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동안거 때 대원 스님은 불국사로 방부를 들였다. 입승 등 중요한 소임을 맡지 않으려고 일부러 동안거 하루 전날인 음력 10월 14일에 도착했으나 조실이던 월산 스님은 이미 다른 스님으로 정해놓은 입승 소임을 대원 스님에게 맡겼다. 스님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었다.
1984년 불국사 선원에서 동안거
하루는 월산 스님이 ‘가섭이 미소를 짓지 않았더라면, 한없이 맑은 바람[청풍(淸風)] 누구에게 전해주었겠는가’라는 주련의 구절을 보며 물었다.
“어떤 것이 청풍인고?”
“오늘 삭발 목욕일에 조실스님께서 삭발하고 목욕을 하시니 용안이 아주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불국사 동안거 때 월산 스님은 여러 차례 질문했고 그때마다 막힘없이 답했다. 그렇게 안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월산 스님이 말했다.
“나는 이제 나이가 많으니 대원 수좌가 떠나지 말고 불국사 조실을 맡아줘.”
이 말을 듣고 손사래 쳤다.
“스님, 옛날에 사람을 쫓아내려면 조실을 하라고 권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선 절 더러 얼른 떠나란 말씀이시죠?”
“아니야, 절대 그런 게 아니야. 다만 대원 수좌가 금오 스님 쪽으로 맥을 이어서 조실을 맡아주면 좋겠어. 이제 대원 스님은 큰 회상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조실을 맡아야 할 때야.”
대원 스님이 거듭 사양했음에도 월산 스님은 날마다 찾아와 조실을 맡으라고 부탁했다. 결국 안거 해제하던 날 새벽에 걸망을 메고 도망치다시피 불국사에서 나와 법주사 복천선원으로 갔다.
1984년 복천선원에서 하안거 수행을 할 때였다. 하루는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월산 스님이 그 비를 맞아가며 복천선원으로 찾아와 말했다.
“이번에 하안거 해제하면 이곳으로 자가용을 보낼 테니 바로 불국사로 오게.”
대원 스님은 일단 “예.”하고 답한 뒤 월산 스님이 떠나자마자 자신도 복천선원에서 나와 공주 계룡산으로 향했다. 월산 스님의 부탁을 사양하는 동시에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휴가를 간 셈이었다.
대원 스님이 지금의 학림사 자리의 감나무 밑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밭에서 한 노파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날, 그 시간에 스님이 올 줄 미리 알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보살님이 이 밭 주인이세요?”
“그렇습니다. 여기 살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제가 올 줄 어떻게 알고 인사를 하세요?”
그러자 노파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제석천신께서 절 더러 모일 모시에 이러이러한 스님이 이곳에 살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오실 것이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잘 맞으라 해서 오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여기가 그렇게 좋습니까?”
“제석천이 이 자리를 지키라고 할 정도이니 더 말할 게 없지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땅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는데 그 잠깐 사이에 노파는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무슨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순간 그 노파가 관음보살의 화신이란 생각이 드는 것과 함께 그 자리에 절을 지어야겠다는 원력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평생 선방에서만 수행하느라 수중엔 불사할 돈이 없었다. 그때 선원에서 지내는 동안 시주를 자주 했던 보덕화 보살이 떠올랐다. 대전에 살고 있던 보덕화 보살은 언제든 시주할 일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학림사 대웅전 불사 현장에서
노파를 만날 때 보았던 밭은 모두 293평이었다. 이후 부동산 중개인에게 알아보니 다른 사람이 별장을 짓기 위해 그 땅은 이미 매매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이 점지해 준 그 땅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 땅을 샀다는 사람을 잘 설득하고, 보덕화 보살의 도움을 받아 땅을 매입한 뒤 불사를 시작했다. 선원(禪院)을 짓기 전, 도로를 내고 건축허가를 받는 등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창 불사를 하던 중 은사이신 고암 스님을 모셔서 터를 보여드렸다. 그때 고암 스님은 그 터가 매우 좋은 곳이라며 흡족해하셨다.
그렇게 땅을 매입하여 불사를 시작한 지 1년쯤 지났을 때였다. 월산 스님이 각지로 수소문한 끝에 그곳까지 찾아오셨다.
“대원 수좌는 여기 있으면 안 돼. 어서 불국사로 가세.”
월산 스님이 불국사로 가자며 찾아온 것은 네 번이 넘었지만 끝내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스님, ‘용성문중’의 고암 스님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제가 ‘금오문중’이신 스님의 뒤를 잇는 것은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이 점 양해해 주십시오.”
이렇게 거듭 양해와 용서를 구하고 학림사 선원 불사에 전념하였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1986년에 학림사를 창건하였으며, 1995년에는 오등선원을 개원하면서 조실로 추대되었다.
학림사에서 고암 스님과 함께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