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성도재일(음력 12월 8일) 아침이었다. 그때 대원 스님은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선덕(禪德)과 입승(立繩) 소임을 겸하고 있었다. 금당선원에선 성도재일을 맞아 3대 암자의 비구니스님과 큰절 비구스님, 신도회장단 등 사부대중이 7일간 용맹정진 회향을 앞두고 다 함께 방선(放禪)을 하고 앉았다.
조실인 향곡 스님이 대중들에게 “오늘이 성도재일이니 성도에 대해서 한마디씩 일러보시오. 어떤 것이 성도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중들은 왼쪽부터 차례대로 입을 열기 시작했지만 모두 “모릅니다.” 또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게 전부였다. 이윽고 대원 스님 차례가 되었다. 대원 스님은 그때만 해도 설마 조실스님이 입승인 자신에게까지 물으실까 싶어 아무런 답변도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입승스님 차례입니다. 여러 대중을 위해 입승스님이 한마디 일러보시오.”
그때 대원 스님이 반사적으로 일어나 말했다.
“성도를 한 이후를 묻는 것보다 성도하기 이전 소식을 조실스님께서 먼저 한 말씀 해주신 다음 성도한 후를 이르라고 하셔야 옳지 않겠습니까? 성도하기 이전 소식을 먼저 조실스님께서 한 말씀 일러주십시오. 그러면 성도한 후의 소식을 제가 이르겠습니다.”
그러자 향곡 스님이 “창천(蒼天), 창천!”하고 답했다. 이에 대원 스님은 “제가 묻는 뜻은 조실스님께서 꿈에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말씀 일러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향곡 스님이 “관(關)!”하고 답했다. 이에 대원 스님이 맞받아쳤다.
“반은 이르셨지만 반은 이르지 못하셨습니다.”
이렇게 말한 대원 스님은 갑자기 “할!”하고 소리를 지른 뒤 조실스님의 등을 손바닥으로 ‘탁’ 치고는 그대로 선원 출입문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섰다. 향곡 스님이 물었다.
“그래 성도한 뒤의 소식이 어떠한가?”
“여기는 동화사(桐華寺) 아닙니까? 눈 내린 겨울에 오동나무 꽃[桐華]이 활짝 피었고 천년 묵은 해골바가지 눈동자가 맑고 푸릅니다.”
향곡 스님은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대원 스님이 마무리를 지었다.
“이번 성도재일은 조실스님께서 경책을 잘해 주셔서 일주일 용맹정진을 무사히 회향하고 마쳤습니다. 대중들은 일어나 절하십시오.”
그때 대중들 모두 일어나 향곡 스님에게 절하는 것으로 용맹정진을 회향했다.
얼마 후 향곡 스님이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 조실 방으로 들어섰다.
“입승스님은 어디에서 그런 걸 배웠어?”
“그게 배워서 되는 겁니까?”
“그러면 내가 더 물어보자. 조주 스님이 짚신을 머리에 이고 나간 소식은 무엇인가?”
이것은 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에 얽힌 질문이다.
하루는 남전 선사 회상에서 동당과 서당 스님들이 고양이를 놓고 서로 다투자, 남전선사가 “너희들이 제대로 이르면 이 고양이를 살려두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고양이 목을 베겠다. 어서 일러봐라.”라고 말했다.
양당 스님들은 고양이처럼 우는 사람, 할을 하는 사람,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 등 다양한 답변을 내놓았지만, 남전 스님은 모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며 고양이 목을 단번에 베었다.
그날 밖에 나갔다 저녁에 돌아온 조주 선사가 스승 남전 선사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만약 네가 있었다면 어떻게 답했겠느냐?”
남전 선사의 질문에 조주 선사는 짚신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돌아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남전 선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만약 조주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 고양이는 죽지 않았을 텐데.”
향곡 스님이 ‘조주 선사가 짚신을 머리에 이고 나간 의지가 무엇인가?’를 묻자 대원 스님이 답했다.
“대우가 땅을 평평히 골라놓고 간 뒤에 현대는 와서 집을 멋지게 지었습니다.”
이러자 향곡 스님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참으로 전무후무한 대답이로다. 전에도 내가 많은 수좌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지만 대원 수좌처럼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네.”
그 뒤로 향곡 스님은 대원 스님을 곁에 두려고 수없이 설득했다.
“돌아오는 하안거 때는 묘관음사에서 같이 지내자.”
1975년 동화사에서 향곡 조실스님과 함께
대원 스님이 묘관음사로 가서 수행하자, 향곡 스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불러 갖가지 질문을 하며 깨달음의 경지를 점검했다. 취암미모(翠巖眉毛)‧운문호병(雲門胡餅)‧덕산탁발(德山托鉢) 공안 등 다양한 소재로 문답이 전개되었다. 하루는 향곡 스님이 ‘암두도자(巖頭渡子)’ 공안에 대해 물었다.
“그동안 네가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을 잘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이 공안을 대답하면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암두도자 공안은 이렇다.
암두 스님이 깨닫고 나서 중생을 제도하려고 나무배를 만들어 강에다 띄워놓고 강 양쪽에 판자와 망치를 놓고 배를 타러 온 손님이 판자를 치면 손님이 왔구나 하여 삿대를 들고 무애춤을 추며 손님을 맞았다.
하루는 한 여인이 아기를 안고 와서 판자를 통통 쳤다. 암두 스님이 벌떡 일어나 평소처럼 무애춤을 추려 하자 여인이 말했다.
“춤은 그만두고 내 질문에 답해주시오.”
“물어보십시오.”
“내가 안고 있는 이 아이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때 암두 스님은 삿대로 뱃전을 ‘탕탕탕’ 치는 것으로 대답했다. 여인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내가 그동안 아기를 여섯이나 낳아서 어디에 선지식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그 아이를 맡겨 선지식으로 길러 달라고 부탁하려고 찾아가 보면 이름은 선지식인데 실제로는 선지식이 아니라 그 여섯 아기를 모두 죽게 만들었소. 이 아이는 일곱 번째 아기인데 당신을 가까이서 보니 역시 선지식이 아니군요.”
여인은 말을 마친 뒤 안고 있던 아기를 강물에 집어 던지고 가버렸다.
이 공안을 두고 향곡 스님이 물었다.
“대체 암두 스님이 대답한 허물이 무엇이기에 여인이 아기를 강물에 던지고 떠난 것이냐?”
대원 스님이 답하자, 향곡 스님이 다시 물었다.
“너 같으면 ‘이 아이가 어디서 나왔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테냐?”
대원 스님은 그 대답으로 향곡 스님을 밀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하하! 그러면 여인이 아기를 버리고 간 의지는 무엇이냐?”
“제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아기고 여인이고 배고 할 것 없이 모두 집어던지고 훨훨 춤을 추면서 떠나가겠습니다.”
향곡 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말했다.
“아주 훌륭하다. 앞으로 더는 네게 물을 것이 없다. 이제 네가 방장을 하든 푸줏간에 가서 소를 잡든 십자거리에서 엿가락을 팔든, 무슨 짓을 하든 너를 건드리지 않겠다.”
이튿날 향곡 스님은 외출하면서 수행하던 대중에게 말했다.
“앞으로 공부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입승인 대원 스님에게 물으면 된다.”
묘관음사에서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