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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하는 젊은 불자의 요람 탄생

논산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는 3,500명의 병사가 동시에 법회를 볼 수 있는 초현대식 법당이다. 설계상 1층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일반 건물의 5층 높이에 해당한다. 건축 전체면적은 축구장 넓이와 비슷하다. 병사들이 연병장에서 곧바로 좌우 지하 통로를 통해 법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연병장에서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오면 중앙 어간문을 비롯해 좌우 현관문 및 측면의 여러 문을 이용해 수많은 병사가 동시에 출입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법당 안 중앙 상단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후면에는 1,200분의 후불을 봉안했다. 상단의 바로 앞쪽에는 100여 명의 신자가 좌복에 앉아서 기도할 수 있도록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으며, 법당 전체에 3,500개의 의자가 설치되어 병사들이 군화를 벗지 않고 법회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법당을 만들기 위해 자광 스님은 최전선에 나서서 일사불란하게 불사를 지휘했다. 마치 전선에 나선 승장처럼 비장한 각오로 청년 불자를 만드는 포교불사에 뛰어든 것이다. 2009년 11월 27일, 41주년 군승의 날 기념 법회가 열린 자리에서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 건립 결의와 함께 연무사 대작 불사 선포식이 거행되었다.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단 관계자, 불교계 지도자 등 전국의 사부대중 2,000명이 모인 자리였다. 이날 불사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당시 추진위원회의 조직도를 보면 범 종단적인 불사였음을 알 수 있다. 증명에 총무원장, 고문으로 종회의장, 호계원장, 포교원장, 교육원장,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관음종 등 각 종단 대표와 교계 원로급 스님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추진위원장은 군종교구장인 자광 스님과 중앙신도회장 김의정이었고, 자문위원은 각 교구본사 주지였으며, 추진위원은 종회의원, 종단 부·실장단, 교구 상임위원, 육해공군 군승제위, 교계단체, 군포교단체장이었다.
논산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 신축불사 발대식
추진위원회는 정기모임을 갖는 것은 물론 수시로 회의를 진행했다. 신축불사의 설계와 건축사 선정 및 불사금 조달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갔다. 다음 해 2010년 4월, 육군본부에서 불사를 승인했고, 5월 4일에 불사발대식을 가졌다. 7월에 설계업체인 ㈜금성종합건축사와 계약을 완료하고, 42주년 군승의 날 기념법회에서 착공식을 가졌다. 12월에 설계를 완료한 후 다음 해인 2011년 2월 논산시청에서 건축허가를 끝냈다. 건축 면적 1,862평에 철근콘크리트 슬라브로 확정, 1미터 이상의 강설과 지진 8도 이상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설계되었다. 2011년 3월 ㈜GS건설로 시공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완료했다. 공사 기간은 11개월로 잡았다. 추진위원장인 자광 스님을 비롯해 모든 관계자들은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젊은이를 양성하는 중요한 기관인 만큼 가장 견고하고 완벽하게 시공해서 후손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사에 임했다. 2011년 3월 공사가 착공되었으나 미리 마련해 놓은 예치금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불사를 추진하다 보니 어려운 일이 많았다. 불사금을 마련하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였다. 자광 스님은 전국의 교구본사 스님들을 비롯해 교계 인사들을 찾아가 호국연무사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법회를 보는데 논산훈련소 장병들이 추운 바깥에서 떨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밖에서 무슨 법문을 듣겠습니까? 수박 겉핥기식으로 해서야 무슨 전법이 되겠습니까? 제대로 된 법당에서 제대로 전법해야 합니다. 법당 건립은 불자의 사명입니다. 참여해 주세요.” 처음부터 동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끈질기게 찾아가 설득했다. 상대방의 근기와 입장에 따라 모든 방편을 동원했다. 한편, 교계 불교방송 등 모든 홍보 매체를 통해 불사의 중요성을 알렸다. 직원들은 조를 이루어서 각 사찰을 찾아 각종 홍보물을 비치하고 불사금 후원함을 설치해서 모금 활동을 했다. 홍보 효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 직원들을 격려하며 1만 명 동참 1인 7만 원 불사운동, 대불 복장 사경 불사, 후불 1인 1원불(願佛) 불사를 모연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31일, 첫 삽을 뜨면서 모금 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불교방송에서 호국연무사 불사 모연 광고가 나가자마자 동참 전화가 빗발쳤다. 