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 스님은 통도사와 청암사에 머물 때 『기신론』, 『원각경』 등을 배웠다. 그 뒤 혼해 스님을 뵈었는데, 혼해 스님이 물었다.
“너 『금강경』을 배웠느냐?”
“그렇습니다.”
대원 스님이 대답하자 혼해 스님이 고개를 저었다.
“『금강경』은 매우 중요한 경전이기 때문에 내게 다시 배우도록 해라.”
그때 혼해 스님은 경전의 글만 새기는 게 아니라 그 깊은 의미와 의지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배우는 게 핵심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를테면 『금강경』에 나오는 ‘불수복덕(不受福德)’이란 말은 ‘복덕을 받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다섯 고승이 『금강경』을 풀이한 『금강경오가해』 중 야보 도천(冶父道川, 1127-1180) 선사는 이 ‘불수복덕’을 두고 ‘끈이 없는 치마요, 입이 없는 바지’라고 비유했다. 대원 스님은 이 말씀을 일컬어 ‘다섯 고승 중 야보 선사가 간화선에 대한 의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씀’이라고 강조했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구절에 대해 야보 선사는 다음 게송으로 표현했다.
山堂靜夜坐無言 고요한 밤 산당에 말없이 앉아 있으니
寂寂寥寥本自然 적적하고 쓸쓸함이 본래 자연이거늘
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서풍은 숲과 들을 흔들어서
一聲寒雁唳長天 찬 기러기 한 소리 장천에 울고가노라.
산사가 있는 이 자리가 일체 말 없이 고요한데 무엇 때문에 서풍이 일어나 동쪽 숲과 들을 흔드는가? 여기서 서풍이라는 건 서쪽인 인도에서 일어난 바람, 그러니까 부처님 가르침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불교가 인도의 동쪽에 있는 중국으로 전해진 인연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대목인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원 스님은 혼해 스님께 『금강경』을 배우다가 이 ‘일성한안여장천’의 의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처럼 혼해 스님은 경전 구절에 담긴 깊은 의지를 항상 묻고 거기에 대한 답을 재촉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는 스승이었다. 만약 질문에 대한 답변이 신통치 않거나 머뭇거림이 있으면 얼이 빠질 만큼 혼을 내기도 한다.
한번은 혼해 스님이 『종성』에 나오는 게송을 낭송하고는 대원 스님에게 물었다.
靑山疊疊彌陀窟 청산의 겹겹이 있는 그대로가 미타굴이요
滄海茫茫寂滅宮 창해의 넓고 푸른 바다는 적멸궁이라
物物拈來無罣碍 사물마다 다 걸림이 없는데
幾看松亭鶴頭紅 소나무 정자에 학 머리 붉어짐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
“너, 아침에 종성했지?”
대원 스님이 그렇다고 답하자, 혼해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래, 학 머리 붉은 거 봤어?”
이런 질문은 일반적인 게 아니다. 다른 강사스님들은 그저 글만 새겨주고는 다음 대목으로 넘어가는데 혼해 스님은 이처럼 경전이 뜻하는 의미, 의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대원 스님이 솔직하게 답했다.
“그런 이야긴 들었지만 직접 보진 못했습니다.”
이에 혼해 스님이 꾸짖었다.
“네가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다 봤다 해도 그건 껍데기 맛을 본 것뿐 그 속은 절대 맛을 보지 못한 것이다. 남이 침 뱉어 놓은 걸 핥아먹는 것이고 송장 뼈다귀만 핥은 것이지 그 깊은 의지는 꿈에도 보지 못한 것이니 불법 문중에 들어와서 그렇게 생활한다면 차라리 양잿물을 먹고 수챗구멍에 가서 처박혀 죽는 것만 못하다. 그런 사람은 아무 쓸모도 없다.”
혼해 스님은 대원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불법의 정수를 배우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었다.
