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광 스님이 주석하는 반야선원의 법당에는 통상 후불탱이 있어야 할 자리에 ‘화엄경·원각경·금강경’ 이렇게 세 경전의 4구게(四句偈)가 걸려 있다. 관습적 시각으로 보자면 파격이다. 이에 대한 자광 스님의 설명은, “불보살은 중생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불보살의 그림만으로는 그 의미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화엄경, 원각경, 금강경에 있는 4구게를 따서 후불탱 대신 걸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명하다. ‘올바른 가르침’을 전해 주기 위해서다. 어떻게든 불법의 도리를 쉽게 전하려는 자광 스님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자광 스님의 전법 의지는 전방위적이다. 법당 장엄에서조차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불자들이 쉽게 불법의 요의에 다가가게 하는 방편으로 활용한다.
반야선원 대웅전 후불 게송
우선 뜻이 아무리 높고 깊어도 ‘문자놀음’에 그치면 희론(戱論)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교의 언어관을 염두에 두고, 반야선원의 법당을 장엄한 4구게에 투영된 자광 스님의 경전관을 살펴보자. 먼저 화엄경 4구게부터 살펴보자.
‘화엄경’의 종취(宗趣)는 ‘화엄’이라는 두 글자에 다 들어 있다. 화엄(華嚴)이란, 글자 그대로 ‘꽃으로 장엄함’이다. 그 꽃은 곧 보살행이다. 보살의 자비행으로 장엄된 세계가 바로 화엄세계다. 교학적으로 보면, 『화엄경』 역시 연기법에 기초한다. 화엄교학에서는 그것을 법계연기(法界緣起)라 한다. 만유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는, 중중무진의 관계로 이루어진 세계. 그래서 화엄세계에서는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一卽一切 一切卽一]’다. 이러한 화엄의 세계관에서는 중생과 부처, 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이 원융무애(圓融無碍)한다. 이러한 세계관에 입각하면 모든 존재가 부처로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수행의 관점에서 『화엄경』을 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화엄세계의 시민권을 얻는 길은 보살행 말고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엄교학에 투철할수록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실천론으로서 빛을 발한다. 자광 스님은 불자들을 대승 보살도로 이끄는 방편으로 『화엄경』 4구게를 법당을 장엄하는 탱화 대신 내 건 것이다.
若人欲了知 만약 어떤 사람이
三世一切佛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應觀法界性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할지니
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으로 지은 것이니라
『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에 나오는 이 4구게는 원효 스님의 ‘해골바가지’ 이야기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으므로, 그 뜻을 이 글에서는 거론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여기서는 화엄의 세계로 안내하는 자광 스님의 초대장 정도로 이해하자.
자광 스님은 『화엄경』의 실천론적 측면을 더 무겁게 여긴다.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진행한 대담(2023.01.04.) 중 『화엄경』 「십지품」의 ‘환희지(歡喜地)’에 대해, “기쁨 가득한 경지다. 그러나 보살은 그 기쁨에 안주하지 않는다. 거기서 자비가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주제에 대해 얘기하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무심결에 나온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든 지론이나 체화된 사상은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법이다. 보살행의 실천을 강조하는 자광 스님이 『화엄경』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환희지에서 자비가 나온다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자광 큰스님
『화엄경』 「십지품」은 대승의 실천론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초지인 환희지는, ‘보시바라밀’의 결과로 이 지위에 이른 보살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한 경지다. 초기불교의 팔정도가 개인의 해탈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대승의 6바라밀은 보살행을 통한 성불의 길이라 할 수 있는데, 『화엄경』에서는 실천 지침이 10바라밀로 늘어났다. 10바라밀은 『화엄경』 「십지품」의 10지와 짝을 이룬다. 6바라밀이든 10바라밀이든 첫째가 ‘보시’다. 『화엄경』이 얼마나 실천을 강조하는지, 특히 보시가 보살행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게 한다.
『원각경』과 『금강경』의 4구게를 이어서 보자. 그 뜻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知幻卽離 환상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不作方便 더 방편을 지을 것도 없고
離幻卽覺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亦無漸次 또한 점차 닦아갈 것도 없다네
-『원각경』 「보현보살장(普賢菩薩章)」
一切有爲法 이 세상 모든 일들이
如夢幻泡影 꿈·환상과 같고 물거품·그림자와 같으며
如露亦如電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應作如是觀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금강경』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자광 스님은 왜 위와 같은 차례로 4구게를 배치했을까. 그 까닭을 추론해 보면 스님의 경전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회일지 모르겠지만, 세 경전의 요의를 연결해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아래서부터 올라가 보자.
‘금강경’의 주제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반야(般若, prajnā, 지혜)다. 그 궁극의 지혜에 이르는 길은, ‘모든 상(相)을 허무는 것[凡所有相, 皆是虛妄]’이다. 하지만 부정의 논법으로만 치달아 허망에 집착하는 꼴이 되면, 반야의 도리에서 멀어져 악취공(惡取空)에 떨어지게 된다. 『금강경』의 요체는 ‘참다운 이치를 바로 보라[如理實見]’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 그대로 ‘원각(圓覺)’의 세계다.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니[離幻卽覺], 세상 그대로가 부처의 세계인 것이다. 『금강경』의 ‘여리실견(如理實見)’, 『원각경』의 ‘이환즉각(離幻卽覺)’을 거쳐 마침내 우리는 ‘화엄’, 보살행의 꽃으로 장엄된 화엄법계로 들어선다. 이것이 자광 스님이 제시하는 ‘반야-원각-화엄’으로 가는 이야기다. 요컨대 자광 스님의 경전관은 경전의 요의를 제대로 알고 ‘보살행’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자광 스님의 모든 앎과 행은 보살도로 귀결된다.
· 집필자 : 윤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