불사금 통장은 순식간에 기재란을 메워갔다. 법당이 완성되기까지는 돼지저금통을 들고 나타난 어린이부터 멀리 있는 해외동포까지 전 세계 사부대중 1만 5천 명이 동참했다.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며 군인의 꿈을 가지고 있던 초등학생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26,730원이 들어있는 돼지저금통을 가지고 왔다.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며 힘들게 살던 어느 노부부가 방송을 통해 호국연무사 불사모연 소식을 듣고 군종교구에 전화를 걸어 102만 원을 송금했다. 스님은 지금도 군인들의 포교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노부부의 간청을 잊지 못한다. 독신으로 지내며 한평생 기도와 법당 청소로 살아온 80세 보살님은 세 번에 걸쳐 300만 원을 보내왔다. 군인 얘기만 나오면 가슴이 뭉클하다며 160만 원의 후원금을 내놓은 시각장애인 보살님도 있었다. 휴가기간에 군종교구를 찾아온 병사도 있었다. 군인들에게 매달 나오는 월급과 휴가비를 모아둔 50만 원을 내놓으며 논산 훈련소 군 법당이 협소한 데다 재래식 화장실이 너무 보기 싫었다고 하면서 후배들이 연무대에서 훈련을 받고 법당에서 마음의 피로를 씻을 수 있도록 편안한 법당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를 돌아보며, 힘들고 어려울 때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어금니를 깨물었고, 무섭고 두려울 때는 언제나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군 생활을 충실히 했다며 후배 장병들이 최고의 시설에서 신행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호국연무사 수계 법회
스님은 그 병사의 말에서 미래에 펼쳐질 불교의 희망을 읽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불사동참은 십시일반으로 꾸준히 들어왔으나 중간에 결재해야 하는 공사비를 마련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불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루 평균 200킬로미터가 넘는 운행거리를 쉬지 않고 다녔다.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후원금이 나오는 곳이라면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스님이 타고 다니는 봉고차를 운전해주던 자원봉사자가, “이러다간 스님도 저도 다 죽겠습니다.” 라고 하소연까지 했을 정도다. 상량식을 앞두고 하루하루 다가오는 공사비 결제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래도 또다시 일어나 불사금 마련에 동분서주했다. 결국 급성 당뇨와 고혈압으로 심혈관이 터져 입원해야 했다. 그러나 병실에서도 업무보고를 받으며 불사를 지휘했다. 오로지 포교를 위한 불사에 매진하며 기도하는 나날이었다. 2011년 11월 5일, 상량식이 있었다. 불사가 시작된 지 7개월 만에 공정률 70%를 보이며 상량판을 올렸다. ‘비상하는 젊은 불자의 요람! 영원하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상량판을 보며 스님은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스님은, 호국연무사에 관심과 격려를 가지고 후원해주는 모든 사부대중의 뜻을 담아 법당을 완벽하게 시공,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상량식이 끝나고 마무리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으나 공사비를 결제하기에는 통장의 잔액이 턱없이 부족했다. 공사비 지급문제와 불사금 모금이 어려워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건설시공회사는 약속 날짜에 맞추어 정확하게 건축비를 계산해서 청구했다. 법당을 짓는다고 해서 봐주는 일은 없었다. 진행 상황에 따라 건축비를 내지 못하면 그다음 날부터 막대한 이자가 붙었다. 온 힘을 다 쏟아 모금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력을 세우고 기도하면서 진정성 있게 불사를 추진하면 이루어진다는 게 스님의 신념이었다. 매일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부처님, 저 이 법당을 꼭 지어야겠습니다. 장병들이 부처님 말씀도 못 듣고 추운데 밖에서 떨어야 되겠습니까? 이 법당 꼭 원만하게 마무리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젊은 불자들이 진리를 깨달아 대자유를 얻고 이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모금운동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건물에 하자가 없어야 했다. 사부대중의 피땀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잘못되면 큰일이었다. 기둥도 없이 돔으로 된 건물이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건축에 문외한인 스님이었으나 건축현장에 나가 철근과 시멘트의 강도를 측정했다. 안전모를 쓰고 공사장 곳곳을 다니며 공사현장을 살피는 날이 많았다.
