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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수행은 행복하게 사는 길

한국불교의 종파를 크게 분류하면 선·교(禪敎) 양종이라 볼 수 있다.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간화선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을 표방하면서도 교종, 진언종, 정토종의 교리를 흡수해 통불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계종은 통일신라 때 당나라에 유학을 가 한반도에 처음으로 선(禪)을 전한 도의국사(道義國師)를 종조(宗祖)로 삼고 있다. 따라서 조계종은 통불교적인 성격이면서도 간화선 수행을 좀 더 중요시하고 있다. 한국에 간화선 수행이 발달한 것은 불교가 각자의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되는 걸 지향하는 종교임을 한국의 선사들이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자들은 절에서 자신이나 가족들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108배를 하고 기도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 결과 무엇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불자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대원 스님은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 “자신이 보고 느끼는 일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정리할 수 있으면 거기엔 실수가 없고 서로 마음이 편하고 만족한 상황이 됩니다. 반면 판단을 잘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고 마음까지 상하게 되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영원히 상대의 모든 걸 접하면서도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눈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해결책은 있는지 모색해야 합니다. 밝은 눈으로 보고 모든 걸 바르게 판단하면 완벽하고 만족하며 영원히 행복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여러 가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이 불행한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방법은 의학이나 과학으로는 찾을 수가 없고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가르침만이 가장 훌륭한 처방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팔만대장경으로 상징되는 부처님 말씀과 조사스님들의 공안을 통해 완벽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팔만대장경 말씀은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처방이며, 조사스님들의 공안은 바로 직방으로 낫게 하는 비방약입니다. 이를테면 사람이 위급할 때 여러 가지 처방을 해주는 게 아니고 조그마한 알약 한 알로 살려내는 게 바로 조사스님들의 공안입니다. 이 처방을 다르게 말하면 돈오돈수(頓悟頓修)입니다.
남해 보리암 원효스님 좌선대에서
그렇다면 이처럼 신통한 비방약이라는 건 무엇이겠습니까? 예를 들면 ‘1+1’은 뭐냐고 물을 때 일반적으로는 ‘2’라고 답합니다. 이것이 일반 대중들이 인식하고 있는 틀입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사스님들은 ‘1+1’은 ‘3’ 또는 ‘4’라고 뜻밖의 답을 합니다. ‘9×9’는 ‘81’이지만 ‘82’나 ‘83’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처럼 우리가 가진 관념의 틀을 완전히 깨뜨리는 게 조사스님들의 공안이며 간화선 수행입니다.” 그렇다면 대원 스님의 설법처럼 어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하는 간화선 수행은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유용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를테면 휴대폰, 컴퓨터, 인공위성, 인터넷, SNS, ChatGPT 등의 기술적인 진보가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과학 문명 시대에 부처님 가르침이나 조사스님들의 공안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런 시대에 불교를 대중화할 수 있는 수행법은 어떤 것이 있을지 대원 스님의 고견을 들어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고통은 무엇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생각해봅시다. 예를 들자면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엔 핸드폰이나 컴퓨터는 없었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면 싸우거나 헤어지고 죽이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컴퓨터나 핸드폰, 텔레비전을 비롯한 갖가지 물질이 발달했어도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면 마찬가지로 싸우거나 헤어지고 죽이거나 서로 배신하기에 바쁩니다. 갓 태어난 영아를 죽여 냉동고에 넣는다는가 몰래 버리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편리하게 발달했다 해도 사회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우리들이 항상 고정관념 속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향기롭고 복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전해진 처방전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 부처님 말씀이며 조사스님들의 공안입니다. ‘1+1=2’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이 말을 바로 알아들으면 되는데 못 알아듣는 사람은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1+1’를 왜 ‘3’이라고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깊이 생각해서 일념이 되면 자신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부서지고 그걸 통해서 안목이 바로 열려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금을 캐려면 땅을 파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손도 안 대고 코를 풀 수는 없는 법 아닙니까? 어찌 보면 간화선 수행은 간단합니다. 그렇기에 인류의 본질적인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사가 원뜻을 묻는데 앞니에 털이 났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1+1=3’이라고 하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앞니에 털이 났다고 하든 ‘1+1=3’이라고 하든, 아는 사람은 바로 알아듣습니다. 그런 사람은 만족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못 알아듣는 사람은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데에서 모든 게 해결됩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학림사 대웅전과 상선원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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