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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실천

미국에 다녀온 후 대원 스님은 기존 학림사 부지를 넓혔으며 건축 허가를 받아 시민선원 불사를 시작하여 2001년에 오등시민선원을 개원하고 전법과 포교에 심혈을 기울였다. 시민선원 운영을 위해 인연이 있던 충남대학교 교수들을 만나 자문을 받았다. 그 결과 첫 모임에서 약 20-30명 정도의 교수들이 참석했다. 이때 운영위원회 위원장은 충남대학교 법학장 한복룡 교수가 맡았는데 대원 스님은 이 자리에서 미국에서 겪은 일들을 털어놓고 그 일을 계기로 시민선원을 짓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회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시민선원을 짓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참선 명상을 하려고 대전 시내에 이만한 건물을 얻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 건물을 여러분들에게 무상으로 내어드리겠습니다. 대신 여기 와서 공양하고 전기요금 내는 것 정도는 여러분들이 운영위원회를 조직해 자체적으로 꾸려가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 ‘시민선원 운영위원회’가 조직되어 충남대 교수들을 비롯해 많은 불자들이 시민선원에서 참선 수행을 시작했다.
학림사 오등시민선원
얼마 후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충남도지사, 대전시장 등 기관장들과 만났다. 월드컵이 열리면 외국 손님들이 많이 올 텐데 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할 만한 걸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관계자들이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고 있을 때 제안했다. “우리나라에는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과 정신문화가 많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참선수행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학림사에 며칠씩 머물며 사찰 생활을 체험하고 시민선원에서 직접 참선수행을 해본다면 얼마나 값진 체험이 되겠습니까?” 모두 그게 좋겠다며 동의했다. 그래서 학림사에서 한국 최초로 템플스테이가 시작되었다. 이때의 일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대한불교조계종 차원에서 템플스테이를 시작하였으니, 지금 사찰마다 붐을 이루고 있는 템플스테이의 원조는 학림사였다. 학림사 템플스테이가 시작되자 많은 외국인들이 참여해 한국의 전통적인 사찰문화를 체험해보고 깊은 추억과 인상을 간직하게 되었다. 학림사 템플스테이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 생명공학 박사들도 참여하였다.
학림사 템플스테이관
지금도 주말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참선 수행을 위해 학림사 시민선원을 찾고 있다. 시민들은 법문을 듣고 철야정진한 뒤 일요일 아침엔 스님과 문답하며 점검을 받는다. 주말에 열리는 철야정진 외에 석 달씩 수행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스님들과 재가 수행자들이 역사적인 3년 용맹결사를 원만하게 회향하였고, 스님들은 그 뒤에도 1년씩 용맹정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치열한 수행은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으로 정착되었다. 대원 스님은 출가 후 여러 번 깨달음을 얻고 당대의 선사들로부터 인가를 받은 후 오늘도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대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대원 스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 고귀한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해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서 “내가 나를 바로 보고 깨달아 알면 그것이 바로 범부의 작은 마음에서 대성의 무한한 마음으로 바뀌어서 발돋움하기 때문에 비로소 보살행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후학과 불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씀을 덧붙였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하며 그 불심(佛心)을 아끼지 않고 밖으로 옮겨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학림사 대웅전에서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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