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영원한 현역이자 포교의 60년 역사

한평생 포교 불사로 매진해 온 자광 스님은 영원한 현역이었다. 포교법사로서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스님은 동국대학교 이사장직을 퇴임한 지금도 다시 학교로 돌아와 불교학술원장의 소임을 맡고 있다. 80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포교의 현장에 서 있는 것이다. 100여 명에 가까운 젊은 불교학자들이 모여 불교를 연구하는 그곳에서 그들이 불교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60년 포교사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자광 스님은 한 주에 두 번 학술원을 다녀오고 나머지 시간은 주석처인 용인의 반야선원에서 신도들과 함께 기도정진하며 대중 포교에 쓴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있는 가족법회와 참선기도법회를 주관한다. 가족법회 때는 인연 있는 음악인들이 자원해서 노래도 부르고 공연도 한다. 실생활에 맞추어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님의 명법문은 여전히 인기가 높다.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이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며 어려운 이웃을 살피라는 법문을 많이 한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이야기에 신도들이 박장대소를 할 때도 많다.
반야선원의 가족 법회
새해에는 법회가 끝난 뒤 윷놀이도 한다. 그야말로 가족처럼 친밀한 가족법회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오기도 하고 부부가 함께 와서 법문을 듣는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 있기 전에는 100여 명의 신도들이 법회에 참석할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지금은 3,40명이 모여 가족처럼 공부하며 지낸다. 참선기도법회 때는 신도들과 함께 좌선을 하고 법문을 한다. 인근 군부대 장병들에게 수계를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용인시 불교행사에는 자원해서 법문을 한다. 한 사람이라도 법문을 듣고 포교가 된다면 지금도 어디든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조계종 호계원장과 동국대학교 이사장을 지낸 조계종원로의원이며 대종사 품계를 받은 종단의 대덕스님으로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스님의 생활은 여전히 검박하고 언행은 한없이 겸손하다. 한 번도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거나 이력을 내세워 본 적이 없다. 군대에서 인연을 맺고 스님을 존경해 오던 사람이 한 번은 반야선원에 인사를 왔다가 조촐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절 살림에 놀라서 신도가 되어 절 살림을 돕기 시작했다. 언제나 긍정적 사고와 유머감각 넘치는 명법문으로 대중을 활기차게 제도하던 스님의 절 살림살이가 그토록 가난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그는 유발상좌를 자청해 지금 반야선원 신도회장 소임을 맡아 절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스님은 절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도 사월초파일에 신도들이 등을 달러 와서 등 값을 많이 내면 다시 돌려준다. 스님의 주머니는 항상 비어있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받는 보시금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간다. 학교 법인의 일을 할 때도 월급을 모아 다시 학교발전 기금으로 내놓는 일이 허다했다. 지금도 아무도 모르게 경기도 어느 지역의 복지원에 다달이 적지 않은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신도들은 스님의 지갑을 ‘열린 지갑’이라고 부른다. 스님은 지금도 직접 밥을 짓고 청소하고 빨래를 해가며 살아간다. 부족한 것이 있어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현실 상황에 맞게 검소하게 살면 된다는 생각이다. 공양주가 없으면 예전의 사미시절에 배운 요리 실력을 활용하면 되는 것이고, 아직 건강하니 빨래는 직접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불편하다는 한 생각만 내려놓으면 언제나 지금 자신이 마주한 상황은 완벽할 뿐이라는 생각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수행자답게 하루하루 지금 여기가 평화로울 뿐이다. 팔순이 넘은 스님은 지금까지 포교에 대한 뜨거운 원력의 끈을 한 번도 느슨히 한 적이 없다. 지금도 직접 포교 현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난다. 서너 해 전 어느 동짓날에는 신도들과 함께 용인의 어느 신도시 아파트 입구에 서서 동지 팥죽을 나누어 주었다. 자비로운 모습으로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진리에의 길을 권하던 스님의 모습 자체로 교화가 되었다. 신도들은 고령에도 편히 지낼 생각은 꿈에도 없이 중생교화에 의욕을 더해가고 있는 스님을 보면서 일생을 길에서 머물며 중생을 교화했던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스님은 여전히 법회 때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진정 만족할 수 있도록 후회 없는 삶을 살아보자고 호소한다. 어리석음과 게으른 그 자리에 서 있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이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새롭게 변화해 보자며 격려한다. 욕심을 거두지 못한 채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외롭고 가난하게 사는 이웃을 외면한 채 자신만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삶을 언제까지 계속할 거냐고 묻고는 잘 사는 방법을 일러준다.
날마다 정의롭고 자비로우며 슬기롭게 살아갈 것을 발원하세요. 괴롭고 힘들 때는 부처님을 사무치게 부르세요.
이렇듯 자비롭고 청렴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스님은 교화의 현장에 서 있다. 열반하기 직전까지 길 위에서 중생을 교화했던 부처님처럼 영원한 현역의 포교사로 있을 것이다.
자광 스님의 평소 모습은 언제나 평화롭고 온화하다.
· 집필자 : 박원자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