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 조사의 유훈 10사목 중 여섯 번째는 호국 호법 도량 남산 중 고위산 천룡사지를 잘 가꾸어 수도발원 교화도량의 언덕으로 삼고, 시아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신 네팔 가비라(Kapila) 룸비니원부터 성도하신 보드가야(Bodhgayà) 보리수원과 최초 설법 성지인 바라나시(Varanas) 녹야원과 장구주석 성지인 기원정사와 입멸하신 구시나가라(Kusinagara) 사라쌍수원까지 불교 불적 5대 성지를 잘 가꾸라는 것이었다. 불심 도문 법사의 입장에서는 고위산 천룡사지를 복원했으니, 부처님의 탄생, 성도, 설법, 주석, 입명 성지를 가꾸는 임무가 남아 있었다.
인도 보드가야 한국사원 건립 의논차 예방
도문 법사는 1992년 네팔과 인도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성지순례의 목적은 부처님의 성지를 가꾸기 위한 구상을 위해서였다. 부처님의 성지를 가꾸는 일의 단초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11월 22일부터 12월 3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제5차 세계불교도대회가 개최됐다. 이 대회에 한국 불교계 대표로서 동산 혜일 스님, 청담 스님이 참석했다. 당시 동산 스님이 사제인 동헌 조사에게도 대회에 함께 참석할 것을 권유했으나, 동헌 조사와 도문 법사는 이에 따를 수 없었다. 당시 도문 법사가 참선에 용맹정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1967년 미얀마 출신 우탄트(U Thant) 장관이 UN사무총장으로 취임한 뒤 부처님의 탄생 성지인 네팔 룸비니원을 방문하였다. 당시 우탄트 사무총장은 네팔의 마헨드라(Mahendra) 국왕을 만났다. 마헨드라 국왕은 힌두교 신자였다. 당시 네팔 국민의 80%가 힌두교도였다. UN본부로 돌아온 우탄트 사무총장은 UN 산하에 룸비니개발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우탄트 사무총장은 네팔 정부가 세계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룸비니원 국제사원구역을 임차한 뒤 그 임차비로 룸비니원 인근 수백호의 농가를 철거하고 정비하여 국제사원 구역을 형성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을 네팔 정부도 수용했다. 따라서 세계 불교계의 기부금을 받아서 남방불교권의 사원구역과 북방불교권의 사원구역이 정비될 수 있었다. 한국불교계도 청담 스님이 주축이 되어 모금한 기부금을 UN 산하 룸비니개발위원회에 송금하였다. 당시 청담 스님은 경주 분황사에 방문해 동헌 조사에게도 기부금을 요청하였다. 이 기부금은 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 최사달 회장과 임태순 초대부회장이 모금운동을 전개해서 마련하였다.
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 제1차 부지 임차 체결
도문 법사는 1994년 11월 22일부터 11월 29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19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총회 및 세계불교청년우의회 제10차 총회에 초청돼 설법하였다. 애초 법사는 이기영 법사였으나 이기영 법사가 도문 법사에게 법석을 양보했던 것이다. 법문이 끝나자 청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법문을 마친 뒤 세계불교도우의회 부회장인 박동기 동국대 교수가 오더니 룸비니원 국제사원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지금 룸비니원 국제사원 내 국제도서관을 건립하는데 일본불교계가 기금을 내고 있습니다. 제가 룸비니원 국제사원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삼부토건과 인연이 깊은데 스님께서 한국사원 건립을 주도하면 어떻겠습니까?”
박동기 교수의 제안은 오래 전부터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이듬해(1995년) 네팔 룸비니원 국제사원 구역 내 한국사원 대성석가사 제1요사인 대성무우수당, 제2요사인 대성마야부인당, 대웅보전 건립불사를 시작하였다. 1995년 2월 27일 룸비니 국제사원 구역 내 한국사원 부지임차조인이 봉행되었다. 당시 도문 법사, 유훈실현후원회 한명옥 회장과 룸비니 대성석가사 건립 총 책임자인 동국대학교 부설 사찰조경연구소 소장 홍광표 박사가 대표로 참석했다. 이 계약을 통해 불타 탄생성지 룸비니원 국제사원 구역 내 한국사원인 대성석가사가 부지 7,744평을 99년간 임차조인을 할 수 있었다. 도문 법사는 상좌 겸 제자인 각현 스님을 대성석가사의 주지로 발령하였다. 이어서 1997년 8월 20일 네팔 카트만두 솔티 호텔 회의실에서 룸비니개발위원회 측과 대성석가사 측이 제2차 부지임차 3,872평(12,800㎡) 조인을 하여 총 11,616평, 38,382㎡ 도량 위에 대웅보전, 3층 총 1,935평과 제1요사 대성 무우수당, 3층 총 783평과 제2요사 대성 마야부인당, 3층 총1,162평을 건립하였다.
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 기원불공
대성석가사를 건립하는 과정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루는 대성석가사 주지인 각현 스님이 강도를 만났다. 한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든 강도가 말했다.
“룸비니원 국제사원에 법력이 높은 태국 스님이 있었다. 얼마나 법력이 높은가 시험에 보려고 칼로 찔렀더니 피를 흘리고 쓰러져서 죽더라. 그래서 냇가에 던져 버렸다. 일본의 고승이 법력이 높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칼로 배를 찔렀더니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더라. 한국의 스님은 얼마나 법력이 높은지 한 번 시험해보자.”
강도의 말을 듣고서 각현 스님은 미리 준비해둔 달러 뭉치를 건넸다.
“내 은사 스님이 도인이어서 미리 강도가 올 줄 알았다. 은사 스님이 말하길 강도가 오거든 이 달러 뭉치를 주라고 하더라. 집 한 채 값이다.”
각현 스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도는 두툼한 달러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각현 스님에게 절을 올린 뒤 조용히 물러났다.
도문 법사가 들은 바로는 네팔 정부는 룸비니원에 사는 주민들을 정당한 보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쫓아냈다고 한다. 보금자리를 잃고 악만 남은 주민들이 강도가 되는 것이었다. 도문 법사는 대성석가사를 건립할 때에도 룸비니원 인근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벽돌을 쌓는다든지 시멘트를 바른다든지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민들에게 맡겼고 그 노동에 대한 품삯은 넉넉히 지급했던 것이다. 또한, 정기적으로 룸비니원 인근의 600호에 모두 쌀 한 포대씩을 전달하기도 했다. 쌀 포대를 전달한 뒤 눈물을 흘리면서 주민들에게 말했다.
“주민 여러분, 나는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룸비니동산을 가꾸려고 왔습니다. 룸비니동산이 아름답게 가꿔지면 주민 여러분의 삶도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마음을 지니고 온 스님들을 절대로 해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모두 전생에 나의 스승이고, 나의 제자이고, 나의 부모이고, 나의 형제입니다. 이러한 지중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렇게 우리는 만난 것입니다.”
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 공사 현장
도문 법사는 각현 스님에게 대성석가사에 들어온 시주금은 모두 주민들을 위해 쓰라고 지시했다. 하루는 유럽에 사는 부호가 대성석가사에 큰 돈을 시주하기도 했다. 이유인즉슨 아들이 대성석가사에서 며칠 수행하고 돌아간 뒤 평소 앓고 있던 병이 완치됐다는 것이다. 도문 법사는 불사도, 전법교화도 모두 자비심으로 해야 물 흐르듯 막힘없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