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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보살도의 실천’이 되게 하라

흐르는 물도 아껴 쓰면 용왕님이 복을 준다.
위 속담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약간의 비약을 무릅쓰자면, 한국인의 심성에는 ‘연기 사상’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00여 년이 흘렀으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기복 사상의 일면이라고 박하게 봐도, 의식의 심층에 잠재한 연기법의 도리는 어디 가지 않는다. 단지 복을 받기 위한 행동이라 쳐도 그 속에는 이타심이 깃들어 있다. 그 이타의 결과가 아무리 미미해도, 그 물이 흘러든 논밭과 그 물을 식수로 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연기법이 세간의 도덕률로 설해진 건 아니다.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해탈에 이르게 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인간의 고통이 ‘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비롯되므로 나의 ‘나다움’,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자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연기법을 설한 부처님의 본의다. 세간의 법률에 빗대어 말하자면, 연기법의 입법 취지는 ‘나’라는 ‘감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 그래서 ‘연기=무아=공’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런데 현실 속의 인간은 해탈을 이룬 ‘아라한’이 되기도 어렵지만, 되었다 해도 그렇게 살기는 더 어렵다. 이 지점에서 대승이 등장한다. 아라한에서 보살로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대승불교와 보살의 등장은 아라한과 현실이 연기(緣起)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보살은 연기법의 사회적 실천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기법은 사회적 도덕률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달라이라마와 법담을 나누고 있는 자광 스님
자광 스님에게 연기 사상은 보살행의 실천 근거다. 연기법에 투철하다면 마땅히 보살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광 스님은 불자라면 모름지기 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광 스님은 세상을 구제하자는 거창한 구호 아래 대자비의 실천을 주장하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일부터 보살행이 되게 하라고 어깨를 다독인다. 뜬 구름 잡는 담론으로 관념적 포만에 사로잡히게 하지 않는다. 자광 스님의 저서 『깨침의 소리』 중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보살행’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스님의 ‘보살관’을 알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은 연기적 존재이고, 그것을 알고 나면 마땅히 보살행을 실천해야 하고, 보살행은 곧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일상에 있다는 것을 자상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본다. 연기의 법칙 속에서는 나와 남으로 나눌 것이 없다. 인간이 홀로 잘나서 잘 사는 것 같지만, 수많은 중생의 도움과 협력이 있어야 단 하루라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자신을 낮추는 일도 보살행이다. 하심을 하지 않고 불법만 많이 아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아만과 아상뿐이다. 자신을 낮추고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질 때 이웃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미운 존재가 객관적으로 있다 하더라도 바로 그 모습이 나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미운 마음이 오랫동안 사무칠 수 없다. 이렇게 자신이 연기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일상에서 보살도를 행하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믿음이 깊고 경전과 교리에 해박하다 할지라도 보살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향기 없는 꽃처럼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법회가 시작되기 전에 법당에 먼저 들어가서 좌복을 가지런히 펴 놓는 일이나, 법회를 보는 다른 불자들의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 것도 보살행이다. 직장 동료에게 하루에 한 가지씩 칭찬해 주는 것도 큰 보살행이 될 수 있다. 연기의 법칙으로 보면 내가 곧 자연이다. 에어컨과 세제 사용을 줄이는 것도 보살행이다. 자광 스님이 우리에게 권하는 보살행은 높고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성불의 길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한다.
2018. 기관장 간담회에서
보살행은 깨달음의 씨앗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해야 한다. 진정한 보살행은 출가를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웃의 아픔에 얼마나 자기희생적 태도로 다가갔는가에 달려 있다. 보살행은 불자의 이타적 행동 양식이지 겉모습이 아니다. 성불은 이기심을 극복하고 남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처럼 연민하는 보살행으로 얻어진다는 말씀이다. 불자라면 다 알 듯이, 보살은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이다.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큰 원을 세우고 부처가 되는 것까지 미룬 존재다. 사실 이런 인간상을 현실 속의 인간이 자기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보살은 숭배의 대상으로 신격화되고 말았다. 자광 스님은 이런 ‘보살관’과 거리를 둔다. 자광 스님의 보살관은, 불자라면 누구나 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살도를 고원한 이상으로만 여기지 말라는 얘기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건 너무 이상적이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은 대부분 ‘꿈 깨’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이다. 자광 스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현실 속에서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라는 것이다. 『관음경』은 한국 불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경전 중 하나다.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독립시켜 만든 경이다. 이 경을 보면 관세음보살이 온갖 모습으로 화하여 고난에 처한 중생을 건져낸다. 이것이 ‘보문시현(普門示現)’이다. 그 모습 가운데는 장자나 거사, 소년이나 소녀도 있다. 결국 우리 모두가 보살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보살의 비유로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뱃사공’이다. 자광 스님은 우리 모두가 서로의 뱃사공이 되라 한다. 다음은 그 뱃사공이 노를 어떻게 저어야 하는지, 6바라밀에 대한 자광 스님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보시바라밀] 준다는 것은 여유 있고 넉넉한 삶이다. 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지계바라밀] 계를 지킨다는 것은 당당한 삶이고, 가장 자유로운 삶이다. [인욕바라밀] 참는다는 것은 더 큰 근심을 없애주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평화로운 삶이다. [정진바라밀] 부지런한 노력은 성취를 앞당긴다. [선정바라밀] 번뇌로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선정은 고요히 생각하는 것이요, 불꽃을 끄는 것이다. [지혜바라밀] 지혜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요, 인간 완성을 의미한다. -〈자광 스님의 풀어 쓴 6바라밀〉, 『멍텅구리 부처님』, 63~64쪽.
· 집필자 : 윤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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