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경봉 스님의 인가와 기념사진

대원 스님은 1980년에 통도사 극락암 선방을 찾아갔다. 방부를 들이기 전 조실인 경봉 스님의 방으로 들어가려다 한발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경봉 스님이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대원 스님은 내밀었던 발을 거둬들이며 자리에 섰다. 경봉 스님이 물었다. “무엇인고?” “예, 높은 걸 만나면 높은 걸 밟고, 낮은 걸 만나면 낮은 걸 밟습니다.” “높은 데서 낮은 걸 어찌 알지 못하고 낮은 데서 높은 걸 어찌 알지 못하느냐?” 이 질문은 경봉 스님의 의지를 담고 있는 중요한 발언이다. ‘너는 높은 것도 밟고 낮은 것도 밟으니까 천하에 가장 높다. 하지만 높은 데서 낮은 줄 모르고 낮은 곳에서 높은 걸 모르냐?’는 뜻이 담긴 말이다. 다시 말해 ‘너는 그렇게 뻣뻣하게 서서 어른한테 굽히듯 절하는 걸 어찌 모르느냐?’는 뜻이기도 하다. 대원 스님이 큰절을 올리며 안부를 여쭸다. “큰스님, 시하(時下)에 법체 강녕하셨습니까?” 경봉 스님이 싱긋 웃고는 말했다. “네가 그렇게 했더라도 나는 널 받아줄 수가 없다.” “그럼 저는 스님이 앉는 자리에 같이 앉을 것이고 스님이 서 계시면 같이 설 것이며, 스님께서 누우시면 같이 누울 것입니다.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똑같이 따라 하겠습니다.” “나는 이름과 모양이 없거늘 네가 나의 무엇을 보고 따라 한단 말이냐?” “네에. 저도 큰스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경봉 스님은 “허허허!”하고 크게 웃었다. “그래, 뭐 달리 할 말 있냐?” “네. 빗장 관(關)에서 이번에는 스님과 함께하겠습니다.” “그만하면 됐다. 한 철 살아라.” 이렇게 경봉 스님의 점검을 받은 뒤 한 철을 지내게 되었다.
1974년 삼소굴에서
하루는 삭발목욕일이 되었는데 약수물을 마시고 극락암으로 올라오시던 경봉 스님과 마주쳤다. “큰스님, 역대 조사스님들은 무슨 선을 했습니까?” “그건 역대 조사스님들에게 가서 물어보거라!” “역대 조사스님은 조사스님이고 스님은 여기 극락암 조실스님이 아니십니까? 저는 지금 조실스님께 여쭙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어떠한 것입니까?” “나는 경봉이다, 왜?” “오늘 스님께서 말씀하는 걸 들어보니 영축산이 빛나고 새롭게 보입니다.” 대원 스님이 경봉 스님을 뒤따라 오르다가 보니 문기둥에 ‘등지문(等持門)’이라 써놓은 게 보였다. “스님, 이걸 왜 등지문이라고 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야.” 대원 스님은 “잘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경봉 스님에게 합장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하루는 경봉 스님이 대원 스님에게 물었다. “그래. 넌 요즘 무슨 화두를 하느냐?” “조주 무자(無字)를 합니다.” “그럼 무자 십종병(十種病)에 걸리지 않는 일구를 일러보아라.” “손에는 신령스러운 검을 잡고 눈은 허공에 걸었습니다.” 하루는 경봉 스님이 ‘암두도자’ 공안에 대해 물었다. “암두를 찾아간 여인이 아이를 왜 강물에 집어 던졌느냐?” “만약 저라면 여인도, 아기도, 배도 다 집어 던지고 춤을 추면서 떠나가겠습니다.” 대원 스님이 이렇게 답하자 경봉 스님은 크게 웃고는 “앞으로 나하고 자주 만나고 여기서 같이 지내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념사진을 함께 찍자고 말했다. 평소에 사진을 잘 안 찍던 경봉 스님으로선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1974년 극락암에서 경봉 스님과 함께
· 집필자 : 이정범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