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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선원과 향곡 스님

1975년 대원 스님은 대구 동화사 선원에서 입승(立繩)을 맡고 있었다. 그때 동화사 주지는 서운(瑞雲, 1903–1995) 스님, 조실은 향곡(香谷, 1912–1978) 스님이었는데 얼마 전 선원을 짓고 개원식을 마친 상태였다. 이전에 묘관음사에서 향곡 스님을 모신 적이 있었는데 다시 동화사에서 뵙게 된 것이었다.
동화사 대웅전
그 해, 동화사 대중들은 음력 12월 1일부터 일주일간 용맹정진을 시작해 12월 8일 성도재일(聖道齋日) 때 회향하였다. 용맹정진을 마치고 회향하는 날 새벽에 향곡 스님이 대중들에게 말했다. “오늘이 성도재일이니 각자 성도에 대해 한마디 일러보시오.” 대중들은 차례대로 돌아가며 입을 열었지만, 한결같이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때 대원 스님은 입승을 맡은 터라 ‘향곡 스님이 내게도 한마디 하라고 하시진 않겠지?’ 싶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몸을 좌우로 흔들던 향곡 스님이 말했다. “이제 입승스님 차례입니다. 한 말씀 하시오.” 대원 스님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조실스님께서 성도에 대해 한마디 이르라고 하시니 그 말씀을 드리기 전 성도하기 이전 소식을 조실스님께서 일러 주신 다음에 성도한 후를 이르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성도하기 이전 소식을 조실스님께서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그러자 향곡 스님이 간단히 답했다. “창천(蒼天), 창천!” “제가 성도하기 이전 소식을 물은 데 대한 것은 꿈에도 보지 못하셨습니다. 다시 일러주십시오.” 이때 향곡 스님이 다시 대답했다. “관(關)!” 대원 스님은 그 말을 듣고는 “할!”하고 소리친 뒤 향곡 스님의 등을 한번 치고는 문을 열고 선방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러고는 말했다. “칠일 용맹정진에 조실스님께서 경책을 잘해주셔서 회향을 잘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향곡 스님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성도한 후를 일러야지?” “여기는 동화사입니다. 오동나무 동(桐) 자, 꽃 화(華) 자를 쓰는 동화사입니다. 눈 내린 속에 오동나무꽃이 활짝 피었고 천년 묵은 해골은 눈동자가 푸릅니다.” 향곡 스님은 아무 대꾸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처소로 들어갔다. 이후 아침 공양을 마쳤을 때 향곡 스님이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향곡 스님이 물었다. “입승스님은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그게 배워서 되는 겁니까?” “그럼 내가 한 가지 묻겠네.” 이렇게 운을 뗀 향곡 스님은 남전참묘(南泉斬猫) 화두를 들어 질문했다. “조주가 신짝을 머리에 얹은 의지는 무엇일까?” “대우가 평평하게 땅을 골라놓으니 현대는 집을 한 채 잘 지었습니다.” 향곡 스님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를 점검한 뒤 말했다. “눈 푸른 납자는 속일 수 없겠구나. 내 이제 대원 수좌에 대해서 더는 건드리지 않겠다. 대원 수좌가 푸줏간에 가서 소를 잡든 사거리에서 엿장수를 하든 어느 절에 가서 방장이나 조실을 하든 건드리지 않을 것이야.” 향곡 스님은 그 뒤 대중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내가 없을 때 공부하다 의심이 나면 대원 스님에게 물어보도록 하라.”고 말했다.
향곡 혜림 대종사 진영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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