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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력연기설(業力緣起說)이란 무엇인가?

불심 도문 법사의 사상은 저서 『불타의 길』에 잘 나타나 있다. ‘인생과 우주는 어떻게 해서 성립된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도문 법사는 아래와 같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인생과 우주는 어떻게 성립된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철학자와 종교가들이 노력해왔다. 기독교인들은 신(神)이 인간과 만물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그런가 하면 인도에서는 부처님이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전에 바라문교를 믿었는데, 바라문교에서는 하나의 절대적인 원리가 만물로 분화하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창조신의 존재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바라문교의 하나의 절대적인 원리가 만물로 분화했다는 주장도 부정하고 있다. 불교는 업력(業力)에 의해서 인생이 생겨나고 만물이 전개된다고 본다. 이를 일컬어 ‘업력연기설(業力緣起說)’이라고 한다.
여기서 ‘업력’이란 일종의 생명 중심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업(業)은 범어 ‘카르마(karma)’를 번역한 것으로 ‘만든다’, ‘짓는다’, ‘한다’ 등 활동이나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 내지는 행위는 일시적인 현상이어서 그 활동 내지는 행위의 형체는 일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 대신 이러한 활동 내지는 행위에 의해서 일어난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된다. 이러한 업력에 대해 도문 법사는 아래와 같이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쁜 사람이 아무런 허물이 없는 다른 사람에게 폭언하고 폭행했다고 칩시다. 나쁜 사람이 폭언과 폭행을 한 뒤 그 나쁜 행위는 지속되지 않습니다. 이미 그 나쁜 행위는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대신 나쁜 사람이 행한 나쁜 업만이 남게 됩니다. 느닷없이 폭언과 폭행을 당한 사람의 마음에는 분하고 억울한 감정이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폭언하고 폭행한 사람이 훗날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다면 죄의식과 뉘우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행위 이후 남게 되는 에너지를 업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업력은 다른 행위의 원인이 되므로 업력불멸(業力不滅)이라고 하고, 인과필정(因果必定)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업력의 무서움을 안다면 삼업(三業), 즉 몸으로 행동하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조심하게 된다는 게 도문 법사의 설명이다. 몸으로 행동하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짓는 악업을 일컬어 10악업이라고 한다. 신업(身業)의 세 가지는 살생(殺生)과 투도(兪盜)와 사음(邪淫)이다. 살생은 생명체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설했다시피 생명체는 모두 다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호생오사지심(好生惡死之心)을 가지고 있다. 불교 교리에 따르면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 살생을 하게 되면 일찍 죽는 업보를 받게 된다. 투도는 주인이 주지 않는 물건을 몰래 훔치는 것을 뜻한다. 소유물은 절로 생기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그 물건을 매수했거나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의 소유물을 훔치는 것은 타인의 노동력을 훔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타인의 삶의 일부를 훔치는 것이다. 투도를 하게 되면 빈천한 삶을 사는 업보를 받게 된다. 사음은 타인의 배우자와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일컫는다. 사음을 하게 되면 누군가에게 씻기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된다. 사음을 하게 되면 결국 그 업보로 인해 자신의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업보를 받게 된다. 구업(口業)의 네 가지는 망어(妄語)와 악구(惡口)와 양설(兩說)과 기어(綺語)이다. 망어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악구는 욕설 내지는 험담을 하는 것이다. 양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양설의 뜻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이 사람에게 들은 말을 저 사람에게 전함으로서 이간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과거에 한 말을 바꾸는 것이다. 기어의 기(綺)는 비단 기이다. 따라서 사전적 의미만 보면 기어는 비단처럼 예쁜 말이다. 하지만 교묘히 예쁘게 꾸민 말이기 때문에 그 말 속에는 진실이 담겨 있지 않다. 양설과 기어가 십악 중 하나인 이유는 의도적으로 말을 조작하여 상대의 마음을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말은 실로 무서워서 사람의 목숨은 물론이고 국가의 흥망까지도 좌우한다. 구업을 지으면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업보를 받게 된다. 의업의 세 가지는 탐(貪), 진(嗔), 치(癡)이다. 