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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수를 증가시킨 ‘일체유심조’의 설법

포교는 교단을 유지하게 하는 근본이다. 교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승려는 물론 신도들이 지속적으로 확보되고 유지되어야 한다. 만약 종단을 유지하는 신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단 자체도 유지할 수 없으며, 신도의 확보는 포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신도수를 늘리는 포교는 종단의 존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베트남전이 종료되자 자광 스님은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군 포교에 전념했다. 전역할 때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세상의 모진 오해를 감내하기도 했고 죽음의 문턱에 서기도 했다. 외로운 투쟁이었으나 젊은 장병들을 자신감이 넘치는 불자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불자들은 큰 서원을 가슴에 품고 산다. 중생을 건지고, 번뇌를 끊으며, 법문을 배우고, 불도를 이루겠다는 네 가지 커다란 서원이 바로 그것이다. 스님은 이 가운데 중생을 건지겠다는 서원이 그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나머지 셋은 중생을 건지기 위한 행동강령 같은 것으로, 스님은 언제 어디서나 이 서원을 가슴에 품고 실천하며 산다. 1977년, 스님은 육군사관학교 화랑호국사에서 주지 소임을 맡았다. 이때 천주교나 기독교 신자와 비교할 때 압도적인 신도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불교 신도가 2~300명에 육박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당시 육군사관학교의 생도수를 감안하면 전무후무한 엄청난 수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또한 끝없이 많은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다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의 정신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1977-1980. 육군사관학교 근무
육군사관학교는 정예장교를 양성하는 생도교육기관으로 매해 많은 신인 장교들이 이곳을 거쳐 임관하게 된다. 전국의 부대로 장교들이 배치되어 지휘관으로 병사들의 신앙 전력화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화랑호국사의 역대 주지 법사들은 생도들의 종교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불자 생도들의 포교전법 도량으로서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1971년 창건된 화랑호국사에 자광 스님은 1977년 9월부터 1980년 7월까지 4대 주지 군법사(소령)로 근무하면서 1978년에 호국선원을 중창했다. 다른 곳에 비해 압도적인 신도 증가수를 기록하게 된 무슨 묘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스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진정성 있게 대하며 부모님 잘 모시고 나라도 걱정하면서 사람답게 살자는 얘기를 했어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의 법칙을 얘기하고, 천당과 지옥도 다 너희들 마음에 있다고. 그러니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너희들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만 부처님이 돕는다고 했죠. 그런 얘기를 하면 다 감동해요. 그리고 법당이 부대 안에 있으니까 주야로 거기 살다 보니 생도들과 친숙해질 기회가, 출퇴근하는 다른 종교인보다 더 많았지요.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차 대담에서(2022.7.12.)
처음엔 젊은 장병들에게 법회 참석을 유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젊은이들의 감성에 맞는 부처님의 진리를 발췌해서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군대라는 고립된 환경에 놓인 젊은이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일체유심조’였다.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만들었다는 것, 즉 네 마음이 창조주라는 것을 전했다. 불교의 우주관이자 세계관인 일체유심조의 사상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서 마음이 세계를 창조한다는 진리를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게 했다. 지금의 괴롭거나 행복한 상황은 한때 나의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스님의 마음 법문은 젊은 장병들의 때 묻지 않은 영혼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서구적 개념의 신의 존재에 물들어있던 사람들은 어려워했다. 그러나 진정성 있는 스님의 법문에 차츰 깨어나기 시작했다. 막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삶의 진정한 가치에 눈떠가는 것을 보는 것은 군승으로서 가장 큰 보람 있는 일이었다.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데, 깨달음은 마음이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사람을 평등하게 대할 줄 알아요. 자비로울 수밖에 없죠. 출가해서 사미승으로 조계사에서 있을 때 불교 관련 책을 읽고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니까 마음이 주인이고 창조주라는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당시 조계사에 청담, 동산, 전강 스님 등이 오셔서 마음 법문(마음이 주인이라는 법문)을 할 때도 저는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차 대담에서(2022.7.12.)
그 확고한 믿음이 포교의 원천이 되고, 포교가 스님의 일생을 관통하게 했을 것이다. 사미시절부터 아이들한테도 마음이 주인이라는 걸 일러주었다. 울며 떼쓰는 아이에게, “너 지금 울고 있는데 누가 시켜서 하는 거야? 엄마가 시켰니?” 라고 물으면 바로 울음을 그치곤 했다. 울음을 그친 아이에게 스님은 다시 한 번, “네 마음이 하는 거야. 마음을 좀 달리 쓰고 살아보렴. 언제까지 울 거야?” 하고 묻곤 했다. 언제까지 울 거냐는 물음은 언제까지 남 탓하며 어리석게 살 것이냐는 회초리였다. 이는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법문이 아니었다. 청소년, 청년, 어른들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법문이었다. 이렇듯 마음이 주인공임을 깨닫게 한 스님의 포교는 사미승일 때부터 시작되었고, 그 근간에는 ‘일체유심조’ 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스님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특유의 마음 법문과 더불어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다. 생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들을 수계해서 법명을 주고 불자로 만들었다. 더불어 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호국선원을 지어 활발하게 생도들의 신앙생활을 도왔다. 이후에도 스님이 지도법사로 근무하는 곳에는 반드시 신도수가 늘어나는 일이 계속되었다. 스님은 후배 법사들을 만날 때나 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라는 노래 제목을 ‘앉으나 서나 신도 생각, 앉으나 서나 신도 관리’로 개사해 부르곤 했다고 한다. 오로지 신도를 생각하는 마음과 진심을 다한 철저한 신도 관리가 포교의 정도임을 믿고 한 길로 매진했던 스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다. 포교에 대한 그러한 헌신적인 노력이 후배 법사들에게는 포교의 큰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화랑호국선원 앞에서
· 집필자 : 박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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