현대인들에게 맞지 않다거나 상대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스님의 견해는 다르다.
“명상이나 관법 등은 세상 사람이 접하기 쉽게 설명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논리정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간화선은 어떤 문자나 논리를 초월해 바로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간화선 수행에 대해 특수한 방법이라고 말하는데 내가 볼 때는 특수하다고 보는 것은 중생들이 모르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견해일 뿐입니다. 간화선을 잘 모르고 무지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죠.
자신의 눈이 열려서 간화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간화선 수행이 가장 쉬운 수행법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즉시, 바로 깨닫게 해주는 수행법이 간화선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선이란 특수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렇기에 누구라도 수행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간화선처럼 즉시 깨닫는 수행법이라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농사를 한 해 지어 먹고 이듬해 또 지어서 먹는 게 명상, 관법이라고 한다면 간화선은 깨달음을 통해 일체의 모든 것을 확연하게 해결하고 그와 동시에 고통과 번뇌의 불행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원히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오등선원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