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는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출가의 목적이기도 하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수이고, 수행의 체계는 신해행증(信解行證)의 과정을 거친다. 일체 모든 것을 창조하는 ‘마음’이 나의 본질임을 철저히 믿고 이해해서 수행,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에겐 신심은 기본이고 진리(法)를 전하는 전법(傳法)이 진정한 사명이다. 법을 전하는 것을 구르는 수레바퀴에 견주어서 법륜(法輪)이라고 한다. 구르지 못하는 바퀴는 무용지물이다.
법륜을 굴리는 것을 전법, 포교(布敎)라고 부른다. 포교의 목적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제, 팔정도, 그리고 마음법인 일체유심조를 가르쳐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고통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일러 중생제도라고 한다. 출가사문의 목적과 사명은 전법이다. 좌복에 앉아 참선을 하든, 시장 한가운데서 염불을 하든, 목적은 하나로 전법에 있다.
자광 스님은 사미계를 받고 정식 스님이 되고부터 포교를 대비 원력으로 삼았다. 중생들에게 법을 전해 제도하겠다는 원력을 출가수행자로 살아오면서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포교와 수행을 둘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다. 전법도생이 평생의 원력이었으며 그 원력을 실천하는 일이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것을 실천했다.
2019. 동국대학교부속유치원 졸업식
불교의 근본은 중생교화다. 중생교화는 전법으로부터 비롯되고 전법의 역사는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처님께서 깨닫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도 깨닫기 전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를 찾아가 법을 전한 것이었다. 일평생을 길 위에서 법을 전했던 그 발걸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서 바르게 삶을 살도록 해야겠다는 깊은 원력이 담겨있다. 부처님이 전법을 선언한 것은 고통의 원인인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아라한이 61명에 달해 있을 때다. 제자들에게 부촉한 전도 선언은 다음과 같다.
제자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마라. 제자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끝도 좋은,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제자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로 가리라!
-『잡아함경』 권39 『승색경』
이 전법선언을 보면 포교의 목적이 모두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성스러운 자비와 지혜의 행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포교의 방법이 설법과 청정한 행의 실천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부처님의 당부를 받은 수많은 제자들은 신명을 다해 포교에 앞장섰다. 부처님 이후 수많은 불제자들이 한량없는 법문으로 중생들에게 진리의 세계를 열어주었으니, 이는 포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자광 스님이 전법이 없는 불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고 나아가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현실적인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사미계를 받고 나서 조계사에 있을 때다. 개혁불사를 이끌기 위해 종단의 일을 맡고 있던 은사 경산 스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조계사를 드나드는 신도들을 보니 대부분 연세든 분들이었다. 법당에 와서 떡과 과일 공양을 올리고 집안의 무사안일을 바라는 기복 불교의 현장을 보면서 적어도 불교는 이런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불교의 교리를 젊은이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하는 일이 급선무임을 자각한 것이 포교의 첫출발이었다. 스무 살 때였다. 그때부터 포교 없는 불교는 무용지물이라 생각하면서 한평생을 살아왔다. 진정한 개혁불사는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포교에 있다는 신념을 삶의 매 순간 실천해 왔다.
강원 학인들의 필독서인 『치문경훈』에는 “설령 경전을 받들어 수지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겁을 지나더라도, 이 몸이 침상이 되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하더라도, 만약 법(진리)을 전해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지 못하는 무능한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게송이 나온다. 이를 일러 흔히 전법게(傳法偈)라고 한다.
2017. 영석고등학교 수계 대법회
스님은 20대 초반에 이 글을 읽으면서 부처님의 제자로서 은혜를 갚으려면 포교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굳혔다. 먼 훗날 깨달을 때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하는 것이 수행자의 임무이며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법문할 때마다 스스로 불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앉으나 서나 포교를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불교의 이론을 구석구석 다 알고 있더라도 전법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불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차 대담에서 역사가 깊고 교리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가 많은 불자를 생산하지 못한 것은 포교에 대한 사명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포교를 수행과 분리해서 생각해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포교가 곧 수행임을 설파하는 것이다.
포교를 하려면 자신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인 계정혜(戒定慧)를 실천해서 타인에게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모범이 되려면 지혜를 겸비하고 자비로운 행동을 해야겠지요. 그러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계율로 내면과 행동이 무장되어 있어야 하고 보시와 자비행이 겸비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곧 수행이에요. 포교를 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포교는 수행의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대담에서(2022.7.12.)
포교를 하는 사람은 바른 언행에 상대방을 받드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인격이 높아지고 행동이 바르게 서면서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출가 이후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로부터 시작된 포교는 군 포교로 이어졌고, 이후 신도 포교를 비롯해 경찰 포교와 교정 포교, 대학법인 운영을 통한 포교로 이어졌다. 출가자의 사명은 오직 포교에 있다는 신념 아래 50여 년에 걸친 포교의 대장정 역사가 이뤄진 것이다. 포교의 방법에 대한 생각도 단순 명쾌하다.
포교는 어렵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한 번은 그럴 수 있지만 또 그러면 과보가 따른다는 말만 해주면 돼요. 모범이 되어야 포교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사실은 군더더기죠. 포교를 하다 보면 자동으로 모범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게 곧 수행이죠.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대담에서(2022.7.12.)
이사장 시절, 동국대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
· 집필자 : 박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