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 스님은 입대하기 몇 해 전, 진로를 두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도반 스님과 함께 동국대학교에 입학할 결심을 하였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서울에 거처를 마련할 필요가 있어서 종로3가에 있는 대각사로 찾아갔다. 같은 용성 문중의 사찰인 데다 학교에서도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대각사에 도착하고 보니 방사는 모두 지방 사찰에서 올라온 스님들로 꽉 찬 상태였다. 당시 대각사 주지였던 혜암 스님은 “여기는 지금 학교 다니는 스님들로 꽉 차서 방사가 없네. 저 변두리로 가면 절이 많은데 그런 데서는 얼마든지 부전 봐주고 학교 다닐 수 있으니 한번 가보게.”라고 권했다.
대원 스님은 하는 수 없이 걸망을 둘러멨는데 마침 작은 방에 고암 스님이 머물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는 찾아가 문안 인사를 올렸다. 그때 고암 스님은 출가자가 학교에 다니는 건 별로 마음에 안 든다 하시면서 학교 공부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니고 선지식이 되는 것도 아니니 선방을 다니라고 권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대원 스님이 여쭸다.
“스님, 선방에 가면 뭘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
“선방에서 공부하려면 조사가 온 뜻을 물어야지. 한 제자가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고 물었어. 그때 조주 스님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말했지. 왜 뜰앞의 잣나무라고 했을까? 조주 스님이 말한 의지가 뭔가?”
이때 대원 스님은 맨땅에 대고 큰절을 한 번 올린 다음, 뜰 앞의 잣나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고 이런 소식이 있고 이런 도리 아니냐고 여쭸다. 그러자 고암 스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모르는 소리야. 다시 가서 공부하도록 해.”
대원 스님은 “알겠습니다.”하고는 발길을 돌려 대각사를 나서다 말고 다시 돌아서서 여쭸다.
“스님, 그럼 저는 언제 스님을 다시 뵐 수 있을까요?”
“팔구에 바다 도장에서 만나세.”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었다. 대원 스님은 그 뒤 여러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면서 이런저런 가르침을 받았다.
대각사
얼마 후 대원 스님은 인천 용화사를 찾아가 조실 전강 스님께 ‘무(無)’자 화두를 받았다. 이때 대원 스님이 여쭸다.
“‘무’ 자 화두는 본래 조주선사가 준 것이지 스님의 화두가 아니지 않습니까? 스님만의 화두를 하나 주십시오.”
그러자 전강 스님은 가만히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무!”하고 말했다. 당시 전강 스님을 뵙고 법문을 청하려는 제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대원 스님은 더는 문답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강 스님께 큰절을 올리고는 물러 나왔다.
(대원 스님은 ‘무’ 자 화두에 대해 “무 자는 백 년, 천 년 된 여우굴이 무너지고 금사자가 출연하는 것입니다.”라고 일구를 말씀하셨다.)
대원 스님의 참선 수행은 군에 입대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사실 군대라는 조직 속에서 수행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청와대 경호실로 자대 배치를 받고서 경비업무를 맡았다. 그런 가운데서 화두를 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틈날 때마다 화두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추운 것도 잘 모르고 시간 가는 것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땐 화두를 참구하는 대신 망상이 일어나는 때도 있었다. 그런 경우 어김없이 순찰을 돌던 상급자에게 들켜 가혹할 정도의 얼차려를 받아야 했다. 화두를 참구하거나, 망상에 사로잡히거나 시간 가는 걸 모를 정도로 몰입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망상을 할 때면 순찰자에게 들키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화두를 참구하다 보면 군대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확신은 제대 후에도 계속 이어져 이따금 닥치는 어려움도 간화선 수행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대원 스님은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몇 년 동안 고암 스님이 “왜 조주 선사가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을까?”라고 물으신 데 대해 줄곧 참구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제대 후 1972년이 되어 해인사로 찾아가 방장이신 고암 스님께 삼배를 올렸다.
생각해보면 동국대를 다니려고 대각사로 찾아갔을 때 고암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팔구’인 1972년에 ‘바다 도장’인 해인사에서 다시 뵙게 된 것이니 노스님의 법력이 상당한 경지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때 고암 스님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를 물은 뒤 화두에 대해서도 물었다.
“지금 무슨 화두를 들고 있는가?”
“예, 전에 뵈었을 때 스님께서 ‘뜰 앞의 잣나무’ 화두를 주셔서 지금도 그걸 참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고암 스님이 되물었다.
“아직도 그 화두를 들고 있어? 그거 상당히 오래 걸리네.”
“그럼 어떻게 해야 빨리 마칠 수 있겠습니까?”
“잣나무 위로 올라가야지. 잣나무에 끝까지 오르되 손을 잡을 수 없는 머리 위까지 올라가. 그런 다음 한 발 내밀었을 때 어떤 것이 너의 본래 면목이겠느냐?”
순간 대원 스님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대원 스님의 박장대소를 보던 고암 스님이 물었다.
“그래, 무엇을 알았길래 그리 웃느냐?”
“이건 한 입으로 다 말씀해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야. 한마디 해봐.”
“설사 기기묘묘한 글귀를 다 가져다 말을 해도 이것은 다 드러낼 수 없습니다. 만약 뭐라고 입을 열면 몸이 상하고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잠시 후 고암 스님이 “그렇다면 내가 하나 물어보자.”라고 말한 뒤 손가락으로 원상을 그린 다음 물었다.
“이 안에 들어가도 30방이고 나가도 30방이다. 어떻게 하겠느냐?”
이때 대원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깔고 앉아 있던 좌복을 들어 머리에다 이고는 “이 좌복이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고암 스님은 주장자를 들며 “아니야!”하고는 대원 스님을 때리려고 했다. 대원 스님은 좌복을 고암 스님께 집어 던지고 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때 고암 스님이 말했다.
“눈 푸른 납자는 속이기가 어렵구나.”
이날 대원 스님은 세 번째 오도송을 지어 고암 스님께 올렸다.
忽聞栢頭手放語 잣나무 꼭대기서 손 놓고 한 걸음 나아가라는 말을 듣고
廓然銷覺疑團處 확연히 의심 덩어리 녹아 깨달았네
明月獨露淸風新 밝은 달은 홀로 드러나고 맑은 바람은 새로운데
凜凜闊步毘盧頂 늠름하게 비로자나 이마 위를 활보함이로다.
이튿날 고암 스님은 깨달음을 점검하는 질문을 했고 대원 스님이 막힘없이 답하자 “이제 내가 자네한테 전법을 해야겠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학산(鶴山)’이라는 법호(法號)와 함께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佛祖傳心法 불조가 전한 심법은
不識又不會 알지 못하고 또 알지도 못함이라.
趙州茶一味 조주의 차 맛이 일미이거니
南泉月正明 남전의 달이 정히 밝도다.
이로써 대원 스님은 고암 스님의 상좌이면서 동시에 법의 계맥을 잇게 된 법상좌가 되었다.
전법게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