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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마음의 그림자

불심 도문 법사는 당대 최고의 선지식들로부터 화두를 받고 수행한 끝에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도문 법사는 1946년 8월 8일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을 계사로 하여 사미 10계를 수지하고 동헌 완규(東軒完圭, 1896-1984) 조사를 은사로 모시고 득도(得度)하였다. 당시 도문 법사는 만암 스님으로부터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 화두를 받았다. 만암 스님이 오른손을 높이 들어서, 만법귀일 일귀하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고 물은 뒤 손을 내렸다. ‘만법귀일 일귀하처’는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의미이다. 만암 스님이 이 화두를 내렸을 때 대중 중에서 당시 사미(沙彌)였던 도문 법사만이 홀로 천연덕스럽게 한 팔을 들어 보임으로써 화답했다. 이러한 도문 법사의 모습에서 만암 스님은 선세(先世) 혹은 전생의 습(習)을 대번 간파했음은 물론이고 삼세(三世)의 인연이 지중한 법기(法機)임을 알아봤다. 그런 까닭에 만암 스님은, “도문 법사는 위대한 선지식이다. 법손으로써 손색이 없는 법기로다.” 라며 스님을 칭찬한 것은 물론이고, “그렇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는 만법으로 돌아가지.” 라며 환희용약(歡喜踵躍)하였던 것이다. 당시 도문 법사의 세납은 고작 12세였다. 도문 법사가 선세의 습을 인증 받고 나서 만암 스님은 134제방의 선지식들께 인편과 우편 서신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도문 법사를 점검해 줄 것을 요청했다. 133제방의 선지식들께서는 묵묵부답했지만, 유일하게 한암 중원(漢巖重遠, 1876-1951) 스님이, “도문을 점검하겠노라” 고 응답하였다. 그리하여 도문 법사는 세납 15세인 1949년 8월 15일 종조부인 임봉권 화백의 안내로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 조실 한암 중원 스님으로부터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화두를 받고 참선 수행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인가를 받기 위해 도문 법사가 조실방에 들어가자 한암 스님은, “참선하는 너의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내년 여름방학 때 다시 와서 점검을 받으라.” 라고 말했다. 조실방에서 나온 도문 법사의 눈에는 미래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 미래의 모습이란 다름 아닌 내년부터 3년 동안 삼천리강산이 불바다가 되는데, 부산에서 대구까지는 화마가 미치지 않는 것이었다. 도문 법사는 종조부에게 자신이 본 미래의 모습을 알려드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는 전쟁이 나서 저는 이곳에 올 수 없고, 조실 노장 큰스님이 입적할 것이므로 인가 또한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인가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 종조부는 도문 법사의 말을 듣고서 화를 내면서 꾸중했다. 말소리가 컸던 터라 한암 스님도 임봉권 화백의 말을 들었고, 도문 법사가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암 스님은 화를 내는 임봉권 화백을 말리면서, “식(識)이 맑으면 미래를 볼 수도 있습니다. 내년 여름방학 때 다시 함께 오십시오.” 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이듬해에는 도문 법사가 예견한 대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경주 천룡사지 탑전에서 오체투지하는 불심 도문 법사
도문 법사는 16세인 1950년 7월 15일 구산선문 중 하나인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끝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뜻으로 분별하는 알음알이인 지적인 미혹에서 벗어난 경지에 이르렀다. 이를 일컬어 견도(見道)라고 한다. 견도의 경계에 이르러 도문 법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견도송을 읊었다.
心中有生死 마음 가운데 생사가 있으니 無心無生死 마음이 없으면 생사도 없는 것이로다 一切唯心造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지었음이니 我佛歌祖舞 나는 부처님의 노래 부르고 조사의 춤을 추리라.
도문 법사가 어머니와 함께 피난을 가다가 실상사를 찾았는데, 실상사에는 이미 인민군이 주둔해 있었다. 한 인민군이 도문 법사의 이마에 총구를 겨눴다. 도문 법사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 어머니가 말했다. “떨기는 왜 떠느냐? 마음의 두려움을 내려놓아라. 그러면 무서울 것이 없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도문 법사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절로 입 밖으로 견도송이 튀어 나왔던 것이다. 도문 법사는 견도 체험을 회고하면서, “진정으로 법을 구하는 사람은 구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있지 않고, 부처를 떠나서 따로 있는 마음도 없다. 선을 취하지도 말고, 악을 버리지도 말며, 깨끗함과 더러움, 어느 것도 의지하지 마라. 죄의 본질이 공(空)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쉬지 않고 오가는 번뇌의 고리도 끊어진다. 자성이 없기 때문에 번뇌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계는 오직 마음이며, 삼라만상은 한 개 마음의 흔적이다.” 라는 당나라 마조(馬祖) 선사의 가르침을 인용했다. 달마 대사는 『혈맥론』에서, “삼계가 혼돈 속에서 일어났으나 본체에서 보면 모두 일심(一心)으로 귀결된다. 과거의 부처님과 미래의 진리를 깨달을 부처님들은 마음으로써 깨달은 그 마음을 전할 뿐 말이나 문자를 빌리지 않는다.” 고 설했다. 이 가르침을 듣고서 한 사람이 달마 대사에게 물었다.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전합니까?” 달마 대사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그대가 묻는 것이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그대의 질문을 받고서 내가 대답하는 것이 내 마음이다. 만약 그대에게서 마음이 없다면 무엇에 근거해 나에게 질문하는 것을 알 것이며 내게 마음이 없다면 무엇에 근거해 그대에게 대답하는 것을 알 것인가? 오랜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시‧공간이 모두 그대의 근본 마음이니 이것이 바로 그대의 근본 부처이다. 청정한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이니, 이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를 얻을 수 없고 이 마음을 떠나서 보리와 열반을 찾을 수 없다.” 달마 대사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청정한 마음이 곧 부처이니 청정한 마음을 떠나서는 보리와 열반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도문 법사는 이마에 총구가 닿음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순간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마음이 빚어낸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부처가 본원청정심(本願淸淨心)임을 절로 깨달았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마음의 그림자임을 깨닫고 나니 쉬지 않고 오가는 번뇌의 고리가 끊어졌던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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