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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二諦)에 대한 가르침

불심 도문 법사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인 이제(二諦)를 알아야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인식인 ‘반야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공사상은 원시불교에도 이미 존재했다. 이는 『대공경(大空經)』과 『소공경(小空經)』이 『아함경』에 포함돼 있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공(空) 사상이 크게 대두된 것은 대승불교의 『반야경』이 널리 읽힌 이후부터이다. 용수(龍樹)가 저술한 『반야경』은 공사상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최초의 저작이다. 용수는 현실세계의 참된 모습을 설명하는 데 2제(二諦)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2제란 두 가지 진리라는 뜻이다. 2제 중 하나는 세속제(世俗諦)이고 다른 하나는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일면적인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두 가지 진리인 2제(二諦)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인식을 할 때 세계를 두 가지의 진리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속제, 줄여서 속제는 말로써 표현되는 진리인 까닭에 연설제(演說諦)라고도 한다. 제일의제(第一義諦)는 최고의 진리라는 의미에서 줄여서 진제(眞諦)라고도 한다. 이 세상의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는 까닭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존재의 참된 모습을 바로 보려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으로 파악해야 한다. 만약 고정적인 모습으로 파악한다면 존재의 그림자밖에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언뜻 보면 아름다운 은구슬처럼 보이지만 빗방울이 손바닥에 떨어지면 은구슬은 간데없이 사라진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모습을 바로 보고 이해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제일의제(第一義諦)의 인식이다. 제일의제(第一義諦)의 인식을 할 줄 알면 반야의 지혜를 얻게 된다. 반야의 지혜란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볼 줄 아는 직관력을 의미한다. 전체를 볼 줄 아는 까닭에 전체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보는 자신이 보이는 세상에서 빠져 있다면, 보고 있는 이 세상은 전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적인 인식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보는 자신을 보이는 세상 속에 포함할 때만이 주관과 객관이 하나로 원융될 수 있다. 이러한 전체적 인식은 시간적으로는 영원, 공간적으로는 무한을 인식할 때만이 가능하다. 우주의 끝까지 가봤다고 해도 무한에 도달한 것은 아니고, 우주의 시작과 끝을 봤다고 해도 영원을 경험한 것은 아니다.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니고서는 무한의 공간도, 영원의 시간도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무한의 공간과 영원의 시간을 체험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한의 공간과 영원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인식을 할 때만이 가능하다.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무한의 공간도, 영원의 시간도 체험할 수 없으며, 나아가서는 전체에 대한 인식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반야의 예지(叡智)는 자신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지닐 수 있다. 이러한 상태를 ‘제법(諸法)의 실상’이라고 일컫는다. 제일의제(第一義諦)의 세계는 전체의 세계인 동시에 무아(無我)의 세계이고 공(空)의 세계이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세계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자신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세계와 부분적인 자신, 절대적인 세계와 상대적인 자신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체적인 세계에 개개의 존재를 법(法)이라고 일컫는다. 법의 세계를 인식하는 태도는 주객합일(主客合一)의 태도와 주객대립(主客對立)의 태도로 나눠진다. 법의 세계를 바로 보려면 연기(緣起)를 알아야 한다. 전체의 세계는 반야의 예지에 의해서 인식되지만 법의 세계는 방편인 지혜에 의해서 인식된다. 전체의 세계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지만 개체의 세계는 말로 표현할 수가 있다. 그래서 세속제 내지는 속제라고 하는 것이다. 유동적인 전체의 세계와 개별적인 법의 세계는 별개가 아니다. 진여의 세계, 공(空)의 세계가 그대로 생멸의 세계, 개체의 세계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일의제(第一義諦)의 인식과 세속제의 인식을 함께 해야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세속제의 인식은 자기에게 괴로움이 생기면 괴로움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그 괴로움이 사라지면 그 괴로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즐거움이 생기면 즐거움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즐거움이 사라지면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아는 것이 바로 방편의 지혜이다. 방편의 지혜 역시 자신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다. 집착을 떠나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견해를 일컬어 제일의제와 세속제와의 중도(中道)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도문 법사는, “이 세상의 만물은 생멸하는 동시에 불생불멸한다. 『반야심경』의 ‘공즉시색(空即是色)’이라는 가르침은 일체가 공하여서 이 세상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버드나무는 초록색이고 꽃은 빨강색이라는 차별적 인식을 할 수밖에 없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가르침에는 제일의제와 세속제가 각각 별개의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원융돼 있다는 진리가 깃들어 있다.” 고 설명했다.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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