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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상(相) 내려놓기

대원 스님이 행자로 있던 무렵, 남장사에는 고시 공부를 하던 학생이 7명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새로 들어온 행자들과 시비가 붙어, 서로 주먹질을 하게 되었다. 고시준비생들과 행자들의 나이가 비슷하다 보니 그런 마찰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때 대원 스님은 아예 그 싸움에 끼지도 않았는데 주지스님에게 불려가 패싸움을 했다는 이유로 매를 맞았다. 무척 억울했지만, 잘못했다며 주지스님께 절하고 참회를 드렸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는 여러 대중들이 있는 자리에서 주지스님이, “어떤 도둑놈이 문고리를 벗기고 내 방에 들어와 회중시계와 돈을 훔쳐갔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도둑이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사중에 있다.”고 말하자, 대중들은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이때 주지스님이 지목한 사람은 역시 대원 스님이었다. 너무나 억울하고 기가 막혔지만 주지스님께 도둑으로 몰린 터라 일단 잘못했다며 참회부터 올렸다. 그렇게 되고 보니 고시생들은 물론 스님보다 늦게 들어온 행자들마저 도둑놈 취급을 하거나 동네북으로 여겨 깔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시생들이 불러 세우더니 시비를 걸었다. “행자가 되어 절에서 먹고 살려면 우리들에게 잘 해야지, 반찬이 그게 뭐냐? 맛있게 좀 만들어, 임마!”라고 하면서, 코피가 터지고 얼굴이 퉁퉁 부을 때까지 주먹질을 했다. 그런데도 스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잘못했다며 싹싹 빌었다. 그렇게 맞고 난 뒤 쌀을 씻고 있을 때 지나가던 주지스님이 몰골을 보고는 물었다. “네 머리에 왜 불이 난 거냐?” 이에 그날 있었던 일을 이실직고했다. 주지스님은 당장 주먹질을 한 고시생들을 불러 야단쳤다. “너희들 고시 공부를 위해 절에 왔으면 열심히 공부나 할 일이지 출가한 행자를 왜 때리는 거냐? 스님 되려고 절에서 수행하는 행자들은 우리 스님들 외에는 가르치거나 훈계를 할 수 없는데 너희들이 무슨 권한으로 행자를 때려?” 이렇게 자신을 두둔해주자 크게 감동했다. 여태 자신을 핍박하고 쫓아내려고만 하던 주지스님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구나 싶었다. 사실 출가하기 전에도 고집이 세다는 이유로 속가 아버지에게 얻어맞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절에 들어와 주지스님에게 하도 단련을 받다 보니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인‧중생‧수자상이 모두 없어졌다. 주지스님은 ‘나’라는 자존심과 아집을 모조리 없애주셨으니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스승이었다. 그렇게 네 가지 상(相)을 내려놓으니 남장사 안팎에서는 ‘희한한 동자승’이 있다며 소문이 났다. 그런가 하면 ‘대근기(大根器)’라는 별명도 붙게 되었다. 남장사에서 행자로 있던 5년 동안 찾아온 출가자들은 대략 사오백 명 정도나 되었지만 대부분 사찰에서 지켜야 할 규율과 주지스님의 엄격한 훈육을 견디지 못해 뛰쳐나갔다. 그럴 때마다 궂은일과 온갖 고초를 혼자 떠안아야만 했는데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절에 남아 성실하게 할 일을 하다 보니 조실 만옹 스님이 ‘대근기’라고 칭찬해주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대원 스님에겐 ‘대근기’란 별명이 붙었다. 네 가지 상을 모두 내려놓고 지내다 보니 무슨 불만이든 생기지 않았으며 마음마저 천진무구해졌다. 대원 스님은 이때의 일을 통해 누구든 도의 문에 들어가 깨닫고자 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견이나 자화상 등이 다 무너져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게 해주신 주지스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대원 스님은 1958년 고암(古庵, 1899-1988) 스님을 은사로 직지사(直指寺)에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대원(大元)’이란 법명을 받았다. 고암 스님은 훗날 제3대 종정에 이어 두 차례나 더 종정에 추대된 선사로 인욕과 자비행의 상징과 같은 분이었다. 고암 스님은 성년이 지난 사람이라면 승속을 불문하고 존댓말로 대했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스스로 궂은일을 도맡아 했기에 따르는 불자들이 많았다.
고암 상언 대종사 진영(은사스님)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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