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특별교구장 소임을 마치고 신도들에게 법문을 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있을 때, 종단의 부름을 받고 다시 전법도생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모교인 동국대학교였다. 2016년 6월 20일에 열린 제304회 이사회에서 제39대 이사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동국대학교 출신인 데다 현재 뚜렷한 보직이 없어서 학교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유였다. 그러나 모든 일을 자비와 공심으로 풀어내는 스님의 인품이 주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스님은 이사장으로 재직한 2016년 6월 21일에서 2019년 7월 20일까지 화합을 우선으로 한 탁월한 리더십으로 대학의 안정과 정체성 확립, 의료원 발전, 총장 후보자 공개토론회 도입 및 교내 환경 근로자(미화원) 전원의 직고용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학교법인 동국대학교는 서울·경주·고양·LA 캠퍼스와 동국대 의료 산하 5개 병원이 속해 있는 거대한 조직이다. 이밖에도 10개의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 동국대 전산원과 만해마을수련원, 일산 사업소를 두고 있다. 법인 이사장직은 초·중·고 및 대학과 의료원, 수익사업체를 모두 관장하는 자리이다. 취임 당시, 동국대는 학교 안팎의 여러 가지 갈등과 혼란 속에 있었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더욱 치열해진 대학 간 경쟁에서 동국대 역시 위기의 한가운데 있던 시기였으므로 고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스님은 화합과 대화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무엇보다 동국대와 조계종단은 특수 관계에 있음을 감안해야 하며 학교와 종단이 상호발전의 상생관계임을 분명히 했다.
2016. 동국대학교 서울·경주·의료원 주요기관장 합동워크숍
이사장으로서 학교 운영에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불교 종립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리고 명문 사학으로서의 위상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서울과 경주 캠퍼스는 물론 동국의료원, 법인 산하 초·중·고, 유치원까지 수계법회를 열어 매년 2,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불연을 맺어주었다. 이는 학교에 대한 주인의식을 고취시키고 정체성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진리의 보고인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는 동국대가 세계 인문학을 주도하기를 염원하며 교수들을 비롯해 학교 관계자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했다. 교수와 직원, 학생들의 모임에서 법문을 요청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참석했고, 교수와 직원들이 모이는 자리에도 격의 없이 참석해 불교의 위대함과 동국대학교가 소장한 대장경의 가치를 들려주었다.
동국대의 위상을 살리는 길은 정관과 학칙을 최우선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는 소신으로 『대학규정』과 『불교성전』을 수시로 살펴보았다. 스님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늘 이 두 권의 책이 놓여있어서 법인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잣대와 지혜의 보고가 되어주었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근간으로 원칙적인 운영을 한 결과 재직하는 동안 대학과 의료원이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대외적으로 동국대가 역대 최고의 평가를 받아 2018년에는 QS 세계대학평가 국내 13위를 기록했고, 취업 창업 역량 평가에서는 사립대학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졸업 후 취업하는 학생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스님도 기업 대표를 만나는 등 일선에서 뛰었다.
의료원이 성장하는 데도 스님의 노력이 컸다. 취임 다음 해인 2017년에 개혁추진단을 꾸리고 병원 경영 개혁을 단행해 의료진 확충 및 구성원 복지 증진을 위해 직접 나섰다. 공모와 공채, 공개입찰의 절차를 철저히 지키며 직원을 선발해서 의료원이 사적으로 흐르지 않게 했다. 유수 대학 병원 교수들로 의료진을 구성하고, 양한방 통합 의료정보시스템을 갖추어 환자들에게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독려했다. 노후된 의료기기들을 교체하고 수술 전용 로봇기계 도입을 추진한 결과, 동국대학교 일산 병원은 4년 연속 건강보험심사평가원 4대 암(대장, 유방, 폐, 위) 치료 1등급 기관으로 선정되었다. 2016년부터 2년 사이에 진료 수익이 460억 원가량 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병원을 방문해서 구성원들을 치하한 일도 따뜻한 일화로 남아있다. 2019년 6월에는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 불교 종합병원 사상 첫 호스피스 병동인 ‘정심행 완화의료센터’도 문을 열었다.
총장 선거를 민주적으로 치러낸 것도 재직 시의 커다란 업적 가운데 하나이다.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총장 후보자 공개 토론회를 도입해서 제19대 총장 선거를 화합 속에서 치른 다음 모두의 축하 속에서 총장이 취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든 것이다. “화합형 총장을 선출하되 축제적인 분위기로 치러서 총장 선거에서부터 모든 동국인의 자존심을 찾아보자!”라고 호소했던 이사장 스님의 모습은 아직도 동국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2019. 총장 이취임식
스님 특유의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교내 환경근로자(미화원)들의 오랜 파업사태를 해결한 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내 대학 사상 최초로 환경근로자들의 직접 고용을 결정한 것도 큰 공적으로 손꼽힌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곤욕을 치렀지만 늘 그랬듯이 자비와 상생의 마음으로 일을 해결해 나갔다. 직접 고용에 따른 비용부담이 가장 큰 문제였고, 학교 내 관계자들의 반대도 많았다. 경영난으로 학교가 힘들게 되면 밖에 나가 탁발을 해서라도 책임지겠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결과 환경근로자 97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환경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 직후 근로자들에게 직원증을 수여하는 작은 행사를 가졌는데, 학교의 일원으로 직원 명찰을 달고 다니는 그들을 볼 때마다 감회가 남달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스님의 마음 쓰임은 남달랐다. 매년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환경근로자들뿐만 아니라 경비 근무자, 주차 관리자 등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선물을 전달했으며, 추운 겨울에는 출근 전 수위실에 미리 전화를 걸어 경비대 근무자들이 밖에 나와 의전을 하지 않게 하도록 일러두었다. 고공 농성을 하는 학생들이 추위에 몸을 망칠지도 모른다며 이불을 사서 올려주고, 천막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위해 간식을 사다 준 일화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사람은 진심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살아야 해요. 겉과 속이 분명하고 거짓 없이 정확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친 것이 자비사상이에요. 자비는 복전이고 공덕장입니다. 불자라면 자비행을 수시로 꺼내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껄끄러운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 순화될 수 있어요.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대담에서(2022.5.10.)
동국대 이사장을 역임한 3년여의 세월은 평생 실천해 온 자비행을 꺼내어 쓴 시간과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조계종 원로의원인 자광 스님은 지금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노년을 맞고 있다. 젊은 학자들을 뒷바라지하는 심정으로 취임한 지 3년째다.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두 손을 모으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절에 주석하고 있을 때는 여전히 기도하러 온 신도들이 너무 고마워 뒷모습을 향해 합장하고 그들이 벗어놓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무엇 하나라도 손에 들려 보내려고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자광 스님은 “부처님이 되는 방법은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있으며, 말을 정답게 해야 마음도 아름다워진다”는 법문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신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후학에게는 이렇게 답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과 가르침을 대신한다.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팔십 평생이었어요. 불교에 죽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죽음은 다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통로예요. 성불하지 않으면 계속 윤회합니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으로 다음 생이 오기를 기도하며 다음 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 이생과 내생, 지옥과 극락이 함께 있어요. 그렇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것이 ‘이뭣고’ 화두입니다. 모두 수행 정진하며 살아가세요.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대담에서(2022.5.10.)
2018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초청 간담회(한국대학법인협의회)
· 집필자 : 박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