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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의 삶으로 이끈 한 권의 책

은사 경산 스님이 어린 시자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은 『초발심자경문』이다. 이 책은 불문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필수로 배우는 기본 입문서로 출가자들이 행해야 할 기본적인 규범, 발심을 시키는 교훈들이 수록되어 있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출가 초기에 이 책을 배우고 익히며 발심했다. 이 책 한 권만 잘 익혀 실천하면 훌륭한 수행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에 이의를 달 수행자는 없을 정도로 교과서 같은 책이다. 자광 스님도 은사스님에게 이 책을 배우며 수없이 감동했고, 초발심 시절은 물론 출가생활을 하면서 거듭 신심을 다졌다.
젊은 시절의 자광 스님
『초발심자경문』은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이 찬술한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원효(元曉, 617-686)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야운(野雲, 생몰년미상) 스님의 「자경문(自警文)」 등 세 가지 글을 합본한 것이다. 자광 스님은 이 책을 거의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다. 「발심수행장」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지금도 입에서 술술 흘러나올 만큼 신심을 불러일으켰다.
배슬(拜膝)이 여빙(如氷)이라도 무련화심(無戀火心)하며, 아장(餓腸)이 여절(如切)이라도 무구식념(無求食念)이니라. 홀지백년(忽至百年)이어늘 운하불학(云何不學)이며, 일생(一生)이 기하(幾何)관대 불수방일(不修放逸)고.
은사스님이 한문으로 되어 있는 원문을 이렇게 새겨주었다. “절하는 무릎이 추워서 얼음 같이 얼어붙더라도 따뜻한 불 생각을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하고, 밥을 굶어 주린 창자가 끊어질 듯 고파도 먹을 것을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백 년이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않으며,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수행하지 않고 안일에 빠져 있는가.” 은사스님은 한문으로 된 책의 내용을 다 외우도록 명했다. 앉으나 서나 외우다 보니 어느덧 내용들이 화두가 되다시피 했다. 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에 나오는 다음 내용을 외울 때는 환희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지은 업장이 산과 바다와 같이 높고 크고 깊음을 알고, 마음과 행동으로 참회하면 업장을 소멸할 수 있음을 알라. 나와 부처가 둘이 아닌 진성연기(眞性緣起)이나 다르게 나툰 것임을 깊이 관찰하라. 중생과 부처가 하나로 감응함이 허망하지 않으니 마치 그림자나 메아리가 따르는 것처럼 깊이 믿어라.” 은사스님은 중생과 부처가 본래 하나임을 믿고 자신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데 힘을 쓰면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니 열심히 배우고 익히라고 독려했다. 맑은 영혼의 열아홉 소년은 저 말씀을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었다. 출가 전에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님과 다름없는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싯다르타』를 읽으며 얼마나 큰 희망을 가졌던가. 믿음이 확고했기에 출가 후의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성불을 향한 시선이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은사 경산 스님의 친필 (출처 : 《불교신문》)
「자경문」에 나오는 10가지 경계의 글을 은사스님이 얼마나 진심을 다해 설해주었는지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옷과 음식을 삼갈 것, 재물에 욕심내지 말 것, 말을 조심할 것, 좋은 친구를 사귈 것, 잠을 적게 잘 것, 아만을 버릴 것, 재물과 여색[財色]을 멀리할 것, 세속에 물들지 말 것, 남의 허물을 들추지 말 것, 평등하게 사람을 대할 것.’ 자광 스님은 일생 동안 저 평범해 보이는 열 가지 경책을 털끝만큼의 빈틈도 없이 성실히 지켰다. 평생 동안 좋고 값비싼 옷을 걸쳐 본 적이 없으며, 어느 자리에서나 정갈한 음식이 아니면 손을 대지 않았다. 군법사로 있을 때도 장병들을 교화하는 데 급여 전부를 썼고, 전역 뒤에도 큰 절의 주지 한 번 지내지 않고 작고 소박한 선원에서 신도들의 교화에만 힘썼으니 재물에 대한 욕심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부드러운 말로 상대방을 높이고, 격려와 칭찬하는 말만 하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비난이나 부정적인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스님의 곁에 있으면 누구나 위로받고 자신이 귀한 사람으로 느껴지는 체험을 했다. 수행자답지 않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았으며, 진리를 구하고 대중들을 교화하는 데 매진하느라 잠 한 번 푹 자 본 적이 없다. 항시 몸을 낮추어 중생을 대했을 뿐 남을 업신여기거나 자신에 대한 자랑을 내세운 적이 없으며, 재물과 이성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으니 결혼이 허용되었던 군법사 시절에도 청정비구로서의 계율을 철저히 지켰다. 세속의 잡다한 일에 관여한 적이 없으며 남의 허물을 들추는 것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다. 승속과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을 평등하게 대했기에, 스님을 모셨던 일터에서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보다 사람을 평등하게 대했던 수행자로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 『초발심자경문』을 배우면서 이 도리대로 살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 초심을 잃지 않고 수행자로 살아가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은사스님께 글을 배우는 동안 가까이에서 은사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 출가의 길은 저렇듯 완성된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저히 계율을 지키며 오직 화합된 종단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은사에게서 소신을 잃지 않고 한 길로 매진하는 일이 얼마나 장부다운 삶인지도 배웠다. 군 포교를 위해 젊음을 다 바치며 25년 동안 군승으로 있으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청정비구의 삶을 견지했던 것은 이때 은사 스님에게 배웠던 공부가 가슴에 잘 스며들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계급장을 단 채 군복을 입고 생활했지만 수행자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던 것도 초발심 시절에 외우며 공부했던 『초발심자경문』의 내용을 되뇌며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행동이 워낙 모범적이고 수행승으로 손색이 없는 분이었기 때문에 말에서보다는 행동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나의 은사는 추호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종단에서 내주는 승용차를 마다하고 버스를 타고 다녔던 스승이었고, 대의를 위해 신명을 다 바친 스승이었다. 은사를 시봉했던 그 시절에 은사께 배운 모든 것이 출가 인생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의 행자 시절」, 『해인』(2016.11.)
1967년 한국을 방문한 세계불교도우의회 지도자들과(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경산 스님) (출처 : 《불교신문》)
· 집필자 : 박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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