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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깨달음과 오도송

대원 스님은 한창 잠 많은 청소년기에 출가한 터라 새벽 일찍 일어나 예불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밤 아홉 시에 자더라도 새벽 세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도량석을 해야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당시 주지스님은 후원 기둥에다 벨을 달아놓고 새벽 기상 시간이 되면 행자들을 깨웠다. 벨 소리는 꼭 세 번밖에 울리지 않았다. 그러면 행자들은 자다가도 벨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예.”하고 크게 대답을 해야만 한다. 그런 다음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도량석과 종성, 예불을 다 해야 하는데 잠이 깊이 들어 벨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날엔 주지스님이 조용히 나와 직접 도량석을 하는데 주지실 방문 앞에서만 목탁을 작게 치기 때문에 후원채에서 잠자던 행자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게 보통이다. 그러면 주지스님은 물조리개와 회초리를 들고 후원 숙소로 들어와 세상모르고 자던 행자들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행자들이 깜짝 놀라 일어나면, 주지스님은 사정없이 회초리를 휘둘렀다. 행자들은 회초리를 맞지 않으려고 도망치다가 잠이 덜 깬 나머지 벽이나 문에 부딪혀 주저앉기 일쑤였다. 그런 일들이 자꾸 생기자 행자들은 학교에서 배운 기억을 되살려 컵에 실을 매달아 벨에 연결해놓았다. 새벽에 벨이 울리면 그 소리를 빨리 듣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 다음 마음 놓고 잠을 자다가 벨 소리를 듣지 못하는 바람에 더 많이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러니 함께 있던 행자들이 견디지 못해 모두 떠나고 스님 혼자 남는 게 예사였다. 그렇게 되면 혼자 새벽 예불 마친 뒤 여섯 시까지 밥하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드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남장사 시절
그런 고된 생활을 하던 중 하루는 당시의 신분증명서였던 도민증(道民證)을 발급받으라는 공문이 남장사로 전달되었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가자, 어머니가 몰골을 보고는 통곡했다. “네가 어딜 갔는지 몰라 사방을 뒤지고 다녔는데 중이 되어서 왔나? 그런데 이 꼴이 뭐꼬? 절이라는 데가 이런 곳이야? 스님들이 그렇게 지독하고 못됐나? 어째서 이렇게 손이 터져서 피가 나고, 도대체 왜 이러고 살았어?” 어머니는 다시는 절에 가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지만, 대원 스님은 도민증을 발급받자마자 줄행랑을 치다시피 남장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새벽예불을 마치고 4시에 쌀을 씻을 때였다. 조실인 만옹(滿翁) 스님이 지나가면서, 춥지 않냐고 물었다. 대원 스님이 추위를 전혀 모르겠다고 답하자, 조실스님이 말했다. “그렇겠지. 백의관세음보살님이 치마로 너를 감싸주고 계시니 춥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만옹 스님이 공양실로 찾아왔다. 당시엔 모든 물자가 부족해 무엇이든 아껴 쓰던 시절이었다. 조실스님도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 양말 한 켤레라도 구멍 난 곳은 다른 천 조각들을 주워다 꿰매어 신고, 더는 꿰맬 자리가 없으면 밥풀로 붙여 쓰고는 해서 양말이 아주 두툼해지곤 했다. 그런 시절에 조실스님이 새 양말을 가져오셨다. “너 요즘 밥을 질지도 않고 되지도 않게 잘 짓는구나. 돌도 씹히지 않아서 내가 잘 먹고 있다. 이건 어떤 신도님이 보시한 새 양말인데 네가 신어라.” 대원 스님은 몇 번 사양하다가 양말을 받았다. 그때 조실스님이 물었다. “너 요즘 무슨 수행을 하느냐?” “관세음보살을 염합니다.” “그래 관세음보살을 부르니 어떠냐?” “제가 도를 통했는지 환히 알아졌습니다.” “대체 뭐가 알아졌기에 도를 통했다는 게냐?” “이틀이나 사흘 뒤의 일이 스크린에 영상이 비치듯 다 보입니다.” “너 오늘 점심 공양 뒤에 설거지해 놓고 내 방으로 오너라.” 그날 오후 대원 스님이 찾아가자 조실스님이 물었다. “네가 훤히 보이고 다 알게 됐단 말이지?” “네.” 