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은 어디서 오며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인데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도다.
생사거래도 역시 그런 것이고
그러나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있어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네.
- 함허 득통 선사의 임종게(臨終偈)
불심 도문 법사는 ‘마음은 만법(萬法)의 근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마음이 생겨나면 만법 또한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만법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달마관심론』의 첫머리에는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조(二祖)인 혜가 스님이 달마 대사에게 물었다.
“도(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합니까?”
“마음을 관찰하는 한 가지가 모든 수행을 다 포함한다.”
혜가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 마음 관찰이 모든 수행을 다 포함합니까?”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므로, 모든 행위가 마음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달으면 만 가지 수행을 다 갖추는 것이다. 모든 현상이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밖에 따로 구할 도(道)가 있다면 옳지 않다.”
부처님은 6년 동안 고행 수도한 끝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불성(佛性)을 발견하셨다. 부처님께서 발견한 불성은 일체 중생의 마음에도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뒤 평생 동안 한 일은 바로 중생들이 자신의 불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은 뒤 이렇게 말씀하였다.
“실로 놀랍지 않은가? 일체 중생의 심중에는 청정법신이 엄연히 갖추어져 있는데 중생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내가 이미 이루어진 부처라면 중생들은 마땅히 이루어질 부처이다.”
우주 만법의 근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고대 서양의 철학자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혹자는 물에서 나왔다고 주장했고, 다른 혹자는 불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고대 인도의 철학자들은 절대적인 원리인 범(梵)으로부터 일체 만물이 분화되었다고 봤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은 우주 만물이 각자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설파하였다. 부처님의 설법 중 가장 많은 주제가 바로 마음에 관한 것이었다. 『화엄경』에 이르길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상을 다 그린다. 오온(五蘊)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기니 마음이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마음과 같이 부처도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 가지는 차별이 없다. 모든 부처들은 일체가 마음에서 나온 것인 줄을 안다. 부처와 마음은 그 체성이 모두 끝이 없음을 응당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 사람은 지혜를 완성할 수 없다. 마음에 걱정이 없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선악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있고 이처럼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다. 몸은 유리병처럼 깨지기 쉽고 마음은 금강석처럼 굳건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음은 흔들리고 불안하여서 억제하기가 매우 어려우나, 어진 사람은 마음을 곧게 갖는다. 비유컨대 이는 활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곧게 만드는 것과 같다. 마음을 억제하는 사람만이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중생을 만들어 낸 것도 마음이고 부처를 만들어내는 것도 마음이다. 일체 세간 중에 한 가지도 아니 만들어낸 것이 없는 게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중생의 마음으로부터 어떻게 우주 만법이 전개되는 것인가? 도문 법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주 만법이라는 것은 현상계에 속하는 것이다. 현상계의 제법은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는 유위생멸(有爲生滅)의 법이다. 불완전한 법을 전개하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도 따라서 완전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불완전한 현상계의 제법만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마음으로부터 부처도 생겨난다. 마음은 진리의 세계에도 계합(契合)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중생의 마음은 완전무결한 진리의 세계에 돌아갈 수 있는 선성(善性)도 있는 동시에 불완전한 현상계를 전개시킬 악성(惡性)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려주는 것이 마명 스님이 지은 『기신론』 이다. 『기신론』은 우리의 마음을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진리의 세계에 돌아갈[환멸문還滅門] 자성청정의 본래 마음과 현상계를 전개시키는[유전문流轉門] 번뇌 망상에 상응하는 거짓 마음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생멸문(心生滅門)은 무엇인가? 중생의 마음이 이 우주 만법의 현상계를 만들 때 마음의 본체가 만드는 게 아니다. 마음이라는 밭에 만법의 종자를 심는 것이 바로 식(識)이다. 만법의 종자가 자라면 우주의 삼라만상이 되는 것이다.
식(識)에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등 6식[六識]이 있고 제7 말나식(末那識)과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다. 비유컨대 아뢰야식은 집과 같고 말나식은 주인과 같으며 6식은 일꾼들과 같아서 각각 그 맡은 바 역할을 하는 것이다.
6식은 외부에 대한 인식작용을 하는 것이다. 형상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피부로 느낀 것을 인식한 뒤 그 기억을 아뢰야식이라는 창고에 저장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말나식은 아뢰야식이 자신의 본체라고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6식은 우주 만법을 산출할 씨앗들을 거둬들이고 아뢰야식은 이 거둬들인 씨앗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저장한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을 장식(藏識)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말나식은 제법(諸法)의 종자를 간직하고 있는 아뢰야식을 항상 지키는 역할을 한다. 아뢰야식이 저장 창고라면 말나식은 저장 창고를 지키는 수문장인 것이다.
중생들은 심생멸문(心生滅門)과 심진여문(心眞如門)을 지니고 있다. 부처가 되느냐, 중생이 되느냐 하는 것은 심진여와 심생멸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 선법 인연의 종자가 승부에서 이기면 심진여문에 들어가는 것이고, 반대로 악법 인연의 종자가 승부에서 이기면 심생멸문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화엄경』에 이르길 ‘만약 인간계에서 삼세 일체 부처님의 통달하신 경지를 알고자 한다면 10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지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10법계는 사성(四聖) 육범(六凡)을 일컫는다. 보리심으로 일관하면 불승(佛乘)이고, 자비심으로 일관하면 보살승(菩薩乘)이고, 실상심(實相心)으로 일관하면 연각승(緣覺乘)이고, 교리심(敎理心)으로 일관하면 성문승(聲聞乘)이다. 이것이 바로 4성계이다. 정수행을 하면 무색계의 4천승이 되고, 선수행을 하면 색계의 7천승이 되고, 10선을 행하면 욕계의 6천승이 되고, 선악의 마음이 절반씩 있으면 인간이 되고, 성내는 마음을 지니면 아수라가 되고, 어리석은 마음을 지니면 축생이 되고, 탐욕을 지니면 아귀가 되고, 번뇌하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이를 일컬어 육도(六道) 범부의 중생계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육도윤회(六道輪迴)할 수도 있고 부처님이나 보살님도 될 수 있는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