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식광’에서 벗어난 첫 번째 깨달음

열네 살에 남장사로 출가한 대원 스님은 누구 못지않게 고되고 혹독한 행자 시절을 보냈다. 절 생활이 생소한 데다 주어진 일이 많고 벅차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런 가운데서도 스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몇 가지 수행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염하는 염불 수행을 했고, 그 다음엔 본격적으로 경전을 배웠으며, 그 뒤로는 평생 간화선 수행으로 일관하였다. 출가한 뒤 날마다 고초를 겪던 행자 때의 일이다. 하루는 남장사로 찾아온 한 객승에게 어떻게 하면 행자 생활을 잘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때 객승이, 자나 깨나 관세음보살을 염하라고 대답해주었고, 대원 스님은 곧이곧대로 그 말대로 틈만 나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을 했다. 그랬더니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사나흘 뒤의 일들이 모두 보였으며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독심술까지 얻게 된 것이다. 이처럼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염할 때 앞날이 눈앞에 보였던 현상에 대해 대원 스님은 “염불을 일념으로 하든, 관법을 하든, 참선 화두를 하든, 무슨 수행을 하든 일념이 되면 그런 가운데서 우리의 의식이나 생각이 잔잔한 파도처럼 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했다. 아울러 이것은 파도가 없는 밤바다에는 별과 달이 비치지만, 파도가 치면 그런 게 보이지 않는 이치와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다시 말해 우리 중생이 가진 복잡한 여러 생각이 파도라면 그런 파도가 있는 한 진리를 볼 수 없지만 파도가 잔잔해지고 고요해지면 의식이 맑아지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현상과 같다는 뜻이다. 수행자가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말 그대로 일념이 되어 의식이 맑아지면 대원 스님이 경험했던 것처럼 모든 게 다 보이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스님은 행자 시절에 일념으로 염불을 하다 보니 앞날의 일들이나 상대의 마음을 저절로 알게 되어 오히려 곤경을 치렀다. 주지 스님이나 어른 스님들께 쓸데없는 소리 한다며 야단을 맞거나 심지어 매를 맞기도 했다. 그렇게 야단을 맞고 매를 맞아도 대원 스님에게 앞날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훤히 알게 되는 현상은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스님은 관세음보살만 일념으로 부른 까닭에 마음이 편안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정말 도를 얻게 된 것인지, 그렇게 하는 게 참으로 바른길로 가는 것인지 혼동스러웠다.
사미(沙彌) 시절
그러던 어느 날, 남장사의 만옹 조실스님과 수행에 대한 문답이 시작되었다. 그때 대원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염하니 세상이 환히 보인다고 말하자 만옹 스님은 주장자를 세 번 치고는 “내가 지금 무슨 법문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당시 행자였던 대원 스님이 ‘절 무당’처럼 이상한 길로 빠져드는 것을 단번에 고쳐 주려는 방편이었다. 조실스님이 주장자를 치면서 그게 무슨 법문이냐고 묻는 순간, 대원 스님은 ‘앞뒤 생각이 탁 끊어지고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러자 조실스님은 “왜 말을 못하느냐?”고 물으며 주장자로 어깨를 두 세대 쳐서 경책했다. 조실스님은 다시 다그쳤다. “이걸 모르면 다 도깨비놀음이고 허망하며 꿈이다. 네가 아는 건 다 소용이 없어. 당장 가서 내가 무슨 법문을 했는지 탐구해봐.” 그 순간부터 조실스님의 주장자와 질문이 큰 화두가 되었다. 훗날 스님은 자신의 행자 시절에 무언가 환히 보였던 게 ‘지혜로 안 게 아니라 식광(識光)에 의해서 안 것’임을 깨달았다. 식광은 수행자가 공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하나의 고비와 같다. 제6식과 제7식을 지나 제8식까지 넘어가면서 생기는 고비라고 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경우엔 눈 밝은 어른스님들께 극복할 길을 여쭙고 거듭 여쭤야 정법의 길로 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만옹 조실스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은 그야말로 부처님 은혜였다. 