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가는 데마다 부처님께서 온 세계에 가득함을 뵈옵지만 어떤 이는 그 마음 깨끗하지 않아 무량겁에 부처님을 보지 못하네. 어떤 이는 가는 데마다 부처님의 아름다운 음성 듣고 기뻐하나 어떤 이는 백천만겁 지나도록 마음이 부정해 듣지 못하네.
- 『화엄경』 「입법계품」
흔히 인생을 길로 비유한다. 예부터 불가에서는 길[道]은 ‘깨달음’ 내지는 ‘깨달음의 여정’을 의미했다. 『화엄경』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 만나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구도기(求道記)이다. 무엇보다도 『화엄경』 「입법계품」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귀하고 천하고를 떠나서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53선지식의 직업을 살펴보면 실로 다채롭다. 도량신·주야신·천(天) 등 신(神)들이 있는가 하면, 바라문·비구·비구니 등 수행자들도 있고, 왕·부자·현자 등 사회 지도층들도 있다. 심지어 선지식에는 뱃사공·유녀(遊女) 등 사회에서 천대받는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이는 진리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구도의 길에서는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바시라 뱃사공과 바수밀다 여인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게 보살도(菩薩道)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바수밀다 여인은 선재동자가 찾아왔을 때,
“어떤 중생이 애욕에 얽매여 내게 오면, 나는 그에게 법을 말해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집착 없는 경계의 삼매를 얻게 한다. 어떤 중생이고 잠깐만 나를 보아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환희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고 잠깐만 나와 이야기해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걸림 없는 음성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고 잠깐만 내 손목을 잡아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모든 부처 세계에 두루 가는 삼매를 얻는다.”
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분별없이 대하는 바수밀다 여인이기에 중생에게 삼매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바수밀다 여인의 해탈 법문은 중생세계에 들어가지 않고는 중생을 교화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수밀다 여인은 중생의 욕망에 따라 몸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는 관세음보살이 온갖 중생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청정한 마음을 지닌 바수밀다 여인이기에 오탁악세(五濁惡世)의 법으로도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선재동자가 찾아왔을 때 바시라 뱃사공은,
“나는 소용돌이치는 곳과 물이 얕고 깊은 곳, 파도가 멀고 가까운 것, 물빛이 좋고 나쁜 것을 잘 안다. 해와 달과 별이 운행하는 도수와 밤과 낮과 새벽 그 시각에 따라 조수가 늦고 빠름을 잘 안다. 배의 강하고 연함과 기관의 빡빡하고 연함, 물의 많고 적음, 바람의 순행과 역행에 대해 잘 안다. 이와 같이 안전하고 위태로운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갈 만하면 가고 가기 어려우면 가지 않는다. 나는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해 이롭게 한다.”
고 말했다. 비유컨대 바수밀다 여인이 자비의 화현(化現)이라면, 바시라 뱃사공은 지혜의 화현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와 자비는 자전거의 두 바퀴[法輪]와 같다. 지혜와 자비라는 두 바퀴가 맞물려서 나아갈 때 세상의 어두운 곳을 두루 비출 수 있다. 인생의 길과 수행의 길은 다르지 않다. 이 세상에 수많은 길이 있고, 그 길에서 선지식을 만날 수 있듯이 이 세상에는 수많은 수행법이 있고, 바른 수행법을 인도하는 선지식이 있다.
용성 진종(龍城震鍾, 1864-1940) 조사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사람과 삼매에 든 사람이 다르지 않다고 가르쳤다. 근기가 약한 사람들이 염불과 주력 수행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 수행을 하는 납자들도 염불과 주력 수행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용성 조사의 가르침이다. 화두 수행이 최상이고 다른 수행은 열등하다는 납자들의 편견을 타파하기 위해서 용성 조사는 관음의 묘한 힘[觀音妙智力]이 세상의 고통과 고난을 능히 구한다[能救世間苦]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진언을 외는 주력 수행이나 불보살님을 부르는 염불 수행도 선 수행과 마찬가지로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데 최종적인 목적이 있다. 또한, 외는 진언이나 부르는 불보살님을 화두로 여기고 수행한다면 참선수행과 마찬가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용성 조사가 아미타 공안을 참구하여 극락세계에 가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위없는 도를 성취하라고 역설한 이유도 아미타불이 바로 공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미타불이 무엇인고?’라고 의심하면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님을 알 수 있고, 견성성불과 극락왕생이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경주 천룡사지 탑전에서 기도 수행 중인 불심 도문 법사
불심 도문 법사는 용성 조사의 법맥 계승자답게 제방의 선지식들로부터 화두를 받아 깨달음을 인가받음으로써 한국불교의 전통수행법인 간화선을 참구한 것은 물론이고 종조부인 임봉권 화백으로부터 남방불교의 5정심관 관법수행을 배웠으며, 만암 종헌(曼庵宗憲, 1876-1956) 스님으로부터 37보리분법을 익혔다. 또한 염불수행을 통해 삼매현전(三昧現前)을, 간경수행을 통해 혜안통투(慧眼通透)를, 주력수행을 통해 업장소멸(業障消滅)을, 불사수행을 통해 복덕구족(福德具足)을 몸소 체험했으니, 도문 법사의 수행 이력은 시냇물들이 흘러서 강으로 모이고, 다시 강물들이 흘러서 바다로 모이는 모습과 같다.
도문 법사는 많은 수행법을 일일이 체득함으로써 파도가 치는 바닷물이나 잔잔한 바닷물이나 결국은 하나의 짠맛임을 몸소 깨달았으니, 이러한 원융무애(圓融無碍)한 도문 법사의 깨달음은 “고요할 때에도, 천파만파가 도도하게 물결칠 때에도 바닷물은 짠맛이 나며, 흐릴 때도, 청정할 때도 바닷물은 짠맛이 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각(覺)의 성품은 성인에게 있어도 더하지 않고, 범부에게 있어도 덜하지 않으며, 번뇌 속에 있어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禪定) 속에 있어도 고요하지 않으니 이것이 본연한 각의 성품[覺性]”이라는 용성 조사가 설하신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가르침에 그대로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