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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강원

출가를 해서 수계를 하고 나면 보통 선방으로 가서 참선 공부에 매진하거나 강원에 들어가서 경전을 공부하는 것이 관례다. 포교전선에 뛰어드는 건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러나 자광 스님은 계를 받은 후에도 은사스님을 시봉하면서 어린이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법회를 보는 일은 하고 있었다. 포교에 뜻을 둔 스님에게 의미 있는 일이었고 적성에도 맞았다. 은사스님에게도 앞으로 대중을 포교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린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은사스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해인강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며 해인사로 내려가라고 일렀다. 포교에 뜻을 두었다는 말을 듣고 제자의 미래를 숙고한 다음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은사 경산 스님의 그러한 결정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포교를 하려면 전통 깊은 강원에 들어가서 깊고 체계 있게 불교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포교가 목적이기는 하나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젊은 제자가 염려된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스승의 명을 어찌 마다할 수 있었겠는가. 평생 스승의 뜻을 어긴 적이 없이 살아온 스님이었다. 바로 아이들과 어울리며 보냈던 조계사를 뒤로하고 해인사로 내려갔다. 1962년 스물한 살 때였다. 당시 해인사 대중은 총 2백여 명쯤 되었다. 강원은 6년제로 강원생은 100여 명이었다. 청담(靑潭, 1902-1971) 스님이 주지, 운허(耘虛, 1892-1980) 스님이 강주, 지관(智冠, 1932-2012) 스님이 강사로 있었다. 한 해 윗반으로 종진 스님과 설정 스님이 있었다. 동국대 권기종 교수, 혜총 스님 등이 스님의 후배다. 법보종찰인 해인사에서 공부한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시절이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을 개방하는 날에는 감동이 밀려와서 불상 앞에서 108배를 하곤 했다.
당시 강원으로 사용되었던 해인사 궁현당 (출처 : 해인사)
대적광전 우측의 궁현당이 강원으로 쓰였다. 각방에서 글을 읽는 소리가 합창소리처럼 우렁차게 들렸다. 교재는 선배 강원생들이 등사기를 밀어서 만들어 썼던 책을 물려받아 썼다. 책을 받은 것이 고마워서 선배 학인의 신발을 닦아주기도 했다. 그때 보던 책들을 아직도 몇 권 간직하고 있다. 평화롭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해인강원의 학제는 사미과,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보통 사미과는 1~2년의 과정으로 『반야심경』·『초발심자경문』·『치문경훈(緇門警訓)』 등을 배운다. 사집과는 사미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배우는 과정으로 『서장(書狀)』·『도서(都書)』·『선요(禪要)』·『절요(節要)』를 배운다. 사교과에서는 『능엄경』·『대승기신론』·『금강경』·『원각경』을, 대교과에서는 『화엄경』·『선문염송』·『경덕전등록』 등을 배운다. 해인 강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스님은 『치문경훈』을 비롯해서 사집(四集) 과목을 익혔다. 사집은 선종(禪宗)에서 중시하는 것으로 불교를 배우고 익히는 데 기본이 된다. 당시 강주로 있던 운허 스님은 유명한 강백이었다. 경학(經學)에 통달한 분으로 평생을 역경사업에 힘을 쏟았다. 1964년 설립된 동국역경원에서는 팔만대장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을 주도했다. 당시 운허 스님은 주로 경전반의 윗반을 가르쳐서 아랫반 학인들은 큰 회의 때나 공양할 때 뵙는 것 말고는 강의를 직접 듣지 못했다. 주로 강사인 지관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30대 초반이었던 지관 스님은 경(經)에 밝고 지식이 풍부했다.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나’와 ‘세계’를 보는 안목을 넓히는 시간을 갖는 것을 의미했다. ‘나를 얼마나 아는가,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러한 물음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었고 경전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비추어주는 거울과 같았다. 공부가 점점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경전을 공부하면서 늘, 이 대목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법문 거리로 다가왔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아, 이건 법문의 소재가 되겠구나.’ 하고 메모해두곤 했다. 불교를 바로 알아 현실의 힘든 생활을 헤쳐 나가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워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열망이 떠나질 않았다. 타고난 포교사였다. 이러한 포교에의 열정이 해인사 주최 학습법문 대회에서 우승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 일 년에 두 번 100여 명의 학인(강원생) 전원이 참가하는 학습법문(학습발표) 대회를 열었다. 청담·운허 스님 등 주요 소임을 보던 큰스님들을 비롯해 전 학인들이 보는 가운데 포교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나를 보는 대회였다. 해인사에 있는 동안 그 대회에서 일등을 두 번 차지했다. 자광 스님이 발표한 법문의 요지는 ‘불교의 대의를 정확히 알고 포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교를 하는 데는 경전의 세밀한 내용보다는 대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100여 명의 모든 학인들이 당장 신도들 앞에서 얘기할 수 있는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치문경훈』에서 읽었던 ‘불교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가 다겁생으로 지은 업식(業識)의 종자를 끊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내용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업식의 종자를 끊는다는 것은 살아오면서 익혀온 나쁜 습관을 버린다는 의미이다. 나쁜 습관이 업을 만들고 살아가는 데 장애를 만들어 고통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불교의 요지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다. 고통을 여의고 평안을 얻는다는 말이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익혀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습관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여덟 가지의 길을 제시했다.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바르게 생각을 하고 바른 말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바른 생활을 하고 바른 직업을 가지고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면 된다는 것이다. 들뜨지 말고 현재에 바르게 집중하며 항상 중심을 잡고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자광 스님은 그때의 일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며 포교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포교는 간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사람이 실천하지 않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배우는 사람도 앞이 깜깜하기만 해요. 수미산을 옮기는 지식보다 털끝 하나 옮기는 실천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해인강원에서 공부하며 보낸 시간들은 그런 것들을 깨우쳐갔던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대담에서(2022.5.10.)
자광 대종사의 손이 닿는 곳에는 여전히 불서들이 놓여 있다.
· 집필자 : 박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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