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광 스님은 자신의 위패를 미리 써 두었다. 다음과 같다.
전법도생, 불영자광(傳法度生, 佛影慈光)
덜고 보탤 것 없이, 스님의 한생이 오롯하다. 미리 써 둔 비문(碑文)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제자들에게 남기는 유훈(遺訓)이다. 가을바람에 훌훌 잎을 내려놓은 나무만이 당당히 봄을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다.
전법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스승이 제자에게 전하여 주는 것인데, 이 뜻에 한정할 때는 전등(傳燈) 또는 전발(傳鉢)이라고도 한다. 둘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는 것이다. 그것이 곧 포교(布敎)다. 자광 스님의 전법이 곧 그것이다.
자광 스님이 미리 써 둔 위패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온 까닭이 무엇인가? 중생 구제 즉 중생 스스로 안락하고 자유롭게 살게 하기 위해 가르침[法]을 펼친 것이다. 다시 말해 전법이 전제되어야만 구제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불교 신자든 아니든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불법이 널리 퍼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법이 중생제도의 당위라 할지라도 실현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자광 스님은 공염불과 구두선(口頭禪)을 아주 경계한다. 자광 스님은 열정적 실천가이다. 불문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온 사람에게는 가능하면 ‘수계(受戒)’의 단계에까지 인도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적극성이 전투적이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단 군종참모 시절, 자금 부족으로 지지부진하던 교회 공사를 앞장서서 해결할 만큼 열린 마음으로 다른 종교를 대한다. 창조주로는 믿지 않지만 신(神)의 존재도 인정한다. 물론 제도의 대상으로 보긴 하나 이런 태도는 종교적 유머 감각이라 할 수도 있다. 수행자로서 부동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인슈타인이 생전에 자신의 종교관을 밝히면서 ‘독실한 무신론자’라고 고백했다는데, 자광 스님이라면 그를 불자로 만들었을 것 같다.
수계, 즉 계(戒)를 받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불자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서원이다. 그 마음을 지켜나가겠다는 약속으로 삼보에 귀의하고 5계를 받고 연비를 한다. 이것이 재가 불자들이 계를 받는 의식의 핵심이다.
자광 스님은 수계의 의미를 “중생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성인을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이라고 일깨워준다. 어떤 스님은, 계를 받지 않으면 불교를 믿는 사람일 수는 있어도 불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의 종교가 불교라고 밝히고,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도 불자다운데 계는 받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의외라고 보기에는 그런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 그 이유를 일 년에 한번 부처님오신날 절에 가서 등만 걸어도 불자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라고 한다면 이는 안이한 대답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계의 특성이 자율적 실천 덕목이라는 데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계(戒)는 율(律)과 달리 강제성이 없다. 오직 자율적 실천에 맡겨지기 때문에 지키지 않았다 해서 제재가 따르지는 않는다. 재가 불자로서는 ‘내가 실천하면 그만이지 수계가 중요한 건 아니다’ 하고 자의적 판단을 하기 쉽다는 얘기다. 둘째, ‘수계 의식’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한 데 있지 않나 싶다. 수계 의식의 본질은 계를 받아 지니는 형식적 절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체(戒體)’를 형성하는 데 있다. 계체를 형성한다 해서 별도의 몸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방비지악(防非止惡)으로서의 계체는 내재적 규율로서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려 할 때 내면에서 울리는 경고음 같은 것이다. 적어도 최악은 면하게 해 주는 것이 계체의 힘이다. 이러한 수계의 본질적 의미를 간과하기 때문에 독실한 불교신자 가운데도 계를 받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이다. 좀 멀리 나간 해석일지 모르겠는데 오도된 공(空) 사상, 형식이나 의식(儀式)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선불교의 영향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조계종 종헌 제10조는 “신도는 삼귀의계, 재가5계 및 보살계를 수지하고 삼보를 호지하며 본종의 종지를 신수봉행하는 자라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명문 규정은 선언적 의미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조계종 종도 말고도 불교신자들이 많다.
자광 스님은 군승 시절 4만 6,000여 명의 장병들에게 수계를 했다. 틈만 나면 중·고등학교를 찾아 수계식을 한 것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지금도 자광 스님의 주석처인 반야선원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수계식을 한다.
군 장병에게 연비를 해주시는 자광 큰스님
자광 스님은 수계의식 가운데서도 ‘연비(燃臂)’의 의미를 중요시한다. 신광이 달마에게 왼쪽 팔을 잘라 바치자 법기보살임을 인정한 옛일 이후, 불법에 대한 믿음과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의 징표로 팔뚝의 일부나 손가락을 불에 태우는 의식이 행해지게 된 것이 연비의 유래라 한다. 자광 스님은 연비의 의미를 ‘빛’에 비유하며 그 의미를 설명한다. 천 년 동안 어두웠던 동굴을 밝히기 위해서, 천 년 동안 빛을 비춰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연비를 하는 그 따끔한 찰나에 악업이 소멸되고 우리의 마음은 청정한 상태가 된다는 말씀도 곁들인다. 그만큼 수계의식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새겨야 할 것이다. 자광 스님은 열정적으로 포교에 매진했을 뿐 아니라 입문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계를 받아 지니도록 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도 해탈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세상을 연민하여 신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둘이서 한 길로 가지 말라.
수행자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을, 뜻이 잘 살아난 표현으로 설하라. 오로지 깨끗한 삶을 드러내라. 눈에 티끌 없이 태어난 사람도 있지만, 가르침을 듣지 않는다면 그들도 퇴보하고 말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나도 가르침을 펴기 위해 우루벨라의 장군촌으로 갈 것이다.
-부처님의 ‘전도 선언’
위 부처님의 ‘전도 선언’은 부처님이 천명한 불교 ‘실천론’이자 포교 ‘방법론’이다. 실천되지 않는 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불교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은 바가 아무리 심오한 진리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도 일단 ‘교주’와 ‘교리’는 만들어졌다. 이제 하나만 더, ‘교단’만 갖추어지면 종교로서 명색은 갖추게 된다. 부처님은 망설임 끝에 녹야원으로 갔다. 다섯 수행자에게 설법(포교)하자 그들이 귀의했다. 마침내 교단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렀다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불교라는 종교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 전법을 통하여 불교라는 종교가 성립됐고 지금 여기까지 생명을 이어온 것이다.
부처님의 전도 선언 중 포교의 관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뜻을 잘 살린 표현[義文具足]’이라는 구절인데, 한국 불교의 포교 현장에서는 이 부분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 것 같다. 불교 입문서를 보면 핵심 교리에 대한 설명이 대체로 사전적 혹은 퀴즈 문답식 뜻풀이에 머무른다. ‘연기법’, ‘무아’, ‘공’과 같은 핵심 교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광 스님은 다르게 접근한다. 지엽말단에 매달리지 않고 불교의 핵심이라 할 ‘연기 사상’을 중심에 두고 다층적으로 접근한다. 초심자들의 입장에서 쉽게 전달하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는다. ‘연기 사상’에 대해서는 학술서가 아니라면 낱말 뜻풀이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하지만 자광 스님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이 묵직한 주제를 우리의 삶과 연결시켜서 설명한다.
자광 스님의 포교 철학과 방법론은 부처님의 전도 선언과 일치한다. 특히 표현의 세련과 정련에 공을 많이 들였다. 논리적이지 않으면 잘 믿지 않는 세상, 너무 똑똑해서 남의 말 잘 듣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어둠 속에 보물이 있다 해도 등불이 없이는 못 보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는 사람이 없으면 슬기로워도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2017. 연등점등식에서
· 집필자 : 윤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