대원 스님은 조실스님의 ‘지팡이 법문’을 들은 뒤로 분심(憤心)이 일어났다. 조실스님이 내린 화두를 반드시 타파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밥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새벽에 일어나거나 오직 조실스님의 화두를 탐구했다. ‘대체 노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셨던 것인가.’ 이 의심은 활활 타는 불길처럼 끊어지지 않고 쭉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에서 밥을 짓던 대원 스님에게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청솔가지를 태우고 있을 때 불이 활활 타오르더니 집도 없어지고, 솥단지도 없어지고, 눈앞에 있는 모든 게 다 없어진 듯했다. 오직 훨훨 타고 있는 불길만 부엌을 가득 채웠다. 그때 대원 스님은 ‘이게 뭘까?’ 하며 주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 솥에서 밥 끓는 소리가 ‘피이’ 하고 나면서 솥뚜껑에서 김이 ‘포르르’하고 나왔다. 동시에 발뒤꿈치가 따끔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밟았기 때문이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근만근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오르다가 그 짐을 내던지고 났을 때처럼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대원 스님은 만약 후학들이 자신과 같은 순간을 맞게 된다면 그처럼 “짐을 내려놓고 느끼는 찰나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 찰나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게 바로 깨달음이 찾아온 때라는 뜻이다. 스님은 바로 그 순간 ‘아하! 바로 이것이었구나.’하고 깨달았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시구가 떠올랐다. 스님은 출가 전 속가의 부친에게 『소학(小學)』까지 배웠지만 그 정도로는 운에 맞춰 게송(偈頌)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문을 잘 아는 총무스님께 여러 번 사정해 자신이 깨달은바 첫 번째 깨달음의 노래[오도송(悟道頌)]를 시로 옮겨 적을 수 있었다. 竈內火光蓋天地 부엌 안에 한 무더기 불빛 천지를 덮고 鼎中湯聲脫古今 솥 안에 끓는 한 소리 옛과 지금을 벗어났음이라 拄杖三下是何法 주장자 세 번 치면서 무슨 법이냐 하니 目前歷歷只底是 눈앞에 역력해서 다만 이것이로다. 이 오도송을 조실스님께 보여드리고 칭찬을 받았다. “행자인 네가 이런 말을 하다니 대단하구나.” 그러면서 조실스님은 스님의 깨달음을 점검하기 위해 질문했다. “두 스님이 길을 가는데 앞에 가는 스님이 칼을 차고 걷기에 걸을 때마다 철그렁철그렁 소리가 났다. 그러니까 뒤에 따라가는 스님이 칼 소리가 난다고 했다. 그러자 앞의 스님이 아무 말 없이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뒤에 따라오는 스님에게 전해줬다. 그렇다면 앞 스님은 왜 칼 소리가 난다는 뒤의 스님에게 수건을 주었겠느냐?” 이때 대원 스님은 “아이고, 아이고!”하고 곡을 했다. 그건 대원 스님이 임기응변에 능하거나 지식이 많아 나왔던 대답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수행자라면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행위였다. 조실스님이 물었다. “왜 곡을 하느냐?” “네, 동쪽에 초상이 났는데 서쪽 사람이 와서 조문을 합니다.” 이렇게 스님이 막힘없이 답하자 조실스님은 신통하다며 다시 칭찬해주었다. “허허! 그것참 기특하구나. 이걸 통과하는 스님들이 없었는데 네가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하여 힘든 관문을 넘어갔구나.” 정리하자면 대원 스님은 출가 후 한 때 염불 수행에 전념한 나머지 ‘식광’이 열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알거나 앞날을 내다보는 신통력을 얻었다. 하지만 만옹 조실스님의 지도로 그런 수행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 고치게 되었고 그 대신 일념으로 화두를 깨뜨려 생애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남장사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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