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대원 스님은 김용사에서 수행하던 성철 스님께 점검을 받기 위해 찾아뵈었다. 그때 성철 스님은 향엄상수(香嚴上樹) 공안에 대해 물었다.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향엄 지한(香嚴智閑, ?-898) 선사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나무 위로 올라간 어떤 사람이 오직 입으로만 가지를 물고 버티고 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나무 밑으로 다가가,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묻는 이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며, 대답하려고 입을 열면 떨어져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대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 향엄상수 공안을 성철 스님이 묻자, 대원 스님이 답했다.
“나무에서 다 익은 과일은 스스로 떨어집니다. 떨어져서 저 만인이 사 먹는 백화점에 진열되어 만인에게 좋은 공양을 해줍니다.”
“그러면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매달려 있다는 의지를 일러보아라.”
“그것은 새기려고 해도 새겨내지 못하고 그리려 해도 그릴 수 없습니다.”
이때 성철 스님은 나중에 다시 문답을 나누자고 말했다. 다음날 다시 성철 스님을 찾아가 질문했다.
“역대 조사스님들이 97개 원상(圓相)을 전해 내려오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조사들이 원상을 그렸던 것은 남양 혜충(南陽慧忠, 675-775) 선사 때부터였다. 6조 혜능의 문하인 남양국사는 원상 97개를 그려 그의 제자 탐원(耽源)에게 주었고, 탐원은 다시 앙산(仰山, 803-887) 스님에게 전했는데 이때 앙산은 이 원상을 위앙종(潙仰宗)의 종지로 삼았다.
앙산 스님은 학인들에게 설법할 땐 원상 하나를 그려 보이거나 글자를 써서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전통처럼 전해져 역대 조사들도 원상을 그려 보이게 된 것인데 대원 스님은 이 원상의 의지에 대해 성철 스님께 여쭌 것이다.
“97개 원상은 전해 내려오는 스님한테 가서 물어보아라.”
성철 스님의 답변을 듣고 다시 청했다.
“그분한테 묻는 건 차후에 하고 오늘은 스님께 묻는 것입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97개 원상에 대한 건 네가 잘 참구를 해봐. 참구를 해서 알아야지 내가 대답해 주기를 바라지 마라.”
대원 스님은 이런 문답을 나누고 성철 스님의 인가를 받았다. 그때 해인사 방장으로 추대된 성철 스님이 함께 해인사로 가자고 했으나 대원 스님은 계속 미뤘던 군입대로 인해 잠시 선방을 떠나게 되었다.
김용사 상선원
제대하여 해인사로 찾아가 성철 스님과 다시 문답을 나눴다.
“그동안 공부를 어떻게 했느냐?”
대원 스님은 그동안 여러 스승들을 찾아뵙고 나눴던 문답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렸다. 그러자 성철 스님이 물었다.
“그러면 하루가 일상일여가 되고 몽중일여가 되고 오매일여가 되느냐?”
“화두를 지어서 오매일여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면 너는 오매일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오매일여는 조작으로 만들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이가 빠지도록 화두를 참구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언젠가는 깨어나게 돼 있습니다. 만년 선정에 들어가 있으면 썩은 고주박처럼 가만히 죽어 있어야 하고, 다시 일어나서 움직이려고 하면 다시 그 고요한 데서 깨어나야 하며, 가만히 있으면 천년만년 썩은 고목나무처럼 가만히 있어야 하니 그것이 오매일여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 너는 어떻게 오매일여의 맛을 보았고 어떻게 깨달았어?”
“한 생각이 흩어지지 않고 몸은 묶인 듯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언젠가는 생각은 없어지고 다시 깨어나게 돼 있습니다. 그건 오매일여가 된다고 볼 수 없는데 공부를 하다가 어느 날 목욕을 하고 나와서 거울을 보는 순간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푸르고 진흙 속에서 해와 달은 항상 뜨고 있습니다.”
대원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성철 스님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내가 바로 그런 말을 듣고 싶었지만 내게 그렇게 대답했던 수좌는 아무도 없었어. 그런데 오늘 대원 수좌가 그리 답을 해주니 참 기쁘구나. 다음에 또 만나서 얘기 좀 하자.”
