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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을 배우고 익힌 과정

대원 스님은 1962년부터 1966년까지 4년 동안 경전 공부를 했다. 근래에는 종합 수행도량인 총림(叢林) 등 큰 사찰에 설치된 강원(講院)과 동국대학교, 중앙승가대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4년 과정으로 교학을 익힐 수 있지만 1960년대 초만 해도 동국대학교 외에는 그런 체계적인 학습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당시 불교계에서 강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해방 이후 빚어진 극심한 비구·대처 사이의 갈등과 사회적인 환경도 하나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한국 불교계는 일제강점기를 맞은 이후 일제의 압력과 영향을 받아 일부 의식이나 문화가 왜색화되는가 하면 승려들의 대처(帶妻)가 허용되면서 큰 혼란이 일어났다. 반면 사찰의 왜색화에 반발한 비구승들이 참선 수행에 전념하면서 불교의 전통을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숫적으로 열세였다. 그렇기에 해방 이후 불교 정화 과정에서 비구승들이 대처승들에게 빼앗겼던 절을 되찾기 위한 알력과 갈등은 극심했다. 더구나 당시엔 사회적으로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행자들이 체계적으로 교학을 익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교학에 밝은 비구승도 드물었기에 훌륭한 강사스님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 실정이고 보니 출가한 학인들은 강사스님이 있는 절을 찾아다니며 경전을 배웠다. 대원 스님의 경우 학인 때 남장사에서 청봉 스님에게 『초발심자경문』과 『치문』을 배웠으며, 청암사로 가서 고봉 스님에게 『서장』과 『선요』 등을, 통도사 성능 스님에게선 『능엄경』, 호경 스님에게는 『기신론』과 『원각경』을 각각 배웠다. 또 남장사의 혼해 스님에게 『화엄경』과 『금강경』을 배웠으며, 직지사 관응 스님께 『유식』과 『선문염송』을 배웠고 선암사 출신의 석롱 스님에게는 『도서』, 『절요』, 『기신론』 등을 배웠다. 대원 스님뿐만 아니라 당시 정식 강원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사찰로 출가한 스님들은 대부분 명망 있는 강사스님을 찾아가서 교육을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원 스님은 출가 초기에 교학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들을 많이 겪었다. 남장사의 경우 따로 강원을 설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교남강당(嶠南講堂)’을 설치하고 처음 출가한 행자들의 기초 교육만이라도 가르칠 수 있도록 했다. 그때 교남강당에선 청봉 스님이 강의를 맡았는데 『초발심자경문』, 『치문』, 『서장』 등을 가르쳤다. 출가 후 몇 년이 지나 교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대원 스님은 남장사 교남강당에서 강의를 맡은 청봉 스님을 우리나라 최고의 강사스님으로 알고 열심히 배웠다.
1963년 남장사에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통도사 강원을 졸업한 재용 스님을 통해 청봉 스님의 실력이 사실상 형편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청봉 스님은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을 ‘차가운 산에서 주워서 얻었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인명인 줄 모르고 한자의 뜻대로 풀어준 청봉 스님의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서장』을 배우다가 청봉 스님에게 된통 얻어맞았다. 청봉 스님이 ‘주세영(朱世英)’이란 인물을 ‘붉은 것을 세상 꽃부리에 드날린다.’라고 풀이하는 걸 듣고는 “스님, 주세영은 혹시 사람 이름이 아닙니까?”라고 여쭌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청봉 스님은 그 말을 듣고는 대나무 장대로 사정없이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강당 앞을 지나가던 주지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 저녁에 대원 스님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뒤, 청봉 스님은 소리소문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다. 그나마 한 분 계시던 강사스님이 떠난 뒤라 대원 스님도 경전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어느 날 새벽, 그동안 몸담았던 남장사를 떠나 직지사로 찾아갔다. 직지사에는 대강백으로 명성이 자자한 고봉(高峰, 1901-1967) 스님과 관응(觀應, 1910-2004) 스님이 계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원 스님은 먼저 고봉 스님께 배울 생각이었는데 하필이면 고봉 스님이 청암사로 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도 청암사로 찾아갔다. 그 후 고봉 스님을 가까이 모시며 본격적으로 교학을 배워나갔다. 그 뒤로 스님은 성능, 호경, 혼해, 관응, 석롱 스님 등 당대에 내로라하는 강사스님들에게 교학을 익혔다. 대체로 강사스님들은 선을 잘 모르고 경전에만 밝은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선과 교에 모두 밝은 스님들도 있었다. 고봉 스님이나 혼해 스님이 그런 분들이었다.
교남강당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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