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5정심관 관법수행을 통해 일체 번뇌를 씻다

불심 도문 법사는 8세부터 16세까지 종조부인 임봉권 화백으로부터 5정심관(五停心觀)과 4념처관(四念處觀) 관법수행을 배웠다. 임봉권 화백이 아버지 사은 임동수의 지시에 따라 미얀마 승가원에서 3년간 근본불교를 익힌 독실한 불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스님은 다양한 관법수행을 통해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제거할 수 있었다. 5정심관은 관법 수행(觀法修行) 즉 부정관(不淨觀), 자비관(慈悲觀), 인연관(因緣觀), 수식관(數息觀), 관불관(觀佛觀), 관법수행(觀法修行)을 통하여 번뇌를 정지(停止)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탐애심 정진은 부정관 관법수행으로 정지시키고, 진에심 정진은 자비관 관법수행으로 정지시키고, 우치심 정진은 인연관 관법수행으로 정지시키고, 산란심 정진은 수식관 관법수행으로 정지시키고, 아견심 정진은 관불관 관법수행으로 정지시키는 것이다. 임봉권 화백은 5정심관 가운데 먼저 부정관 관법수행을 가르쳐줬다. “네 눈앞에 네 시체가 누워 있다. 그 썩은 시체에 구더기가 들끓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이를 일컬어 9상관(九想觀)이라고 한다.” 종조부가 지시한 대로 스님은 시신에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러자 실제로 감은 눈에 죽은 자신의 시신이 보였고, 파리가 날아들고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이 보였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 광경을 보자 스님은 사람의 육신만큼 더러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집착할 만한 애욕의 대상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탐애심(貪愛心) 즉, 이성에 집착하는 마음이 절로 사라졌다. 또한 식욕, 색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 등 5욕락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이 미혹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참고로 9상관은 아래와 같다. 첫째, 사람의 시체가 퉁퉁 부어서 마치 곡식 담긴 자루처럼 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창상(脹想)이다. 둘째, 시체의 살갗과 살이 문드러지고 장기가 썩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괴상(壞想)이다. 셋째, 몸이 피고름으로 더러워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혈도상(血塗想)이다. 넷째, 시체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고 벌레가 슬어 살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농란상(膿爛想)이다. 다섯째, 시체가 바람을 맞고 비에 씻겨서 피고름이 엉켜 푸르게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청어상(靑瘀想)이다. 여섯째, 시체가 날짐승, 들짐승, 구더기에 파 먹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담상(噉想)이다. 일곱째, 시체의 살갗과 살이 없어져 머리뼈와 팔·다리뼈가 뒤엉켜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산상(散想)이다. 여덟째, 백골만 남은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골상(骨想)이다. 아홉째, 시체가 불에 타서 악취가 진동하고 끝내 매운재만 남아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소상(燒想)이다.
불심 도문 법사
임봉권 화백은 다음으로 자비관(慈悲觀) 관법수행을 가르쳐줬다. “모든 중생은 다 육도(六道) 윤회한다. 그러한즉 네가 만나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과거, 현재, 미래 삼세(三世)에 지중한 인연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서 도문 법사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자신이 만난 인연들을 떠올려봤다. 그러자 사람들은 물론이고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유색(有色), 무색(無色), 유상(有想), 무상(無想),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 등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이 머나먼 과거세부터 현세에 이르도록 부모자녀, 형제자매, 스승제자의 인연을 지어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육도 윤회하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이 가엽게 여겨졌고, 절로 진에심(嗔恚心) 즉, 성내는 마음이 사라졌다. 임봉권 화백은 다음으로 인연관(因緣觀) 관법수행을 가르쳐줬다. “사람은 왜 숨을 거두고 죽는 것이냐? 그 근본 이유는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느냐? 전생에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삼업(三業)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생에 왜 업을 지었느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집착하였던 것이냐? 사랑한 나머지 애욕(愛欲)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애욕을 가졌던 것이냐?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였던 것이냐? 대상과 접촉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대상과 접촉하였던 것이냐? 눈, 귀, 코, 혀, 몸, 생각 등 육입(六入)으로 접촉하였다. 그렇다면 이 육입은 어디서 온 것이냐? 정신과 육체로 구성된 명색(名色)에서 왔다. 그렇다면 명색(名色)은 어디서 온 것이냐? 의식에서 왔다. 그렇다면 의식은 어디에서 온 것이냐? 자기중심적인 행위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중심적인 행위는 어디에서 온 것이냐? 이치에 어두워서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명(無明)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무명이 사라지면 행(行)이 사라지고, 행이 사라지면 식(識)이 사라지고, 식이 사라지면 명색이 사라지고, 명색이 사라지면 육입이 사라지고, 육입이 사라지면 촉(觸)이 사라지고, 촉이 사라지면 수(受)가 사라지고, 수가 사라지면 취(取)가 사라지고, 취가 사라지면 유(有)가 사라지고, 유가 사라지면 생(生)이 사라지고, 생이 사라지면 노사(老死)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12연기(緣起)라고 한다. 12연기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을 번갈아서 관찰하도록 해라.” 도문 법사는 인연관 관법수행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 3세(三世)가 서로 연관돼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러자 어리석은 마음이 절로 사라졌다. 인연관 관법수행을 통해서 모든 존재가 시·공간적 연속성[시간적으로는 제행무상(諸行無常), 공간적으로는 제법무아(諸法無我)]에 의해 서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임봉권 화백은 다음으로 관불관(觀佛觀) 관법수행을 가르쳐줬다. “나라는 존재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등 오온(五蘊)이 모여서 이루어진 인연의 임시적인 형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잠시 나타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니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내가 없으니 내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미욱한 사람들은 나와 내 것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아견(我見)을 지니고 있다. 이 아견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모든 번뇌와 제악업장(諸惡業障)이 생기는 것이다. 아견을 끊으려면 부처님의 위의(威儀)와 공덕을 생각해야 한다. 머리에 높이 솟은 육계(肉髻), 이마의 백호(白毫), 둥글게 말린 머리카락인 나발(螺髮), 금색으로 빛나는 신체 등 부처님의 32상을 한 마음으로 관찰하면 모든 번뇌를 물리칠 수 있다.” 도문 법사는 부처님의 32상을 한 마음으로 관찰하였고, 그러자 아견이 눈 녹듯 사라져서 일체의 모든 번뇌를 씻을 수 있었다. 임봉권 화백은 다음으로 수식관(數息觀) 관법수행에 대해 가르쳐줬다. “정신을 집중해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관찰하면 산란하게 흐트러진 마음을 정지시킬 수 있다.” 도문 법사는 수식관 관법수행을 통해서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수식관 관법수행은 들숨과 날숨을 관찰함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덧없음을 깨닫는 데 목적이 있다. 산란한 마음을 정지하는 것을 사마타 수행이라고 한다. 사마타는 지(止), 적정(寂靜), 능멸(能滅)이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잡념이 생겨서 코끝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관찰하는 것을 놓치기 일쑤였다. 부정관, 자비관, 인연관, 관불관 관법수행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관법수행을 방해하는 마군(魔軍)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큰 방해요소는 잡념이다. 잡념이 생기면 그 잡념이 부정, 자비, 인연, 관불, 수식을 관찰하는 마음의 영토까지 침범했다. 졸음도 마찬가지였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잠에 들곤 했다. 상근기(上根機)인 도문 법사가 임봉권 화백으로부터 무려 8년 동안이나 5정심관 수행을 배운 것만 봐도 5정심관 수행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 집필자 : 유응오

관련자료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