“대장부 몸 받기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 어렵고, 불법을 만나서도 바른 정법을 배우기는 더욱 어렵고, 바른 정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너는 팔만대장경의 대교를 이렇게 보는 사람이 됐으니 복이 많구나. 또 훌륭한 선지식도 만나기 어려운데 다행히 날 만났으니 네가 복이 많은 것이다. 그러면 이 경을 볼 때 그 껍데기만 맛을 볼 게 아니라 진짜배기 맛을 보아야 옳지 않겠느냐?”
이런 혼해 스님이었기에 경전의 의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양잿물 마시고 수챗구멍에 가서 처박혀 죽는 것만 못하다’고 제자들의 분심을 일으켰다. 혼해 스님께 이처럼 야단을 맞은 대원 스님은 스승의 말씀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공부는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어느 날 혼해 스님이 『금강경』을 강의하던 중 대원 스님에게 물었다.
“전백장과 후백장이 있는데 전백장은 ‘불락인과(不落因果)’라고 답해서 여우 몸에 떨어졌고 후백장은 ‘불매인과(不昧因果)’라고 해서 여우 몸을 벗어났다. 그렇다면 ‘불락인과’라고 답한 전백장은 어째서 여우 몸에 떨어졌겠느냐?”
이 백장야호(百丈野狐) 이야기는 『무문관(無門關)』 제2칙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백장 선사(후백장)가 설법할 때마다 어떤 노인이 와서 늘 대중들 뒤에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법문이 끝나면 대중들 속에 섞여 슬며시 사라지곤 했다. 백장 선사는 그 노인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는데 하루는 법문이 끝나 대중들이 모두 물러갔는데도 그 노인만은 남았기에 물었다.
“노인장은 뉘시오?”
“저는 옛날 가섭불 당시 이 절에 백장이란 이름으로 살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어느 학인이 “대승을 공부하는 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하고 묻기에 제가 “불락인과, 인과에 떨어지지 않느니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답변으로 인해 오백 생 동안 여우 몸을 받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선사께서 한마디 말씀으로 제가 여우의 몸을 벗게 해주길 청합니다.”
이에 백장 선사가 “그럼 노인장이 내게 같은 질문을 해 보시오.”라고 했다. 이에 노인(전백장)이 물었다.
“대승 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백장 선사가 대답하였다.
“불매인과, 인과에 어둡지 않습니다.”
전백장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닫고는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내일 뒷산에 가시면 제가 벗어버린 여우의 몸이 있을 것입니다. 선사께선 죽은 스님에게 하듯 다비를 해주시길 청합니다.”
이튿날 아침 백장 선사는 열반종을 쳐서 대중들을 모두 모이게 했다. 대중들은 ‘우리 절에 앓아누운 스님이 한 분도 없는데 어째서 큰스님이 열반종을 치실까?’하며 모여들었다. 이에 백장 선사는 뒷산에 죽은 스님이 계시니 다비를 하러 가자며 대중을 인솔해 뒷산으로 가니, 바위 밑에 죽어 있는 여우가 있었다.
“이 여우는 5백 생(生) 전의 선사이시니 스님의 예로써 다비를 해드려라.”
이에 대중들은 백장 선사의 분부대로 여우를 화장하여 다비를 마쳤다. 다비를 마친 백장 선사가 법당으로 내려가 법문할 때 제자인 황벽(黃蘗)이 여쭸다.
“스님께선 무슨 신통한 법이 있길래 전백장을 여우의 몸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까?”
이때 백장 선사가 답했다.
“그건 너한테만 살짝 말해줄 테니 내 곁으로 오너라.”
그러자 황벽은 백장 선사가 있는 법상 앞으로 다가갔다. 백장 선사는 주장자를 잡고는 황벽이 가까이 오면 한 대 후려치려고 했는데, 황벽이 그 눈치를 알아채고는 오히려 백장 선사의 뒤쪽으로 가 등을 치고는 달아났다.
이에 백장 선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 산중에 있는 대중 가운데 후백(侯白)만 있는 줄 알았더니 후흑(侯黑)도 있구나. 붉은 수염 오랑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오랑캐 붉은 수염도 있어.”