며칠 뒤 다시 성철 스님께 찾아가 말씀드렸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에너지와 질량이 둘로 갈라진다고 했지만 현대 물리학에서는 에너지와 질량이 둘이 아니고 하나다, 질량이 에너지고 에너지가 바로 질량이라고 판명이 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반야심경의 색(色)과 공(空)이 둘이 아니라는 걸 과학자들이 입증한 것이라고 스님께서 백일법문에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점에 있어 의심이 가는 게 있습니다.”
“뭐가 의심스러운데?”
“제가 알기로는 『반야심경』은 마음의 세계를 말씀하신 경전인데 과학자들이 에너지와 질량이 둘이 아니라는 걸 판명했다면 그 사람들을 초청해 마음이라는 것을 분석해보고 싶습니다. 마음을 분석할 수 있으면 나쁜 마음을 빼고 좋은 마음만 쏙쏙 넣어주면 그게 바로 천진한 부처이니 기도며 참선 같은 걸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그걸 꼭 입증하고 싶습니다. 과학자들이 마음을 정말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면 저는 『반야심경』의 색과 공이 둘이 아니라는 걸 정말 입증했다는 걸 확신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성철 스님이 대꾸했다.
“과학자들이 마음을 어떻게 분석하겠나? 그들이 이 도리를 알려면 수천 년이 흘러가도 힘들어.”
“그러면 스님께선 그 말씀을 왜 하셨습니까?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는 걸 에너지와 질량으로 비교하여 입증했다고 하면 말이 안 맞지 않습니까?”
“요즘은 모두가 불교가 어렵다, 어렵다 하니까 현대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반야심경』에 대한 걸 조금씩이라도 이해시키려고 내가 방편으로 말한 것이야.”
“그 방편은 좋으신데 방편도 잘못하게 되면 진짜 그런 줄 알고 믿지 않겠습니까?”
대원 스님이 거듭 따지고 들자, 성철 스님이 마무리를 지었다.
“그게 방편으로 한 거니까 그처럼 마음에 둘 거는 없어. 그리고 이건 너나 나나 없는 걸로 하자.”
이런 대화가 오간 뒤 성철 스님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네가 공부 좀 한 모양인데 한 가지 물어보자. 영운(靈雲) 조사가 복사꽃이 떨어지는 걸 보고 30년 만에 깨달았어. 그래서 오도송을 지었는데 그 시를 보고 스승인 위산(潙山) 선사는 인연으로 깨달았으니 물러서거나 잃어버리지 말고 잘 간직하라며 인가했는데, 사제(師弟)인 현사(玄沙) 선사는 견성을 한 게 아니라고 말했지. 위산 스님이나 현사 스님 모두 천하의 대도인인데 한 분은 견성을 했다며 인가한 반면 한 분은 견성을 절대 못 했다고 했으니 어느 선지식의 말이 옳으냐?”
이때 대원 스님이 답했다.
“그 두 사람은 차치하고 오늘 방장스님께서는 30방을 맞아야 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철 스님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 내가 무슨 허물이 있어서 30방을 맞아?”
이때 대원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깔고 앉았던 좌복을 들어 팽개치고는 ‘할!’하고 소리친 뒤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섰다. 그 모습을 보던 성철 스님이 크게 웃었다.
며칠 후 성철 스님의 부름을 받고 다시 백련암으로 찾아갔다.
“대원 수좌는 입실한 데가 있는가?”
“고암 스님께 입실하고 전법게도 받았습니다.”
“입실한 데가 없으면 내게 입실하라고 할 참인데 그럼 잘 됐구만.”
고암 스님은 성철 스님에게 사숙(師叔)이 되는 분이다. 따라서 굳이 따지면 성철 스님과 대원 스님은 승가에서 사촌지간의 사형사제인 셈이다.
“앞으로 더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자주 찾아와 얘기 좀 하자.”
1971년 해인총림에서 동안거 해제 기념으로 성철 스님과 함께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