점점 얼굴이 수척해지고 체중이 줄자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죠.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찾아온 사람들이 곧 죽겠다며 손을 잡고 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부처님 일은 정의로운 일이며 필요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버텼습니다. 혹여 중간에 쓰러져 죽으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끝내리라는 마음으로 불사 현장을 떠나지 않았어요. 돈 한 푼 없는 시점에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화주를 했으니 정말 목숨을 다 바친 나날이었습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차 대담에서(2022.7.12.)
2012년 5월 2일, 수많은 감동적인 사연을 담은 호국연무사 큰법당이 위용을 자랑하며 육군훈련소에 우뚝 섰다. 수천 명에 이르는 사부대중의 환희 속에 낙성법회가 열렸고, 두 달 후 기부채납이 완료되었다. 기부가격은 123억 원이었다. 스님은 임기를 마치면서 후임 교구장에게 남은 1억 8000만 원을 전했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법당을 군 장병들에게 선물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불자들을 한 마음으로 결집시킨 뜻깊은 불사였다. 법당불사가 끝나고 난 5개월 뒤에 부산에 거주하는 부부가 호국연무사로 스님을 찾아왔다. 부부는 스님에게 눈물에 젖은 500만 원을 내놓았다. 사연은 이랬다. 2개월 전인 늦여름이던 8월 23일 1박 2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던 중 차량이 전복돼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 수색대대에서 병장으로 제대를 얼마 안 남기고 떠난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49재를 치른 뒤 사고보상금을 가지고 호국연무사를 찾아온 것이다. 아들의 고귀한 목숨을 담은 보상금이 후배 장병들을 위해 뜻깊게 쓰이길 바라며 내놓은 그 후원금을 스님은 가슴 저린 마음으로 받았다. 호국연무사 큰법당 부처님 앞에서 삼배를 올리고 나서 사랑하던 아들을 부처님께 맡기고 돌아가던 그 부부를 위해 스님의 기도는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호국연무사 건립 공덕비
6년 뒤인 2018년 8월 18일, 논산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에서는 ‘자광 스님 공덕비 봉안식’을 마련했다. 군 최대 전법도량의 불사를 추진, 완성시킨 스님의 공덕을 기린 것이다. 호국연무사 불사가 스님의 일생 가운데 가장 보람된 일이었느냐는 질문에, 스님은 이 일 하나를 가장 보람되었던 일로 한정시킬 수는 없다며 삶 전체가 보람된 나날이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매 순간 보람되게 살아야 실패와 불행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호국연무사 불사에 매달렸던 70대 초반의 시간이 스님에게 어떤 순간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답이었다. 자광 스님은 지금도 틈이 날 때마다 호국연무사에서 장병들의 수계를 하고 법문도 한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도 한 번씩 다녀온다. 장병들이 법당에 앉아 참선을 하거나 108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법당 밖에서 서성이다 돌아가는 장병이 없이 언제든 들어가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일이 그렇듯 흐뭇할 수가 없다. 스님에게 호국연무사는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 하시며 전법을 시작한 부처님의 발길을 따라온 포교 6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곳이기도 하다.
호국연무사 전경
· 집필자 : 박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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