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강원 과정을 모두 마친 대원 스님은 오대산 상원사 안거를 마친 뒤 문경 김용사에 성철 스님이 수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김용사
대원 스님이 김용사에 방부를 들이려고 했더니 성철 스님이 말했다.
“김용사 선방에서 한 철 살려면 법당에 가서 삼천 배를 하고 일주일 안에 능엄주를 다 외워야 입방을 허락해준다.”
삼천 배를 하고 능엄주를 외우느라 혼이 났다. 그런 뒤에야 선방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때 성철 스님과 여러 가지 문답을 나누며 많은 것을 배워나갔다.
당시만 해도 대중들은 성철 스님과 직접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성철 스님의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 하면 몽둥이찜질을 당했기 때문이다. 대원 스님도 성철 스님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 성철 스님 바로 옆에 세워진 몽둥이를 보았다. 그래서 자리에 선 채로 여쭸다.
“스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성철 스님이 되물었다.
“여기 앉아서 묻지 왜 서서 묻는 거야?”
“저는 여기에 앉고 서는 것을 여쭈러 온 게 아니라 조사서래의를 여쭈러 왔습니다.”
“여기 앉아서 물을 게 아니라면 돌아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돌아서서 성철 스님의 방을 나갔다. 그러고는 이튿날 성철 스님을 다시 찾아가 똑같이 여쭸다.
“스님, 어떤 게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여기 앉아서 물으라니까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몇 번을 얘기해줘야 알아들어?”
성철 스님의 반문에, “그러면 알겠습니다.”하고 절을 드린 뒤 자리에 앉았다. 결과적으로 다른 수좌들은 걸핏하면 얻어맞고 도망치기에 바빴지만 대원 스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성철 스님이 물었다.
“향엄(香嚴, ?-898) 선사가 천 길 높이에서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누가 찾아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 향엄 스님이 대답하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것이요, 대답을 안 하면 상대방이 묻는 뜻을 어기는 것이니 네가 그런 경우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대원 스님이 웃으면서 답했다.
“익은 과일은 때가 되면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지 나무 위에 있는 게 아닙니다. 익은 과일은 스스로 백화점으로 가서 만인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이때 성철 스님이 잠자코 있다가 대꾸했다.
“……조금 미흡해.”
“만약 향엄 스님이 제게 그렇게 물었다면 30봉을 내리겠습니다.”
“무엇을 잘못해서 30봉을 내리는데?”
대원 스님은 답변 대신 방석을 들어 바닥에 메치고 그냥 문을 열고 나갔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섰다.
이에 성철 스님이 말했다.
“대원 수좌가 공부를 많이 했네. 앞으로 여기서 나하고 열심히 정진하며 살자.”
얼마 후 성철 스님은 해인총림 방장으로 추대되어 해인사로 옮기게 되었다. 성철 스님은 해인사로 함께 가자고 권했으나 당시 대원 스님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여러 사찰을 오가며 공부하느라 여러 번 입영(入營)을 연기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군 복무가 늦어져 초조해진 것이다. 그게 좌불안석인지라 더 늦기 전에 군대를 다녀오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그 고민을 성철 스님에게 털어놓았다.
“스님, 제가 여태 군대에 다녀오질 못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직도 군대를 안 갔다 왔나? 그럼 마치고 와야지.”
결국 1967년 12월, 뒤늦게 입대하였다. 훈련받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몇 번이나 탈영을 고민할 정도였다. 행자 때 수없이 고초를 겪었기에 군대 생활은 대수롭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입대 후 훈련을 받아보니 탈영병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신병훈련을 마치고 수도경비사령부 예하의 30대대에 배치받았다. 경복궁 안에 주둔하고 있던 30대대 대대장은 전두환, 인사과장은 장세동이었다.
자대로 배치되어 처음 근무한 곳은 청와대 출입구 쪽에 있는 위병소였다. 그곳에서 근무를 잘하면 좀 더 생활이 편한 부대로 파견될 수 있지만, 잘못하면 전방부대로 쫒겨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선임들에게 들었다. 그래서 청와대 출입구 경비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곳이었다. 첫날 위병소 근무를 서기 전 위병장교가 말했다.
“여기선 대통령 각하께만 ‘근무 중 이상 무!’라고 경례하면 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근무 첫날에 대통령 영부인이 탄 차량을 처음으로 통과시키면서 사달이 났다. 육영수 영부인이 지나가면서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기에, 대원 스님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목격한 장교들이 부르더니, 영부인께 손을 흔드는 위병이 어딨냐며 마구 때리고는 재교육 명령을 내렸다.
그날부터 대원 스님은 지옥같은 일주일을 보내야만 했으니, 차라리 전방부대로 가는 게 나을 정도였다. 300가지가 넘는, 기합이란 기합은 모두 받아 초주검이 되곤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렇게 재교육을 받고는 다시 청와대 경호실로 파견되었다. 워낙 거칠고 힘든 재교육을 받은 덕분인지 이후로는 아무 탈 없이 병역의 의무를 마치게 되었다. 더구나 첫 위병 근무를 설 때 실수를 하고도 전방으로 쫓겨나지 않은 것도 부처님 가피로 여겨졌다.
군시절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