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가 곧 수행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온 자광 스님의 열정은 1995년 군승 대령으로 예편한 뒤에도 식지 않았다. 대중포교로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예편하기 전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은사 경산 스님이 주석했던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적조사에 주지로 머물며 포교에 심혈을 기울였고, 기울어 가던 절의 사세를 확장시키며 침체된 분위기를 혁신시켜 놓았다. 절의 주지란 신도들이 평안하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신념 아래 군 포교를 하면서 익힌 방식으로 신도를 모으고 정성껏 교육을 시키는 데 전력투구했다. 4년 여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군대 밖의 중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 포교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예편하기 전부터 대중포교를 위한 전초전을 치른 셈이다.
스님은 먼저 군대에서 장병들에게 했던 것처럼 절을 찾아와 준 신도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허리를 굽혀 맞이하고 기초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현재 자신과 마주한 환경에서 정성을 다해 사는 길이 불교의 실천임을 가르쳤고, 나의 행복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존재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운명은 자신이 만든 생활습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니 생활 습관을 잘 길들이라고 법문했다. 각자 살아온 정보가 마음에 저장되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잘 알고 쓰는 것이 불교라고 일러 주었다. 삶이 고달픈 것은 습관을 잘 길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 좋은 말을 쓰며 자신보다는 남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습관을 다듬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사진에 ‘적조암 법당 상량식 기념’이라고 적혀 있다. (좌측 가운데 경산 스님)
적조사로 들어서는 신도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법문을 듣고 신행생활을 하는 신도들이 늘어나 법당은 물론 마당에까지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신도들은 일요일이면 적조사에 와서 스님의 일체유심조에 대한 법문과 인과의 법문을 듣고 여태껏 무명 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웃과 함께 사는 삶을 실천하게 되었다. 매해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 적조사 신도들은 늘 자광 주지 스님의 특별한 법문을 들었다. 부처님오신날이라고 해서 가족들의 이름을 적어 복을 비는 등(燈)은 달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진실한 마음이 깃든 등불만이 부처님이 돌아보신다고 누누이 설해 주었고, 보시를 하더라도 기왕이면 복을 바라지 말고 형편 닿는 대로 정성껏 하라고 했다.
부처님오신날, 자광 스님은 신도들에게 난타라는 가난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 당시의 일화로 정성을 다해 밝힌 등불 하나가 국왕이 밝힌 수만 개의 등불보다 값지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불자인 코살라국의 바사닉 왕이 부처님을 궁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저녁때 주석처인 기원정사로 돌아갈 때를 대비하여 궁에서 기원정사까지 마유고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라고 명했다. 코살라국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길가에 달린 등불을 보고 어찌나 장엄하고 아름답던지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도 그곳에 등을 하나 켜고 싶었다. 이웃에서 먹을 것을 구걸해 사는 형편이었지만 어떻게든 기름을 마련하여 불을 켜고 싶었다.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 기원정사로 돌아가실 부처님을 보기 위해 길가에 늘어서 있었다. 할머니는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빠른 걸음으로 기름집을 향했다. 남에게 구걸해 사는 행색이 남루한 할머니가 기름을 사러 온 것을 보자 기름집 주인이 그 돈으로 먹을거리를 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했다.
“부처님은 천생(千生)을 살아도 만나기 어려운 분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오늘 밤에 이 길을 지나가신다고 하니 얼마나 희유한 일입니까. 내 비록 빌어먹는 거지의 신세여서 나라의 국왕처럼 천 등 만 등은 켤 수 없지만 등 한 개라도 달아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소.”
그러자 딱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기름장수가 말했다.
“할머니의 그 마음은 알겠으나 국왕께서 켠 수만 수천 등에 가려 할머니가 켠 등불이 부처님의 눈에 뜨이기나 하겠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켜는 등불이니 부처님께서 보시든지 보시지 못하든지 부처님 가시는 길을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진 돈 전부를 내놓아 기름을 샀다. 그래야 한 종지쯤 살 수 있는 돈이었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길가에 등불을 달고 ‘작은 등불이오나 부처님 가시는 길이 어둡지 않도록 밝혀주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곤 군중들 틈에 끼어 두 손을 모은 채 부처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즈음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로 가기 위해 그 길을 지나갔다. 고요하고 위의 가득한 부처님을 보면서 부디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이루어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새벽이 오기 전 바사닉 왕이 밝힌 불은 기름이 다하자 모두 꺼졌다. 단 하나 꺼지지 않는 등불이 있었으니 거지 할머니가 켠 등불이었다. 이 소문을 듣고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 존자가 가서 등불을 끄려고 했다. 혹여 불이 날까 봐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연유인지 등불이 꺼지지를 않았다. 이를 보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멈추어라. 지극한 원과 정성이 담긴 지혜의 등불이기 때문에 네 힘으로는 끌 수 없을 것이다. 정성을 다해 지극한 마음으로 등불을 켠 저 할머니는 30겁 후에 깨달음을 이루어 수미등광여래(須彌燈光如來)가 될 것이다.”
부처님 전에 공양한 연등
이야기를 마치면서 스님은,
“정성을 다하면 부처님께서 감응하시는데, 나의 정성이 부처님께 전달되는 것을 감(感)이라 하고 거기에서 반드시 불보살님의 가피력이라는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응(應)이라고 합니다.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 산골짜기에서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듯 정성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반드시 따르는 것입니다.”
라고 덧붙였다.
스님 법문의 특징은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삶에서 실천하도록 하는 힘을 지녔다. 법문을 들은 신도들은 진정한 보시는 간절하게 진심을 다하는 것임을 깨닫고 생활에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진실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자신이 지닌 것을 조금씩이라도 덜어서 이웃에게 나누어 줄 줄 알았고 자신만의 안녕을 위한 기도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먼저 기도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가진 것을 나누며 아픔을 함께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협력하고 나눌 때 풍요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는 사이 절의 면모도 안팎으로 바뀌었다. 낙후된 시설을 보수했고 어린이집도 만들었다. 어린이 포교가 잘 되어야 불교의 미래가 있다는 스님의 신념이 반영된 것이다. 스님이 주지로 있는 동안 적조사는 마당을 가로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사찰이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공간이어야 하지 않은가. 이후 사찰의 주지 소임을 후학 스님에게 인계했다. 적조사에서의 주지 소임은 제대 후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대중 포교의 전초전이었을 만큼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2015.8.16. 《불교신문》 기사. 적조사, “어르신, 끼니 거르지 마세요” (출처 : 불교신문)
· 집필자 : 박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