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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원 스님이 아니오

대원 스님이 경전 공부를 하던 1960년대 초에는 불교계 정화로 한창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당시엔 비구승보다 대처승들이 절대다수여서 전국의 거의 모든 사찰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지속된 비구승들의 요구와 이승만 대통령의 여러 차례에 걸친 유시(諭示)에 따라 대처승들이 차지했던 전통 사찰을 비구승들이 차츰 되찾던 시기였다. 그 과정에서 비구와 대처 사이에 갈등이나 폭력이 불가피했다. 대원 스님도 청암사에서 지낼 때 그런 과정을 직접 겪어본 역사의 증인이었다. 부처님 계율에 따르면 출가해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스님이라면 독신 비구로 살아야 한다. 결혼을 한다거나 처자식을 부양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1872년부터 승려의 대처와 식육(食肉)이 허용되었다. 그 결과 승려들이 결혼하여 절에서 함께 지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 시기에 개화의 물결을 따라 한국의 승려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일이 많아졌는데 독신 비구승으로 떠났던 그들 대부분은 귀국할 때 처자식을 데리고 들어왔다. 일제강점기에는 그런 한국의 유학승들이 더욱 많이 늘었다. 그 결과 해방 직전에는 전국의 비구승 중 90%가 대처승이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였다. 이에 따라 해방 이후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비구승들은 대처승이 전통사찰에서 수행하는 걸 비난했고 일반 불자들도 비구승들의 뜻에 동조하면서 비구와 대처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대원 스님이 경을 공부하던 청암사에도 대처승들이 주요 전각을 차지하고 주인 노릇을 했기에 하루는 비구 측 학인들이 대처승이 차지했던 큰절로 쳐들어가 격론을 벌였다. 이른바 대중공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때 대처승 쪽에서 일본 도쿄대 법학과를 졸업한 스님이 비구승들에게 물었다. “스님들이 왜 주거침입을 합니까?” 이렇게 묻자 비구승이 반박했다. “이건 주거침입이 아니오. 본래 부처님 법에는 비구승이 절에서 사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니 대처승들은 이 절에서 나가야 합니다. 대처승은 이 절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게 부처님 법입니다.” 이러자 도쿄대 출신의 대처승은 부처님 계율을 따졌다. 그는 승복을 입긴 했지만 머리카락은 속인들처럼 길게 기르고 있었다. “부처님 가르침 중에서 먼저 율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절대 싸우지 말고 화합하라고 했는데 스님들이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렇게 쳐들어와서 무작정 우리에게 나가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계율에 어긋나는 거 아닙니까? 이건 화합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겠는데 스님들 가운데 4바라이계(波羅夷戒)를 한 번도 범하지 않은 분이 있으면 나와 보세요.” 여기에 언급된 4바라이계란 음행, 도둑질, 살인, 거짓말 등 네 가지를 가리킨다. 그 머리 기른 대처승이 이렇게 묻자 비구승 누구도 대응하지 못했다. 음행과 도둑질, 살인은 아니더라도 거짓말은 누구나 한두 번쯤 해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그날 저녁 고봉 스님이 대원 스님에게 지시했다. “너 수도암에 올라가서 봉주 스님더러 내일 아침에 내려오시라고 일러라.” 봉주 스님은 불교 정화 때 청암사 대중 가운데 가장 앞장섰던 비구 중 한 분이었다. 대원 스님은 곧 수도암으로 올라가 고봉 스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을 때 비구승들은 다시 큰절로 올라가 서로 마주 앉아서 대중공사를 시작했다. 그때 수도암에서 내려온 봉주 스님이 머리 기른 대처승을 보고 말했다. “여기 이 자리는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대중공사하는 자리 아닙니까? 불가에선 머리를 기른 불자를 처사라 부르는데 왜 처사가 스님들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오? 이 자리는 처사가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니라 스님들만 공사하는 자리이니 주지 스님 말고 처사는 당장 나가시오!” 이렇게 말하자 그 똑똑하던 도쿄대 출신 대처승은 “아, 예!”하고는 공손히 방을 떠났다. 청암사 정화는 그처럼 싱겁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바로 그 머리 기른 대처승이 빌미가 되어 다시금 일이 생겼다.
청암사에서
사실 대처승은 부처님 계율을 어긴 게 문제였지만 일본에서 불교를 깊이 공부한 실력은 높이 인정해주어야 했다. 청암사에서도 비구승 중에서 마땅한 강사스님이 없다 보니 그 머리 기른 대처승을 계속 머물게 했다. 그 와중에 학인들 30명과 대처승들 사이에 서로 치고받는 큰 싸움이 벌어졌다. 불리해진 대처승들은 청암사를 관할하는 증산지서에 고소를 했다. 이에 따라 폭력에 가담했던 비구승들은 모두 도망치고, 대원 스님과 한 학인만 남았다. 증산지서의 주임은 폭행에 가담한 학인들이 모두 달아났다는 보고를 받고는 남아 있던 두 비구 스님을 구속하라고 지시했다. 실적을 내지 못해 상부의 문책을 받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대원 스님이 가사 장삼을 수하고 방문 밖으로 나설 때였다. 낯선 사람이 지게를 지고 나타나 인사했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고 난 대원 스님이 “어떻게 오셨습니까?”하고 묻자 지게꾼은 신분증을 보이며 “나는 증산지서에 있는 순경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체포해야 할 스님들이 놀라 달아날까 봐 지게꾼 차림으로 변장해 출동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게꾼 순경이 대원 스님에게 물었다. “공양주 보살의 방이 어디오?” 그때만 해도 대원 스님은 자신이 체포 대상인 줄을 모른 채 공양주 보살의 방을 친절하게 알려주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때 순경이 공양주 보살에게 물었다. “여기 대원 스님이 어디에 있소?” 그러자 공양주 보살은 밖으로 나서며 대원 스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스님이 바로 대원 스님입니다.” 이에 순경이 대원 스님에게 달려와 물었다. “스님이 대원 스님입니까?” 그제야 앞뒤 사정을 알게 된 대원 스님이 임기응변으로 답했다. “난 대원이 아니오. 전에 나처럼 생긴 진짜 대원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이 떠난 뒤 내가 이 절에 오자 다른 스님들이 대원 스님과 똑같이 생겼다면서 대원이라고 불렀던 것을 듣고 공양주 보살이 오해한 모양이오.” 이 말을 듣고 순경과 공양주 보살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마침 대원 스님을 잘 아는 총무스님이 나타나 말했다. “이 스님 말이 맞소. 진짜 대원 스님은 다른 스님들하고 산을 넘어 도망쳤소.” 이렇게 되어 대원 스님은 그날 체포를 겨우 면했고, 계속 경전을 공부하기 위해 통도사로 옮겼다.
학산 대원 대종사와 법희 스님, 청암사에서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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