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동체대비로 총격의 참상을 막다

군승의 직무는 늘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남보다 먼저 부대와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 앞장서는 것에 있다. 군이란 조직은 언제든 위험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 군승은 생명을 아끼며 뒷전으로 물러설 수 없다. 월남 전 이후 국내에서도 스님은 죽음의 문턱에 선 적이 있다. 1980년대 초반, 군승단장으로 어느 전방부대에 근무하며 삼청교육대 교육생들에게 인격교육을 시키던 중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때도 스님은 자신의 안전을 뒤로한 채 사선(死線)에 서서 군과 대치하던 교육생을 감화시키고 총격 사태를 수습했다. 삼청교육대는 1980년 5월 31일 전국비상계엄 하에서 설치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사회정화책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의 군부대 내에 설치한 기관이다. 스님이 근무하던 부대에도 삼청교육대가 있어 군종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인격·정신 순화교육을 담당했다. 스님 역시 그곳에서 교육을 담당하며 교육생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풍토 문란사범, 사회질서 저해사범 등의 죄목으로 체포되어 온 사람들이었으나 사연을 들어보면 억울하게 붙잡혀온 경우도 있고 가슴 아픈 사연도 많았다. 교육 시간에 스님은 인간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그들과 가까워졌다. 불교에서는 어머니를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지니고 온 중생의 소리를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에 비유한다. 자광 스님은 장병들에게 관세음보살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소리에 늘 귀를 기울였고 고통을 함께 풀어가려고 노력했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주었다. 스님이 병사들과 함께 가장 많이 부른 노래는 〈부모님의 은혜〉였다. 비록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어 기억조차 없었지만 부모님 같던 은사스님으로부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동체대비(同體大悲)가 인간의 본성[佛性]을 일깨운다는 것을 배웠기에 자비로운 수행자가 될 수 있었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떳떳하고 인간답게 살자고 격려하며 그들과 함께 〈부모님의 은혜〉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면서 울지 않는 교육생이 없었다. 그렇게 교육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밤, 사단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 낮, 비포장도로 작업에 동원된 교육생이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담배를 달라고 외쳤던 모양이다. 승객 중 누군가가 피우던 담뱃갑을 던졌고, 저녁에 작업을 끝내고 막사로 돌아온 교육생이 그 담배를 피움으로써 사건이 시작되었다. 순화교육은 연병장 둘레에 헌병을 배치해서 엄중한 감시 속에 진행되고 있었고, 교육생들은 연병장 한가운데 천막을 친 내무반에서 생활했다. 근무 중이던 기간병이 교육기간 중에 담배를 피워 규정을 어긴 교육생을 제지하면서 일이 벌어졌다. 기간병의 말을 듣지 않고 교육생이 담배를 피우자 이를 빼앗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던 중 교육생이 기간병이 가지고 있던 총을 빼앗아 들고 막사로 들어가 기간병과 대치했다. 서로 총을 쏘는 사태로 발전해 순식간에 전투상황으로 돌변하자 사단장이 전화를 한 것이다. 평소 교육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였으므로 스님에게 사태를 수습하도록 명한 것이다. 사단장의 전화를 받고 즉시 현장으로 향했다. 지프를 타고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부대에 도착하는 동안 모두 무사하기를, 원만히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30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어둠 속에서 양측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설득은 하고 있었지만 막사에서는 총알만 날아올 뿐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다. 가까이 접근해서 인간적으로 대화를 하는 일만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수행자인 스님뿐이었다. 스님은 그때의 심정을, “거기서부터는 생명이니 두려움이니 하는 단어들은 사치일 뿐이었다.” 라고 당시의 심정을 회고한다. 군 관계자에게 막사의 교육생들이 볼 수 있도록 트럭들의 헤드라이트를 켜서 자신이 걸어가는 모습을 비추어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은 메가폰을 들고 그들이 있는 막사를 향해 철조망이 쳐진 길을 걸으면서 지금 막사로 들어갈 테니 총격을 멈추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모두 부처님의 마음으로 돌아오길 기도했다. 스님이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본 그들은 누구든지 넘어오면 총을 쏘겠다고 위협했다. “총을 쏘지 마세요. 막사 내에 부상자가 있지 않습니까? 부상자부터 치료를 받게 합시다.” 잠시 조용했다. 막사에 다가가면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막사에서도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교육 시간이면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함께 부르곤 했던 〈부모님의 은혜〉였다. 스님만 보면 그들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흘러나오던 그 노랫소리는 어느 때보다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들과 한 마음이 되었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태가 심각했다. 피를 흘리고 있는 부상자들이 보였다. 총을 들고 있는 교육생들에게 우선 부상자부터 내보내 치료를 받게 하자고 설득했다. “담배 한 개비에 소중한 목숨을 걸 겁니까? 불행은 티끌만 한 작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한번 참는 것으로 백일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고 했어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격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인생의 성공도 실패도 자신의 마음이 만든 것이니, 스스로를 실패자로 만들지 말자는 스님 특유의 ‘마음 법문’이 그들의 마음을 해동시켰다. 모두 숙연한 채로 듣고 있었다. 지난 일은 모두 털어버리고 벌 받을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받자고, 총을 반납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귀한 생명을 이렇게 저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며 달래고 또 달랬다. 진심 어린 스님의 이야기에 감화된 그들은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았다. 총을 반납한 그들을 데리고 막사 밖으로 나가면서 큰 사건으로 번질 뻔했던 총격 사태가 종료되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잔뜩 긴장해 있던 사단장을 비롯한 군 장병들의 얼굴에 안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만일 스님이 관세음보살의 무심한 마음으로 막사를 향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아상(我相)을 버린 동체대비의 법력이 아니었으면 큰 참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자광 스님의 군 포교 25년은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 집필자 : 박원자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