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다수의 사람들이 소림사 ‘면벽 9년’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동네 식당에 부적처럼 걸린 그림으로 혹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달마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특히 선불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면벽 9년이라는, 용맹정진의 상징처럼 보이는 9라는 숫자가 깊이 각인되어 있을 듯하다.
자광 스님은 ‘면벽 9년’을 ‘기다림’이라 말한다. 그 면벽 9년은, 훗날 우리가 선종(禪宗)의 2조 혜가(二祖慧可)라 부르게 될 신광(神光)이라는 한 사람을 기다린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달마가 면벽을 하지 않고 양 무제(梁武帝)를 따라 궁궐로 들어갔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혜능(慧能), 임제(臨濟), 휴정(休靜), 용성(龍城) 등의 대선사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달마가 9년간이나 악착같이 한 인물을 기다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광 스님, 『멍텅구리 부처님』, 266쪽
신광이라는 유·불·선에 통달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달마를 찾았다. 9년이라는 시간의 빗장이 풀리는 그 순간은 선불교 역사의 전설이 되었다. 신광은 소림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묵묵부답. 겨울밤, 눈이 허리까지 차올라도 스승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신광은 왼쪽 팔을 끊어 바치는 것으로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제야 비로소 달마는 9년이라는 시간의 봉인을 해제했다.
자광 스님이 처음 군 포교의 일선에 섰을 때, 여건은 황무지와 다름없었다. 거친 땅바닥을 골라 천막을 치고 비닐을 깔았다. 빌려온 의자를 가지런히 앉히고 의자의 주인을 기다렸다. 설렘과 불안이 교차했다. 과연 이런 법당에도 누가 찾아올까?
천막 법당에 장병들이 몰려들었다. 스님은 급하게 벗고 들어간 ‘흐트러진 군화가 하도 예뻐서’, 그 까까머리 불자들의 뒤통수를 향해 합장을 하고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때의 그 손길은 이때까지 이어진다. 지금도 자광 스님은 찾아온 사람들이 벗어 놓은 신발이 흐트러져 있으면, 곱게 앉은 모습으로 매만진다. 조고각하(照顧脚下)하라는 경책 대신.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스승은 공부의 자리를 마련해 두고 배움을 청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공부의 목표를 미리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자광 스님은 평생 전법의 길을 가게 될지 까마득히 몰랐던 초심학인 시절, 해인강원과 동국대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전통과 현대에 걸쳐 불법의 대의를 익혔다. 알게 모르게 ‘체(體)와 용(用)’이 서로를 지탱하게 하는 도리를 깨쳤던 셈이다. 그것이 승가의 위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군승으로 원만히 소임을 다할 수 있게 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자광 스님이 해인강원의 학인일 때 강사였던 운허(耘虛) 스님이나 지관(智冠) 스님 같은 분들은 당대 최고의 강백(講伯)이었다. 그분들의 덕화(德化)도 크게 입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시절 해인사에서는 학인들을 대상으로 ‘학습법문’ 대회를 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세미나 형식의 발표회였을 텐데, 학인들은 물론 사중의 모든 대중들 앞에서 학인들의 법문 역량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자광 스님은 그 대회에서 2번이나 우승했다. 스님은 그때, 경전의 세세한 자구 해석에 매달리기보다는 전체의 뜻을 먼저 이해한 다음 듣는 이에게 맞추어 쉽게 법문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경전 전체의 문맥을 먼저 짚어야 뜻을 새길 때 글자 낱낱의 뜻이 좌충우돌하지 않는다는 역경(譯經)의 방법론과도 통한다.
불기 2556년 부처님오신날, 계룡대 호국사에서
해인강원에서 익힌 스님의 법문 방법론은 군 장병을 대상으로 한 법문에 그대로 적용됐다. 우선 법문을 ‘5분’에 맞추었다.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아도 누구나 경험했을 텐데, 교육생의 3대 자세라는 게 있다. ‘춥고, 졸리고, 배고프다’는 것. 스님은 젊은 장병들의 근기에 친절하게 다가갔다. 자광 스님의 법문 스타일은 군승 소임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한 예를 보자.
저기 꽃을 한번 보십시오. 참 보기 좋지요. 그렇다면 저 꽃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불교의 인연법에 의하면 이 꽃이 여기 호국사에 오기까지, 불자님들의 눈에 띄어 여러분들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기까지 무수한 인연과 협력에 의해 생겨났을 겁니다.
작은 씨앗에서 싹이 오르고 꽃봉오리를 활짝 피울 수 있었던 데는 대지와 태양과 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 꽃가루를 떠 나르는 벌들도 한 몫 했겠지요. 이런 인연법을 인정하고 아는 분은 불교의 기본 마인드를 갖고 계신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실천하는 삶이 바로 지혜로운 삶이지요.
여러분과 나는 둘이 아닙니다. 또 우주와 여러분도 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여러분들도 하나인 것이지요. 존재하는 만물 모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들판에서 제 울음에 겨워 서걱대는 갈대처럼 서로가 의지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2009.08.16. 계룡대 호국사 정기 일요법회에서 행한 자광 스님 법문 중 일부
(《법보신문》 2009.08.25. 게재)
대단히 문학적이다. 하지만 위 법문은 ‘연기법’을 풀어낸 것이다. 갓 입대한 젊은 군인이 들었다면 두고 온 애인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가 들었다면 당장 꽃밭으로 달려가 나비와 어울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광 스님이 군승 소임을 내려놓은 한참 뒤 군종교구장을 할 때의 대중 법문이다.
자광 스님의 법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듣는 이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장장 25년, 사반세기를 무시로 찾아드는 젊은 장병들을 기다렸다. 스님은 나이가 들어도 늘 젊은 불자들로 새롭게 채워지는 군문(軍門)에서 25년 세월을 보냈다. 나중에 동국대학교 이사장을 할 때도 캠퍼스의 학생들과 호흡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스님의 풍모에는 늘 젊음의 기운이 맴돈다.
자광 스님에게 포교는 기다림이다. 포교는 거울이 되어 제자를 기다리는 일이다.
제자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동대부중 졸업식에서
요즘 자광 스님은 한국불교의 세계화에도 관심이 크다.
· 집필자 : 윤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