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대원 스님은 해인사를 찾아갔다. 그때 해인사에는 고암 스님이 방장으로 주석하고 계셨다. 방장실로 찾아가 삼배를 드린 뒤 여러 선방을 다니며 수행했던 그간의 일들을 말씀드렸다. 그때 고암 스님은, “아직도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화두를 들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고암 스님이 말했다.
“올해가 72년도이니 딱 맞게 왔구먼.”
그제야 대원 스님은 몇 해 전 고암 스님이 “팔구에 바다도장에서 만나세.”라고 하셨던 수수께끼같은 말씀이 떠올랐다. ‘팔구’는 8×9이니 1972년도를 뜻하고 ‘바다도장’이란 한자로 ‘해인(海印)’을 뜻하는 말씀이니 고암 스님을 다시 만난 시기와 장소가 딱 들어맞았다.
“그런데 스님, 정전백수자 화두를 어떻게 해야 해결하겠습니까?”
“잣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야지. 머리 위로 손잡을 수 없는 데까지 올라가.”
“그런 다음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가만히 서 있지 말고 한 발 내딛고 나가. 그렇게 나갔을 때를 당해서 어떤 것이 자네의 본래 면목이겠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세 번째 깨달음이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박장대소를 했다. 그 모습을 본 고암 스님이 물었다.
“뭐를 어떻게 알았길래 웃는가?”
“이것은 백 마디, 천 마디 말로도 다 이를 수가 없습니다.”
“아니야. 한마디 일러보게.”
“아무리 기묘한 말씀으로 일러도 여기서는 목숨을 잃을 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하나 물어보겠네.”
고암 스님은 이렇게 운을 떼고는 손가락으로 원상(圓相)을 그렸다.
“마조 선사가 말씀하시길, 이 원상에 들어가도 30방(棒)이요, 나가도 30방이라고 하셨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좌복을 들어 머리에 이고는, “이 좌복이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밖에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고암 스님은 주장자를 들어 치려고 했다. 대원 스님은 머리에 이고 있던 좌복을 고암 스님 쪽으로 던지고는 문밖으로 나섰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고암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눈 푸른 납자는 속이는 게 어렵지. 그럼 오도송을 지어보게.”
대원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곧바로 깨달음의 게송을 지었다.
忽聞栢頭手放語 홀연히 잣나무 꼭대기서 손 놓고 한 걸음 나아가라는 말을 듣고
廓然銷覺疑團處 확연히 의심 덩어리 녹아 깨달았네
明月獨露淸風新 밝은 달 홀로 드러나고 맑은 바람 새로운데
凜凜闊步毘盧頂 늠름하게 비로자나 이마 위를 활보함이로다.
게송을 받아 든 고암 스님은 이튿날 방장실로 다시 찾아오라고 일렀다.
다음날 찾아뵙자, 고암 스님은 학산(鶴山)이라는 법호(法號)와 함께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전법게는 스승이 제자에게 법(法)을 전해줄 때 지어주는 게송이다. 이로써 학산 대원 수좌는 조계종 종정이자 해인사 제2대 방장이셨던 고암 스님의 법을 이어받게 되었다. 고암 스님이 내린 전법게는 이렇다.
佛祖傳心法 불조가 전한 심법은
不識又不會 알지 못하고 또 알지 못함이라
趙州茶一味 조주의 차 맛이 일미이거니
南泉月正明 남전의 달은 정히 밝도다.
해인사 선방에서 하안거(73년)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82년, 대각사로 찾아가 고암 스님께 여쭸다.
“한 수행자가 조주 스님께, ‘이제 행각을 하면서 불법을 배워 보겠습니다.’라고 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시길 ‘부처가 있는 곳은 머무르지 말고, 부처가 없는 곳은 그냥 지나가라. 삼천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그릇되게 드러내지 말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수행자가, ‘그러한즉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자 조주 스님은 ‘적양화(摘楊花), 적양화로다.’라고 했습니다. 큰스님, 적양화에 대한 의지가 어떤 것인지 한 말씀 일러주십시오.”
“자네가 아는 게 있으면 먼저 일러보아.”
“적양화에 대한 의지를 말로 하자면 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금강역사(金剛力士)는 섬돌 아래 앉아있는데 신령스런 거북이는 불 속을 달립니다.”
이렇게 답하자 고암 스님이 크게 웃고는 물었다.
“그걸 선방에서 물어본 스님이 있는가?”
“향곡 스님이 물으시기에 제가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때 향곡 스님은 뭐라고 하던가?”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 자네가 선방에서 헛밥은 먹지 않았어. 참으로 공부를 잘했단 말이야. 내가 지난날에 점검을 많이 했지만 이번엔 아주 특별히 흡족하네.”
대원 스님은 고암 스님의 칭찬을 받고서 다시 질문했다.
“스님께선 적양화의 의지를 어떻게 보십니까?”
“자네 밥 먹었는가?”
“예, 먹었습니다.”
“바리때는 닦았는가?”
“예, 닦았습니다.”
“닦았으면 가서 차나 한 잔 마시고 쉬게!”
“스님, 그건 마음에 썩 닿지 않습니다. 달리 간단하게 한마디로 일러주십시오.”
“눈동자 안의 사람이 수놓은 꽃신을 신었느니라.”
대원 스님은 이런 답변은 처음 들었기에 고암 스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오늘 스님께 새롭고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 말은 어디 가서도 자랑하지 말아야 해. 극히 고준한 공안이니 함부로 말해봐야 알아듣지도 못하고 빈축이나 살 것이니 아껴야 한단 말이야.”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1986년의 어느 날, 서울 대각사로 찾아가 고암 스님께 삼배를 드렸다. 그날은 일정이 바빴던 까닭에 이런저런 안부를 여쭙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고암 스님이 말렸다.
“어딜 가려는가? 잠깐 앉아보게.”
“예, 스님. 급히 갈 데가 있습니다만 무슨 일 있으세요?”
“오늘 내가 전법의식을 해야 하니 대중들 모두 대웅전에 모이라고 해.”
갑작스럽게 무슨 전법의식을 하실까 싶어, 다음에 하면 안 되겠냐고 여쭸다. 고암 스님은 시간이 없다며 전법의식을 바로 치르게 했다.
대각사
그날 대각사 대웅전에서는 여러 대중이 모인 가운데 고암 스님이 대원 스님에게 법을 전하는 전법의식이 진행되었다. 고암 스님은 입고 있던 가사를 벗어 대원 스님에게 입게 했으며 발우와 법장, 불자(拂子) 등도 신표(信標)로 주었다. 이로써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 → 용성 진종(龍城震鐘, 1864-1940) → 고암 상언 → 학산 대원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이 완성되었다.
고암 스님은 만년에 미국으로 포교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떤 흑인이 몰던 트럭에 치여 뇌출혈이 일어났다. 사고를 당할 땐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았지만 귀국한 뒤로 후유증이 나타나 큰 병원에 입원했다. 그 무렵, 고암 스님께 문병을 가서 여쭸다.
“큰스님, 이때를 당하여 한 말씀 일러주십시오.”
그러자 고암 스님은 다리를 들어 보였다.
“다시 분명하게 한 말씀 일러주십시오.”
고암 스님은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한 번 굴린 뒤 주먹을 불끈 쥐고는 위로 들어 보였다. 이에 대원 스님은 “예, 스님.”하고는 삼배를 올렸다. 그제야 고암 스님은 주먹을 거두었다.
그 뒤 고암 스님은 1988년 양력 10월 25일(음력 9월 15일) 해인사 용탑선원에서 입적했다.
고암 스님 사리 수습 발표장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