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이 깨달음을 얻는 직접적인 계기는 다양하다. 화두에 몰입하다가 옆 사람이 기침소리를 냈다거나 문득 밤하늘을 보았는데 그날따라 달이 환하다거나 공양간에서 솥뚜껑 닫는 소리가 난다거나 할 때 깨달음을 얻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거량을 할 때는 기이한 언행으로 깨달음의 깊이를 가늠하기도 한다. 당송 시대의 선사들은 제자가 엉뚱한 답변을 하면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할(喝)을 하거나 주장자로 내려치는 방(棒)이라는 수단을 쓰기도 한다.
대원 스님도 깨달음을 점검받을 때 할이나 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스승들을 자주 뵐 수 있었다.
여러 스승 중 금오(金烏, 1896-1968) 선사는 주장자로 제자들의 깨달음을 일깨워준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렇기에 금오 스님의 방망이가 겁나거나 자신의 깨달음이 아직 미흡하다고 여기는 수좌들은 감히 찾아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금오 스님이 주장자로 무섭게 경책을 내리는 것은 납자들의 깨달음을 일깨워주려는 수단이다. 그렇기에 대원 스님은 금오 선사를 대단한 스승이라고 여긴다.
청계사
처음 대원 스님이 청계사 금오 선사를 찾아뵙던 날이었다. ‘큰스님이 주장자로 때리면 어쩌나?’ 싶었던 대원 스님은 절을 드리면서도 눈치를 살폈다. 때릴 기미가 보이면 무작정 뛰쳐나갈 작정이었다. 이윽고 대원 스님이 절을 마치자 금오 스님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놈, 넌 어디서 왔느냐?”
이때 대원 스님은 눈치를 봐야 했다. 곧이곧대로 “네, ○○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이놈아, 내가 그걸 몰라서 묻겠느냐?”며 때릴 테고 또 “어디서 온 데가 없습니다.”라고 답하면 “이놈아, 없다는 말이 맞느냐?”하고 때릴 것만 같았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게 생겼다. 그러던 중 대원 스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조실스님께서는 저를 어디서 보셨습니까?”
이렇게 여쭙자, 금오 스님은 “허허, 이놈 봐라? 그래, 그건 그렇고 내가 하나 묻겠다.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고 했지? 그러면 너는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사느냐?”라고 물었다.
대원 스님은 그에 대한 답변으로 앞으로 세 발자국 걸어 나가서 절을 하고 다시 뒷걸음으로 세 발자국 물러나 차수(叉手)를 하고는 말했다.
“이와 같이 머무르고 삽니다.”
이런 기상천외한 답변에 금오 스님은 “하하하!” 크게 웃고는 “내가 오랫동안 많은 학승들을 봤지만 이런 납자는 처음 본다. 월탄아, 차 한 잔 가져오너라.”라고 말했다. 당시엔 월탄(月灘, 1937-2022) 스님이 금오 스님의 시자로 있었다.
1951년 금오 태전 대종사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