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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의 길을 걷다

조계종 포교원 설립을 주도함으로써 종단의 포교 기틀을 다진 주인공이 바로 불심 도문 법사이다. 도문 법사는 1970년 조계종감찰원 감찰국장에 임명돼 종단 사정기관의 일원으로서 종단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일조했다. 1976년 7월 조계종총무원 교무부장에 임명되는 한편 대한불교조계종 종회의원도 겸임하였다. 당시 교무부장 소임을 맡은 이유는 종단으로부터 중앙승가대 설립, 불교TV 방송국 설립, 불교 종합병원 건립 등 불교계의 오랜 숙원사업을 실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무부장 부임 후 부하 직원들에게는 조계종에서 속퇴하거나 입적한 승려의 승적부를 정리하라고 지시했고, 상부의 선배 스님들에게는 조계종단이 단일계단을 설립해 사미, 사미니계를 주는 제도를 만들자고 건의했다.
초청 법회시 참례 수법제자들 인사
종회의원을 겸임한 뒤 양주 봉선사를 찾아가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원장 운허 스님을 친견하고 양주군 진접면에 소재한 봉선사 사립 광동중·고등학교 건물을 승가대학으로 쓰고 광동중·고등학교는 도회지로 이전해 건립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건의했고, 운허 스님도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이러한 청사진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강 이북에는 대학설립인가를 허락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백지화되었다. 도문 법사는 온 겨레 전 인류의 포교를 위해서는 포교원이 필요하고, 승려 교육의 전문성 제고와 현대화를 위해서는 교육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했던 까닭에 포교원 설립법을 제정해 종회에서 가결할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도문 법사의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포교원 설립법의 제정이 종회에서 가결됐다. 비록 교무부장으로 재임할 당시 중앙승가대 설립, 불교TV 방송국 설립, 불교 종합병원 건립 등 불교계 숙원 사업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쌍용이 승가대학 건립기금 1억 2,000만원을 후원할 수 있게 설득하는 등 그 기틀을 마련하였다. 도문 법사는 불교텔레비전 방송국(BTN)이 서울 방배동에 사옥을 구입하였을 때 1억 원을 사옥이전 후원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는 영상포교에 일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텔레비전의 사옥을 옮긴 뒤 불교텔레비전 회장 성우 스님이 도문 법사를 초청했다. 만난 자리에서 성우 스님은 사옥을 마련하는 과정에 많은 부채를 지게 된 사실을 털어놨다. 성우 스님의 얘기를 듣고 보니 불교텔레비전의 사정이 딱하게 느껴졌다. 하여 도문 법사는, 불교계 모든 종단의 100명의 고승대덕을 선정하여 그 고승대덕들에게 방송포교의 명목으로 1억 원 내지는 2억 원의 시주금을 받으라고 제안했다. 이 말을 듣고서 성우 스님도 매우 기뻐했다. 몇 달 뒤 도문 법사는 성우 스님에게 1억 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성우 스님에게 물어보니 모인 후원금이 많지 않았다. 도문 법사는 서울에 사는 신도에게 1억 원을 후원할 것을 부탁했고, 신도는 며칠 뒤 1억 원을 불교텔레비전에 후원했다. 도문 법사의 포교 업적 중 하나는 설법을 통해 수많은 불자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했다는 것이다. 용성 조사의 유훈 10사목 중 여덟 번째는 삼귀의의 오계 수계 법회를 통하여 수계자가 1백만 명이 넘도록 할 것이며, 이 수계자에게 아들 때나 손자 때나 증손자 때에 한 아들이나 한 손자나 한 증손자를 잘 낳고 기르고 가르쳐서 부처님 전에 바쳐 출가 봉공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용성 조사는 1911년부터 1940년까지 30여 년 동안 3만여 명에게 삼귀의 오계를 수계하였고, 그 수법 제자인 동헌 조사도 1941년부터 1960년까지 20여 년 동안 3,000여 명에게 수계하였다. 도문 법사도 이른 곳마다 청신사, 청신녀와 청소년 불자 학생들에게 삼귀의 오계를 수계함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였다. 도문 법사는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법석에 올라 설법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마다 많은 불자가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 들었다. 이는 도문 법사의 설법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대기설법이면서도 불법의 요체만을 담은 가르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문 법사는 전국의 134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영가천도 방생법회를 봉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포교의 업적을 쌓은 공로로 2009년 ‘제21회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하였다. 도문 법사만큼 전법교화에 매진한 스님도 없으니 당연한 수상자 선정이었다. 용성 조사의 유훈 10사목 중 아홉 번째는 온 겨레 전 인류 만중생과 성불인연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이 유훈 실현을 위하여 은사인 동헌 조사를 조실로 모시고 1961년 음력 6월 14일 금정산 범어사에서 수법을 한 뒤 크고 작은 소임을 맡으면서 서울, 부산,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일원의 사부대중들과 성불 인연을 지었다. 용성 조사의 유훈 10사목의 마지막은 안으로 수행은 비묘엄밀하게 하고, 교화는 중생의 근기를 따라서 하되 악한 이나 선한 이를 가리지 말고 인연 따라 승려를 만들고 잘난 이나 못난이를 가리지 말고 인연 따라 신도를 삼아 찬양도 받으면서 비방도 함께 받아 모두 다 수용해서 『묘법연화경』 제20 「상불경보살품」의 상불경보살의 수행을 본받아 성불인연을 지어 나가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선한 이와 악한 이, 잘난 이와 못난이를 가리지 않고 인연을 따라서 승려를 만들고 신도를 삼았으니 자연히 찬양도 받으면서 비방도 함께 받았다. 그 과정에서 상불경보살의 수행을 저절로 본받게 되었다. 일례로 중국 하남성 당서기는 만찬 시 도문 법사가 공양하기 전 음식을 미리 덜어놓음으로써 음식을 남기지 않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악문해(岳文海) 당서기는 80만 신정시 시민에게, 한국의 도문 법사의 식사법을 따라 하라고 강조했다. 상불경보살은 부처님이 과거세에 인행(忍行)을 닦을 때의 이름으로 그 의미는 ‘무시하거나 천시하지 않는 사람’이다.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에 따르면 상불경보살은 위음왕불 상법시대 말경에 나타나, 멀리 지나가는 사람을 보아도 곧바로 쫓아가서 절을 했다고 한다. 용성 조사가 상불경보살의 수행을 귀감으로 삼으라고 한 이유는 교만의 악덕을 버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만나는 중생마다 부처님을 대하듯 극진하게 한다면 세상은 절로 사바예토에서 서방정토로 바뀔 것이다. 도문 법사야말로 마음으로는 모든 중생을 부처님처럼 받들어 존경하고, 몸으로는 부처님의 행을 실천하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렸던 상불경보살의 현현이라고 할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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