탐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게 욕심을 내는 것이다. 진은 성내는 것을 일컫는다. 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사실은 탐과 진과 치는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성실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 부자가 되길 바란다면, 자신의 부족한 점은 살펴보지 않고, 자신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화를 내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소유가 아닌 재산을 가로채려는 어리석은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 세 가지 번뇌를 가진 마음은 삼계의 모든 번뇌를 포섭한다. 번뇌가 중생의 마음을 해치는 것이 마치 독사의 독과 같아서 삼독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십악업이 사라진 궁극적인 상태는 탐, 진, 치가 사라진 상태이다. 팔정도의 수행이 궁극에 이른 경지는 탐, 진, 치가 사라진 상태이다. 열반이란 탐욕이 영진(永盡)하고, 진애가 영진하고, 우치가 영진한 것이니 일체 번뇌가 영진한 것을 말한다. -『아함경』에서 인용 이 세상 모두가 불타고 있다. 눈과 마음에서 눈이 물건에 접촉할 때에 감각에서도 불이 타고 있다. 어떤 불에 의해 타게 되는가? 탐욕의 불, 진심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타고 있다. 눈, 귀, 코, 혀, 몸, 뜻 등의 육식의 감각 기관이 빛깔, 소리, 냄새, 맛, 감촉, 의식의 경계에 접촉하여 감각 지각을 일으킬 때 삼독의 불이 일어난다. 이와 같은 삼독의 불이 모두 꺼져버리면 해탈 열반에 이른다. -『아함경』에서 인용
탐, 진, 치를 멸한 사람은 가장 현명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욕심이 없는 상태에서, 분노가 일지 않는 고요한 마음에서, 어리석음이 걷힌 지혜의 눈으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십종선업(十種善業) 내지는 10선업은 앞서 설명한 열 가지 악업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살생 대신 죽을 위기에 처한 생명을 살려주고, 투도 대신 남에게 보시하는 것을 일컫는다. 선업을 짓느냐, 악업을 짓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미래도 달라진다. 부처님이 설하길, “과거세에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자 한다면 현재 자신의 상황을 보면 되고, 미래세에 자기가 어떻게 살 것인지 알고자 한다면 현재 자신의 행동을 보면 된다.” 고 했다. 다시 말해 현재의 모습이 과거세와 미래세를 비춰주는 거울인 것이다. 자신이 뿌린 씨앗의 과실은 결국 자신이 거둘 수밖에 없다. 중생이 짓는 업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불공업(不共業)이고 다른 하나는 공업(共業)이다. 전자가 각자가 자신의 과보를 받는 것이라면, 후자는 중생 모두 함께 지은 과보를 받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개인이 잘되고 잘못 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인 반면, 한 국가 나아가서는 전 인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행하라.”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의 가르침이야말로 가장 빼어난 인생철학이자 우주철학이고 나아가서 실천철학인 것이다. 따라서 아래의 부처님의 말씀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선한 일에 대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악한 일은 멀리하라. 선한 일을 하는 데 게으르면 그의 마음은 악행을 즐기게 된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다시는 짓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그 일에 마음을 두지 말라. 슬픔은 악행의 쌓임에서 오는 것이다. 사람이 선한 일을 했으면 늘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 일에 마음을 두라. 기쁨은 선한 일의 쌓임에서 오는 것이다. 악의 열매가 맺기까지는 악한 사람도 행복을 맛본다. 그러나 악행의 열매가 익었을 때 악한 자는 악업을 받는다. 선의 열매가 맺기까지는 선한 사람도 악을 맛본다. 그러나 선행의 열매가 익었을 때 선한 사람은 선업을 받느니라. 악은 내게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조그마한 악이라도 쌓이고 쌓이면 어리석은 자는 악으로 가득 차느니라. 동행자 없고 재물이 많은 상인이 위험한 길을 피하듯이, 생명을 아끼는 사람이 독을 피하듯이, 모든 악행은 피해야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바로 인과법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이 세상은 인과법에 의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운영되고 있다. 원인은 과거에 벌어진 일이고, 결과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지금 벌어진 일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에 지금이라는 시간은 결과이면서 새로운 원인이 된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인과법은 과거로 인해 현재가 있고 현재로 인해 미래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업의 순환원리로 보면, 악인악과(惡因惡果) 선인선과(善因善果)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씨앗을 심지 않고 가만히 두면 결코 싹은 돋아나지 않는다. 흙, 적당한 습기, 따뜻한 온도, 농부의 손길 등이 있어야 한다.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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