여기서 후백은 천하제일로 소문난 도둑을 가리킨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어떤 큰 부자가 집안의 온갖 보물들을 여기저기 숨겨 놓은 나머지 나중엔 어떤 걸 어디에다 숨겼는지 자신도 모르게 되었다. 그런데 후백은 그 보물들이 어느 곳에 어떻게 숨겨졌는지 훤히 다 알고 있어서 하루는 그 부잣집 담을 넘어가 보물을 샅샅이 찾아 자루에 담았다.
그러고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 내가 보물을 다 훔쳐도 제 집에 보물 없어진 걸 모르는구나.”하고 웃었다.
그런 후백이 하루는 길을 가다 옹달샘 가에서 무언가 찾고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옹달샘을 들여보다가 가슴을 쳤다가, 펄쩍 뛰었다가, 다시 또 샘을 들여보다가 또 가슴을 치고 빙빙 도는 등 희한한 행동을 했다. 그걸 보던 후백이 옹달샘으로 다가가 물었다.
“당신 지금 뭘 찾고 있는 것이오?”
“내가 우리 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아주 진귀한 보물을 호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목이 말라 여기서 물을 마시려고 엎드렸는데 그만 그 보물이 샘물 속으로 떨어졌네요. 그런데 얼마나 깊이 떨어졌는지 찾을 수가 없어 지금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후백이 걱정할 것 없다며 자기 자랑을 했다.
“나는 물속이고 뭍이고 간에 남의 물건 찾아내는 건 귀신이니 걱정 시오. 당신이 빠뜨린 보물 내가 찾아줄 테니까.”
이러면서 후백이 샘물 밑으로 들어가 바닥을 살펴봤지만 아무리 보아도 보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와 보니 그 사내는 후백이 내려놓은 보물자루를 메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도망친 사내 이름이 바로 후흑이었다. 그 뒤로 후백이 천하 사람을 다 속이고 후흑이 그런 후백을 속였다는 말이 생겼다. 백장 선사는 자신을 후백에, 제자 황벽은 후흑에 각각 비유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수행자들이 공부할 때는 모든 조사스님들이 화두를 내린 것에도 속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인용되기도 한다.
『금강경』을 가르치던 혼해 스님이 백장야호 이야기를 들어 “어째서 불락인과라고 말한 전백장은 여우 몸에 떨어졌고, 후백장에게 불매인과라는 말을 듣고서야 여우 몸을 벗어났느냐?”고 묻자 대원 스님은 답을 못했다.
대원 스님은 그 일에 분심을 느껴 자나 깨나 화두에 몰두하느라 며칠이 훌쩍 지나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다가 혼해 스님이 “사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느니라.”하고 뒤에서 소리치는 걸 듣고는 바로 깨달았다. 그것이 두 번째 깨달음이었다.
대원 스님이 혼해 스님께 달려가 말씀드렸다.
“설사 불매인과라 해도 여우 몸에 떨어지는 게 있고 불락인과라 해도 여우 몸에 떨어지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자 혼해 스님이 분부했다.
“그래? 네가 거기서 깨달은 바가 있으면 송을 하나 지어 올려봐라.”
대원 스님은 곧 두 번째 오도송을 지어 스승께 바쳤다.
大喝一聲倒乾坤 크게 한 소리에 하늘 땅이 무너지고
日月星宿失光明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었네
遽然一步回頭看 급히 한 걸음 나아가 머리를 돌이켜보니
露山溪水谷外流 산은 드러나고 시냇물은 계곡 밖으로 흐름일세.
이때 혼해 스님은 대원 스님을 크게 칭찬하며 ‘태허(太虛)’라고 법호를 지어주었다.
이처럼 대원 스님은 선과 교를 겸수한 혼해 스님께 금강경』을 배우던 중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혼해 스님이 단순히 경전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부처님과 조사스님의 의지를 알아낼 수 있도록 지도한 덕택이었다. 그런 교육 방법으로 인해 대원 스님은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고 그 결과 간화선 수행을 할 때와 똑같이 깨달음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혼해 스님은 대원 스님의 수행에 깊은 영향을 주신 스승이었다.
청암사 전경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