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 도문 법사는 만암 종헌(曼庵宗憲, 1876-1956) 스님으로부터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배웠다. 37보리분법을 세분화하면 4념처(四念處), 4정근(四精勤), 4여의족(四如意足), 5근(五根), 5력(五力), 7각분(七覺分), 8정도(八正道)이다. 다른 말로는 37각분(覺分)이라고도 한다.
4념처관은 신념처관(身念處觀), 수념처관(受念處觀), 심념처관(心念處觀), 법념처관(法念處觀)을 일컫는다. 4념처관은 근본불교의 수행자들이 생사고해(生死苦海)를 건너 열반의 이상세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닦는 첫 수행단계이다. 이 4념처관 수행을 위빠사나라고 한다.
신념처관은 부모에게서 받은 이 육신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수행이다. 오정심관의 부정관 관법수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념처관은 음행, 자녀, 재물 등 세속적인 즐거움이 진정한 참된 즐거움이 아님을 아는 관수시고(觀受是苦)이다. 수념처관 수행을 통해 도문 법사는 일시적인 세속적인 즐거움이 오히려 고통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심념처관은 우리의 마음이 항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변화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임을 아는 관심무상(觀心無常)이다. 심념처관 수행을 통해 도문 법사는 이 세상이 무상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법념처관은 신념처(身念處)와 수념처(受念處)와 심염처(心念處)를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인 실체가 없으며 또 나에게 속한 모든 물건이 나의 소유물이라는 데 대해서도 모두 일정한 소유자가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관법무아(觀法無我)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인연에 따라서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므로 자아도 인연 연기의 한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도문 법사는 자아라는 것이 실체가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연장선상에서 나라는 것이 없으니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아(無我)와 무소유의 이치를 얻은 것이다. 이 4념처관을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순서로 따로따로 관하는 것을 총상념처관(總相念處觀)이라고 한다.
인도 수자타 마을에서 수행 중인 불심 도문 법사
도문 법사가 몸소 체득한 신념처관의 호흡관찰법을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들이쉬는 숨은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 관찰하고, 내쉬는 숨은 탁하고 더럽고 후덥지근하다고 생각하면서 관찰한다. 길게 숨을 들이쉬고 길게 숨을 내쉰다. 짧게 숨을 들이쉬고 짧게 숨을 내쉰다.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쉬는 데 있어 눈, 코, 귀, 입, 요도, 항문 등 9개의 구멍은 물론이고 8만4천 개의 털구멍이 함께 호흡을 한다. 여기까지는 호흡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관찰이다. 다음으로는 9개의 구멍과 8만4천 털구멍의 호흡이 매우 자연스러워져서 들숨과 날숨이 몸과 조화가 이뤄지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도문 법사가 체득한 수념처관의 호흡관찰법은 아래와 같다.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은 ‘옴’, ‘아’, ‘훔’이라고 수식관(數息觀)을 하여야 한다. 기뻤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 그 기쁨을 느끼면서 숨을 들이쉬고, 과거의 기쁨이 현재의 기쁨으로 이어지도록 그 기쁨을 느끼면서 숨을 내쉰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 그 행복감을 느끼면서 숨을 들이쉬고, 과거의 행복이 현재의 행복으로 이어지도록 그 행복감을 느끼면서 숨을 내쉰다. 여기까지는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는 호흡법이다. 다음으로는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는 마음의 상태를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도문 법사가 체득한 심념처관의 호흡관찰법은 아래와 같다.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마음의 주인공인 본성을 스스로 느끼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눈, 귀, 코, 혀, 몸, 생각 등 6근이 외부세계와 반응해서 느끼는 6식(六識)에 집중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나중에는 자신의 6근과 6근에 반응하는 외부세계의 경계까지 함께 내려놓고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도문 법사가 체득한 법념처관의 호흡관찰법은 아래와 같다.
무념 무상한 마음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공(空)함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5온이 공함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며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법념처관 수행을 통해서 도문 법사는 몸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 또한 생겨나서 이어지다가 달라지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선 호흡을 관찰할 때는 먼저 일체 번뇌와 망상을 내려놓은 청정한 마음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한다. 다음에는 청정한 마음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한다. 다음에는 기쁜 마음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움직이지 않는 확고하고도 고요한 마음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한다.
4념처관의 관찰이 지혜를 증장시키는 위빠사나의 동적 수행이라면, 호흡 수행은 고요한 선정에 들게 하는 사마타의 정적 수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고요한 마음으로 호흡을 관찰하는 까닭에 호흡법은 모든 수행의 기초가 된다.
교육기관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순으로 단계가 있듯이, 선정수행도 단계가 있다. 관법수행의 호흡법이 선정수행의 시작이라면 그 끝은 조사의 활구 간화선이다.
자성이 청정한 까닭에 사람의 마음은 본래 그릇됨이 없으나 경계에 따라 그릇됨이 일어나는 것이다. 최상의 경계는 지혜의 경계로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고 회광반조(回光返照)하여 자성(自性)을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탐, 진, 치 3독심을 끊고 계율, 선정, 지혜 등 3학을 닦아서 ‘나도 능히 모든 악업을 끊고, 선업을 짓고, 불도(佛道)를 닦으리라.’라고 굳은 마음으로 다짐하여야 한다. 또한, 지혜와 복덕과 자비를 지녀서 육도윤회를 벗어나는 성불인연을 지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경계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아 악업을 쌓는 악인을 만나는 경계에서는 악인을 반면교사로 삼고, 선업을 쌓는 선인을 만나는 경계에서는 선인을 본보기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수행자를 만나는 경계에서는 나도 수행자가 될 것이라는 다짐을 해야 한다.
물방울은 물결에서 나왔으니 다시 물결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인연 따라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니 결국 온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겨나고 인연으로부터 사라지는 것.”
이라고 설했던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