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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들을 찾아서

대원 스님은 제대 후 직지사 제산 정원(霽山淨圓, 1862-1930) 선사의 다례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엔 고암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와 있었다. 그때 고암 스님께 입실 인가를 받았다. 얼마 후 동국대를 다닐 생각으로 서울 대각사로 올라갔다. 대각사에서 부전으로 지내며 대학을 다닐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각사에는 각지에서 올라온 스님들로 인해 대원 스님이 머물 방이 없었다. 그때 대각사 주지스님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사찰에서 지내며 학교를 다니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대각사에서 지내는 게 어렵다는 뜻이었다.
대각사
마침 대각사에는 고암 스님이 와 계셨다. 그래서 고암 스님 계신 방으로 들어가 삼배를 올린 뒤 대각사를 찾아온 사유를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내심으론 고암 스님이 어떻게든 대각사에 거처를 마련해주시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고암 스님은 고개를 저었다. “수좌는 참선 수행을 해야지 학교를 다니는 건 부질없는 짓이야. 선방을 찾아보게.” “그럼, 스님은 언제 또 뵐 수 있겠습니까?” “팔구에 바다 도장에서 만나세.” 고암 스님이 이처럼 수수께끼와 같은 말씀을 하시니, 등을 떠밀린 기분이 들어 잠시 서운했다. 고암 스님께 하직 인사를 드린 뒤 대각사를 나와 전강(田岡, 1898-1975) 스님을 뵙기 위해 인천 용화사로 갔다. 하지만 전강 스님은 이미 용화사를 떠나 의정부 쌍용사에 머물고 계신다고 했다. 제산(霽山) 선사를 은사로 출가한 전강 스님은 1921년 23세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 당대의 선사들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많은 후학들을 양성한 선지식이었다. 쌍용사로 찾아간 대원 스님이 전강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청했다. “스님, 제게 화두를 하나 내려 주십시오.” 전강 스님이 물었다. “어떤 학인이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여쭈니, 조주 스님이 “무(無).”라고 대답했어. 왜 ‘무’라고 했을까?” 이에 대원 스님이 다시 청했다. “스님, 그런 화두 말고 스님의 화두를 하나 주십시오.” 그러자 전강 스님이 자세를 바로 한 뒤 말했다. “내게 그렇게 청하는 수좌가 별로 없었는데 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줄 아느냐? 그럼 내가 화두를 하나 주마.” 전강 스님은 이렇게 말한 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무!” 대원 스님이 대꾸했다. “예, 지금은 스님께서 주시는 화두 같습니다.” 대원 스님은 이렇게 ‘무’자 화두를 받고는 경기도 의왕에 있는 청계사(淸溪寺)로 찾아갔다. 당시 청계사엔 금오 태전(金烏太田, 1896-1968) 선사가 주석하고 있었다. 16세에 금강산 마하연으로 출가한 금오 선사는 현대 한국 불교계를 이끈 ‘월자(月字) 문중’의 스승 되는 분으로, 철저한 수행과 엄한 계율로 불자들의 존경을 받던 분이었다. 금오 선사는 지리산 칠불암에서 함께 수행하던 대중 7-8명에게 ‘정진하다 죽어도 좋다’는 서약서를 쓰게 한 뒤 용맹정진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금오 선사를 뵙기 위해 청계사에 이르렀더니, 금오 선사가 대뜸 호통을 쳤다. 본래 힘이 장사인 데다 목소리도 우렁찬 금오 선사였기에 웬만한 수좌들은 한마디만 듣고도 기가 죽는 게 일반적이었다. “네 이놈! 어디에서 왔느냐?” 그때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내가 그걸 묻는 것이냐며 때릴 것이고, 어디에서 온 게 아니라 해도 때릴 것이며, 가만히 있으면, 왜 어른이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하는 것이냐며 때릴 게 분명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여쭸다. “큰스님께서는 저를 어디에서 보셨습니까?” 이랬더니, 금오 선사는 “어허, 이놈 봐라?”하고 어이없어했다. 그러고는 다시 물었다. “그래, 내가 하나 물으마. 『금강경』에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라고 했거늘 너는 지금 어디에 머물러 사는 것이냐?” 이에 세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서 절을 드린 뒤 일어서서는 “여기 이와 같이 머무르고 삽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금오 선사는 박장대소를 하며 말했다. “하하하! 요새 이런 수좌를 본 일이 없는데 이것 참 아주 보통 수좌가 아닐세. 월탄아, 거기 차 한 잔 내오너라.” 잠시 후 금오 선사를 시봉하던 월탄(月誕, 1937-2022) 스님이 차를 내왔다. 수좌들이 금오선사에게 차 대접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 때여서 대원 스님은 더욱 환희심이 일어났다.
금오 태전 스님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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