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광 큰스님은 1942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의 이름은 임달성, 어머니의 이름은 김숙현이다. 3남 2녀 중 막내로 성장한 큰스님의 속명은 봉준이다. 아버지는 동네 이장 일을 보면서 성실하게 농사를 짓던 순박한 농부였고, 어머니는 다섯 남매를 기르며 농사일을 돕던 평범한 여인이었다. 큰스님은 자애로운 부모님 밑에서 두 명의 형과 누나들 속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껏 뛰놀며 자랐다. 아홉 살에 일어난 한국전쟁 전까지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 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평화로움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홉 살에서 열두 살까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온몸으로 겪어야했다. 전쟁의 와중에 부모님 모두를 잃었다.
아홉 살에 부모님 모두를 잃었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불행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을 보아야했다. 낮에 보았던 사람이 밤이면 없어져 돌아오지 않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날이었다. 삶 너머에 죽음도 함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저절로 알게 되었다. 큰형은 임시 경찰로 들어가 목숨을 부지했고, 고향에 남아있던 작은 형은 몸을 숨겨 간신히 살아남았다. 삼형제 중 두 사람은 그렇게 살아남았고 스님은 나이가 어려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청소년기의 자광 스님
집에는 쌀 한 톨 남아있지 않았다.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군량미로 모두 털어갔기 때문이다. 텃밭에 심어놓았던 고구마를 캐 먹기도 하고 이름 모를 열매를 따 먹기도 했다. 그마저도 부족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다. 그렇듯 전쟁은 굶주림과 공포를 함께 가져다주었다. 좌익에게 빼앗겼던 동네 고향 땅이 우익에게 넘어갔던 어느 날, 경찰이 된 큰형이 집에 들렀다. 누나들과 집에 있던 스님이 반가움을 표할 새도 없이 집을 둘러보고 다시 총을 들고 나갔다. 낮에는 경찰이 주둔했고 밤에는 빨치산들이 마을에 들어와 관에 관련된 집안사람들을 잡아갔다. 누나들과 밤이 되면 돌담을 쳐놓은 경찰서로 갔다. 30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몸을 숨기고 있으면 빨치산들이 경찰서를 점령하기 위해 밤새 돌담에 대고 총을 쏘았다. 공포의 밤을 보내고 밖으로 나와 보면 불과 2, 30미터 앞에 죽어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총소리와 함께 생사가 오가는 전쟁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 보낸 3년여의 전쟁이 끝나자 형과 누나들은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폐교되었던 학교의 문이 열리고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외롭고 불안했다. 말수가 적었으나 막내아들을 향해 자주 환한 웃음을 지으셨던 아버지,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려 따뜻한 점심상을 차려주었던 어머니의 부재는 전쟁 때 겪은 상처보다 더 쓰라렸다. 세상에 홀로 있는 듯 허허롭고 황폐했다. 큰스님은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는 공포보다 악만 남게 된다는 것을 전쟁을 통해 알았습니다.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한 일입니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 전쟁을 경험해봤기에 너무 잘 알아요. 굶주림과 공포,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야 하는 전쟁은 그 어떤 이유로도 일어나선 안 돼요.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대담에서(2022.5.10.)
전쟁이 끝난 뒤 스님은 경찰관인 큰형을 부모님 대신 의지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직업상 이동이 잦았던 큰형을 따라 순천, 김제, 전주 등지로 옮겨 다니며 학교를 다녔다. 순창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는 천주교를 믿는 친척을 따라 성당에도 가보았다. 마음을 둘 의지처가 간절했는데도 어쩐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망망대해 가운데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삶에서 무엇을 붙들고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가슴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답답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헤겔의 철학서들을 읽었다. 그 시절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읽던 책이었다. 반의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출구가 보이지 않던 막막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권의 책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다. 그 책에서 ‘출가’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작가는 책을 통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 세상은 온통 번뇌로 가득 차 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했으며, 출가의 길을 가는 자는 번뇌에서 벗어나 대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전북 순창중학교 3학년 시기
부귀영화가 보장된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해서 깊은 수행 끝에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커다란 희망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출가해서 부처님처럼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님과 똑같이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뛰게 했다. 2,500년 전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완벽한 철학자처럼 느껴졌다.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게 한다는 네 가지의 진리인 사제(四諦)와 여덟 가지 바른 길인 팔정도(八正道)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도 궁금했다.
헤세는 그의 시 「봄의 목소리」에서 소년소녀들에게 ‘삶을 두려워하지 말고 온몸을 던지라.’고 외쳤다. 열여덟 살의 소년에게도 젊은이들을 향한 서구 작가의 외침이 내면으로 스며들었던 것 같다. 스님은 마침내 지금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출가의 길에 몸을 던지리라 결심했다. 출가해서 절에서 살면 젊음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내는 순간 하늘이 움직인다고 했던가. 그 진실한 한 마음이 인연을 불러들였다.
작은 형이 있는 전주에 다니러 갔을 때였다. 시내에서 바랑을 메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스님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옷차림새는 남루했지만 차분한 분위기에서 어떤 힘이 느껴졌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길 위에서 수행하는 만행승(萬行僧) 같았다. 그 스님의 뒤를 따라 걷다가 용기를 내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출가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사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던 그 스님이 경청하고 나더니 출가해서 힘껏 수행하면 내면적으로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것이나 아직 학생이니 졸업을 하고 가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출가하고 싶다고 하자 구례에 있는 지리산 화엄사를 추천해주었다.
가까이에 있던 금산사를 두고 왜 화엄사로 가라고 했는지 의아했으나 이미 출가하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학여행 때 가본 적 있는 화엄사는 변산에 있던 다른 절들과는 달리 고요한 분위기로 마음속에 남아있던 곳이었다. 어떻게 출가해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화엄사로 달려갔다. 종무소에 있던 한 스님이 출가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는 찬찬히 행색을 살펴보더니 아직 학생인 것 같은데 부모님 허락을 받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허락을 받는단 말인가. 출가는 자신이 결정한 일이었고 더구나 허락을 받아야 할 부모님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다. 집으로 돌아와 쓰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다시 화엄사로 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의 겨울이었다.
지리산 화엄사 (출처 : 지리산 화엄사)
· 집필자 : 박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