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 스님이 처음 남장사를 찾아갔던 자유당 말 시절에는 스님이 되겠다며 출가하는 학생이나 청년들이 매우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처음에 공양주를 맡고, 이에 따라 스님은 반찬거리를 마련하는 ‘채공’으로 소임을 바꾸고는 했다. 그런데 스님이 공양주 소임을 맡아 날마다 꾸중을 들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쌀 두 말로 닷새를 버티지 못한 채 주지스님에게 날벼락을 맞기 일쑤였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사흘도 견디지 못한 채 나가버리는 게 다반사였다.
남장사 공양간(현재 종무소)
하루는 새로 온 행자가 대원 스님에게 공양주 소임을 어떻게 해왔는지 묻고는 주지스님을 마구 헐뜯었다. 심지어 자신을 ‘도둑놈의 새끼’라고 욕했다는 이유로 주지스님을 무고죄로 고발할 것이라며 펄펄 뛰었다. 그러고는 들고 왔던 짐을 챙겨서 훌쩍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행자로 왔다가 떠나가는 사람이 일주일에 서너 명은 넘었다. 남장사를 찾아왔던 행자들이 그처럼 사나흘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면 스님은 다시 밥을 하는 것은 물론 반찬과 국 끓이는 일까지 일인다역을 맡아야 했다.
어느 땐가 반찬을 만들다가 참기름 때문에 크게 혼난 적도 있었다. 주지스님이 참기름마저 주지실에 보관하고는 소주병으로 한 병씩만 따라주며, 이걸로 한 달을 넘겨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반찬을 만들다 보면 참기름이 적지 않게 들어가서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넘기기 힘들었다. 그럴 때면 주지스님은 ‘참기름을 훔쳐먹었네’, ‘도둑놈이네’ 하며 심하게 욕하고 매를 때렸다. 그러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큰절만 자꾸 올렸다.
“스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이렇게 거듭 참회하자 주지스님이 용서해주었다. 그때 여쭤보았다.
“스님, 어떻게 하면 기름을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을까요?”
“그런 건 스스로 터득해야지 누가 가르쳐줘서 배우면 못써!”
주지스님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참기름 절약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기름을 따를 때 숟가락에 붓는 게 아니라 젓가락을 기름병에 담갔다가 꺼내어 나물 담긴 그릇에 세워놓으면 몇 방울 정도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하면 나물에 참기름 냄새가 스며들면서도 참기름을 크게 아낄 수 있었다. 그처럼 기상천외한 방법을 쓴다면 기름 한 병으로 몇 달은 넉넉히 쓸 것 같았다.
대원 스님이 처음 남장사로 출가해 이것저것 일을 배울 때였다. 남장사 스님들이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너 여기서 행자로 있다 보면 찾아오는 객승들이나 보살들이 꼬이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럴 때 그 사람들 꼬임에 넘어가면 무당 절로 끌려가 평생 머슴살이하기 십상이다. 널 데려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사기꾼들이니까 절대 그런 사람들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스님은 어린 마음에도 그런 무당 절로 끌려가면 안 될 것 같아 그 말을 명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스님이 “왜 이런 절에 있느냐? 날 따라서 가자.”고 강권했다. 이때 스님은 ‘이런 스님이 나를 꼬여서 데려가려는 사기꾼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절대 따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님을 데려가려고 했던 분들은 해인사나 통도사 등 큰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었다.
당시 남장사로 찾아오는 객승 중에는 금오‧서옹‧혜암‧일타‧청담‧월하 스님 등 훌륭한 고승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누가 누군지 몰랐으니, 모든 객승들이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사기꾼으로 보였을 뿐이다.
그러던 중 하루는 어떤 객승에게 ‘밥을 지을 때 돌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그 객승은 친절하게 돌을 이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튿날부터 그 방법대로 밥을 짓자 참으로 돌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배급받은 쌀을 닷새 동안 채우는 일과 밥을 지을 때마다 질거나 되지 않고 적당하게 짓는 법은 여전히 남은 숙제였다. 그 문제로 한동안 고심하고 있을 때 남장사를 찾아온 한 객승이 무슨 걱정을 하느냐고 물었다.
“네, 스님. 제가 닷새 분량의 쌀을 받는데 사흘이면 모두 떨어져 고민입니다.”
객승이 말했다.
“이 세상엔 관세음보살만 부르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일념으로 관세음보살만 부르면 다 된다.”
“잘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관세음보살을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밥을 질지도 않고 되지도 않게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을 때다가 밥물이 넘치려고 하면 얼른 밑불을 끌어내고 행주를 찬물에 적셔 솥뚜껑을 닦아라. 그럼 밥물이 넘치지 않는데 그러다가 다시 밑불을 펴놓으면 밥이 질지도 않고 되지도 않게 될 게다.”
그 객승이 알려준 대로 하자, 정말 밥이 질지도 않고 되지도 않게 잘 지어졌다. 밥이 눌어붙지도 않아서 그때부터는 자신이 먹을 밥까지 차례가 돌아왔다. 그 스님께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막다른 골목에 닥치면 그 스님이 일러준 대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희한한 일이 생겼다. 무슨 영화필름이 스크린에 비치듯 눈앞이 환히 열리면서 앞날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지실로 찾아가 말했다.
남장사 주지실, 현재는 요사채
“스님, 내일은 신도님들이 15분 오실 겁니다. 그 숫자에 맞춰 밥을 지으려면 쌀이 좀 더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주지스님은 불같이 화를 냈다.
“이놈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나가!”
그런데 이튿날 대원 스님이 예측한 숫자대로 신도들이 찾아오니, 주지스님은 물론 자신도 놀랐다.
당시엔 병역기피자들이 절에 숨어 지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느 날 대원 스님은 순경들이 병역기피자를 잡으러 남장사로 찾아오는 환영을 보고는 주지실로 가서 말했다.
“스님, 내일 오후에 순경들이 찾아와 군대 안 간 사람을 잡으러 올 것이니 미리 피신시켜야 합니다.”
주지스님은 또 야단을 쳤다.
“이놈! 헛소리 말구 네 할 일이나 해. 순경이 여길 뭣 하러 와?”
그런데 이튿날, 정말 순경들이 찾아오자 절에 숨었던 병역기피자들은 재빨리 도망치기도 하고 잡히기도 해서 난리가 났다. 그제야 주지스님이 물었다.
“넌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했던 거냐?”
“저절로 보입니다. 편지 오는 것도 보이고, 사람들이 이야길 나누고 있으면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고…….”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