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나 소년원의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포교 활동을 교정(矯正) 포교라고 한다. 재소자의 잘못된 품성이나 행동을 바로잡는 것이 일차 목적이지만,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이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교화하고 따뜻하게 보살핌으로써 출소 후 바른 사회인으로 돌아가 재범을 방지하는 활동이 교정 포교다. 누구나 평등한 참된 불성을 가지고 있으니 자기 스스로의 불성을 믿고 의지하고 행동할 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지도함으로써 그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정인의 역할이다.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해쳤던 앙굴리마라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나서 진심으로 참회하고 수행한 끝에 새로운 삶을 열었던 것처럼, 교정 포교는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게 하고 모두가 불성을 지닌 존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포교인 동시에 사회에 대한 교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교정 포교는 1961년 교회(敎誨) 제도가 신설되면서 종교단체나 종교인들이 재소자들에게 매주 1회씩 각 종파별 종교집회, 교리지도가 실시되면서 시작되었다. 교회란 수형자의 정신적 자력갱생능력, 의욕을 개발하는 제반 활동 또는 윤리성의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정신적 지도활동을 말한다. 1961년 행형법(行刑法) 개정을 통해 교정행정의 목적이 수형자의 사회복귀를 위한 것으로 변화하면서, 이 목적을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종교활동이 부각되었다.
불교의 교정 포교는 주로 원력을 세운 개인들이 개별적으로 활동을 이어오다가 종단의 조직적인 후원을 받으며 적극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80년대에 부산교도소 교정인불자연합회, 서울구치소 불자회, 대전교도소 불심회가 창립되어 재소자교화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94년 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가 창립되면서 각 지역의 교정기관에 설립된 교정인 조직이 조직적인 전기를 맞게 되었다. 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는 ‘밝은 사람, 밝은 일, 밝은 세상’을 슬로건으로 창립되어 주로 수용자와 교정시설을 경비하는 경비교도대를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재소자들에게 매주 1회 법회를 주관하거나 지원하고, 불서를 보급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 시설을 경비하는 경비교도대원을 위한 법회와 기초교리강좌도 실시했다. 불교수형자들이 거하는 곳에 불교용품을 지원하고 매월 불우 수용자 및 무의탁 수용자에게 영치금과 생활용품을 지급하고 있다.
경찰관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는 자광 스님
2011년 1월에 포교원이 교정교화전법단을 출범시키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교정교화전법단은 활동 중인 불교교정위원을 파악하여 지도법사로 위촉하고 현장포교를 지원하는 실질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교정기관 재소자를 위한 불서를 보급하고, 모범수용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교정 포교는 포교대상이 특수한 상황에 있다는 점에서 상담,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훈련과 전문적 능력이 요구되는 분야로 간주된다. 교리적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포교기법도 전문성이 수반되어야 하는 영역이므로, 군대에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 상담과 법회를 통해 포교활동을 해온 스님에겐 적격이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지속되었던 안양교도소 교정위원으로서의 활동은 또 다른 수행의 공간이자 교화의 장이었다. 밖에서 보면 교도소는 일반 사회와 다른 특수 공간이었지만 반야 불성의 자리에서 보면 일반 시회와 동등한 장소였다. 중생과 부처와 마음이 하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 그대로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본래의 불성을 간직하고 있는 부처님의 제자였다. 교도소에 있는 중생이나 교도소 밖에서 살아가는 중생이나 모두 마음으로는 부처들이었다.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잠시 부처를 등지고 살아온 중생이었을 뿐 모두 순수 불성을 지니고 있는 선한 사람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그들 자신이 지혜와 자비를 갖춘 부처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 있지 못할 뿐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직면한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순수 불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고통과 고통의 원인, 고통을 소멸하는 길을 가르치는 불교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곳이 부처를 만드는 좋은 장(場)이라는 뜨거운 발심이 올라왔다. 고통 속의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그들 모두가 이미 부처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야말로 수행이며 포교 아닌가. 도저히 어려울 것 같은 사람들도 부처님 말씀으로 교화시키다 보면 차츰 밝은 본성을 되찾기 마련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몸과 마음을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겨울이면 내복과 먹을 것을 마련해 주었고, 근기에 맞추어 법문도 했다. 진심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겸손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미 깨달은 존재라는 말이 서서히 차가웠던 가슴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수행자로서의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중생과 부처의 마음이 본래 하나임을 믿고 자신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데 힘쓰면 반드시 부처님과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순간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죄를 저지르는 마음이 지옥이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뉘우치고 착한 마음으로 참회하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스님의 한결같은 이 법문은 재소자들에게 큰 위로를 넘어서 진리의 법음(法音)으로 다가갔음은 물론이다. 그곳은 스님 자신에게도 뜨거운 수행의 장이 되었다.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중생들 가운데서 부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왜 고통으로부터 출발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던 곳이었다. 인간의 고통은 자신의 본성을 등진 데에서 출발하고, 고통의 원인이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하나의 생각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본성으로 회귀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었다.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고통에 묶여있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그들은 자유롭게 신체를 움직이며 살아가기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매사에 중생의 눈으로 시비를 가리고 중생의 생각으로 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속박된 것인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깨닫기는 더 쉬웠다. 그들에게 자유는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설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나 앞으로 올 미래에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법문을 듣는 지금 이 순간 속에만 자유가 존재하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지난날의 죄를 참회하고 지금 이 시간 이 장소에 최선을 다할 때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순수불성으로서의 회귀는 고통의 극한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더 빠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조용한 곳에 앉아 수행하는 선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공부터였다. 수행자는 대중이 있는 곳이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교화할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스님이 교화에 대한 원력을 확고히 할 때마다 떠올리는 부처님 당시의 일화가 있다.
부처님 당시 10대 제자 가운 한 사람인 푸르나(Pūrna) 존자에 대한 이야기다. 푸르나 존자가 포교를 위해 고향으로 떠나려고 하자 부처님께서 그 지방 사람들이 성정이 사납다고 들었는데 만일 그들이 너를 비방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셨다. 푸르나 존자는 그들이 돌을 던지고 발길질을 하거나 지팡이로 때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돌을 던지거나 지팡이로 때린다면 어쩌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푸르나 존자가 그때는 칼로 찌르거나 베지 않은 것만으로 그들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기겠다고 대답했다. 부처님이 다시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힌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칼로 상처를 입힌다고 하더라도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겠다고 푸르나 존자가 대답했다.
부처님이 다시 물었다.
“만약 그들이 칼로 너를 죽이면 어떻게 하겠느냐?”
푸르나 존자가 대답했다.
“어차피 이 몸은 죽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몸을 사라지게 해서 다시 근원(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었으니 좋은 사람들로 여기겠습니다.”
부처님이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푸르나여, 더는 할 말이 없구나. 네가 그만한 각오가 서 있다면 고향으로 가서 법을 펼치도록 하여라.”
자비와 지혜로 대중을 교화하는 일은 수행자의 사명이다. 어떤 곳에서도 그 사명감으로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한다. 교도소에서의 교화는 어느 고명한 고승을 모시고 정진한 이름난 선방에서의 수행보다 더 큰 인생 공부가 되었다고 스님은 회고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불 우측 열에 부르나 존자가 있다.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좌로부터 라후라, 아나율, 부르나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집필자 : 박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