그러자 조실스님이 주장자를 들더니 ‘탕탕탕’하고 바닥에 내리쳤다. “너 이 소리 듣고 보았어?” “네.” “그럼 방금 무슨 법문을 했는고?” 조실스님의 질문을 받고 난 대원 스님은 그만 사방팔방이 절벽처럼 콱 막히고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조실스님이 주장자로 대원 스님의 어깨를 치고는 다시 물었다. “이 절에 무당 하나가 나오게 생겼네. 너 뭐든지 알고 보인다더니 왜 대답을 못 해?” 조실스님은 그렇게 묻고는 다시 주장자로 어깨를 몇 차례 더 쳤다. 그래도 아무런 대꾸를 못하자, 조실스님이 호통을 쳤다. 대원 스님은 처소로 돌아간 뒤로 그때부터 밥을 짓거나, 일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조실스님이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면서 무슨 법문을 하신 것인지 오직 그 생각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시마지를 올리기 위해 밥을 짓는데 갑자기 부엌도 없어지고, 집도 없어지더니 뻘건 불빛이 우주 법계에 꽉 찼다. 동시에 한가운데로 원상(圓相)이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그게 뭔지 몰라 목석처럼 우두커니 서서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밥솥에서 ‘쉬익’하고 김이 나오더니 발뒤꿈치가 따끔했다. 알고 보니 아궁이에서 나온 불붙은 나뭇가지가 고무신에 닿아 따끔한 것이었다. 그때 뭔가 복잡하고 꽉 차 있는, 천근만근이나 되는 근심 걱정이 싹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하!”하고 소리를 질렀다. ‘조실스님이 무슨 법문을 하느냐고 물으신 게 별것 아니구나.’ 싶었다. 때마침 총무스님이 지나가는 걸 보고, 달려가 사정했다. “스님, 제가 무언가 깨달은 게 있는데 그걸 스님께서 한자로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총무스님은 들어볼 생각도 안 한 채, ‘행자 주제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할 일이 많다’며 비키라고 면박을 주었다. 대원 스님은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이튿날 총무스님에게 다시 부탁했다. 총무스님은 여전히 귀찮다며 뿌리치다가 마침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때 기록된 첫 번째 오도송(悟道頌)은 이렇다. 竈內火光蓋天地 부엌 안에 한 무더기 불빛 천지를 덮고 鼎中湯聲脫古今 솥 안에 끓는 한 소리 옛과 지금을 벗어났음이라 拄杖三下是何法 주장자 세 번 치면서 무슨 법이냐 하니 目前歷歷只底是 눈앞에 역력해서 다만 이것이로다. 총무스님이 적어준 게송을 들고 가 조실스님께 보여드렸다. “이게 뭐냐?” “일전에 조실스님께서 주장자를 세 번 치시면서 이게 무슨 법문이냐고 물으셨는데 그 해답을 적어본 것입니다.” 만옹 조실스님은 게송을 읽고는 칭찬했다. “허허! 이럴 수가 있나? 절 집안에 들어와 수십 년을 절밥만 축내고 앉아서도 이렇게 한마디 하는 놈이 하나도 없었는데 너는 행자인데도 이런 말을 할 줄 알다니 기특하구나. 그래 네가 이걸 알았다면 다른 것도 아는지 물어보자.” 조실스님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물었다. “두 스님이 길을 가는데 앞에 가던 스님이 칼을 차고 가며 찰랑찰랑 칼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내니까 뒤에 가는 스님이, 칼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앞 스님이 아무 말 없이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뒤 스님한테 주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이 질문을 받은 대원 스님은 곡하는 소리를 냈다. “아이구, 아이구!” “왜 곡을 해?” “동쪽에 초상이 나니 서쪽 사람이 와서 조문합니다.” 이렇게 답하자 만옹 조실스님은 크게 기뻐하며 격려해주었다. “대단한 행자로구나. 앞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선지식이 되도록 해라.” 그때 만옹 스님이 대원 스님에게 ‘한암(閑庵)’이란 법호를 지어주었다. 깨달음을 이뤘으니 정말 ‘일없이 한가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렇게 출가 후 첫 번째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을 지었으며 조실 만옹 스님께 인가를 받았다.
남장사 조실방 (현재 향로전)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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