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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고도의 불교성지를 가꾸다

용성 조사의 유훈 10사목의 다섯 번째는 신라고도 성지 남산인 금오산과 진산인 낭산을 잘 가꾸라는 것이었다. 불심 도문 법사가 1972년 경주 남산에 소재한 칠불암을 매입해 조계종 사찰로서 일신한 것도 용성 조사 유훈 실현의 일환이었다. 같은 해, 경주시 배반동에 소재한 중생사에서 동헌 조사를 조실로 모시고 낭산 서편에 소재한 신라 제30대 문무대왕 다비지 능지탑인 연화탑 복원을 발원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능지탑지 주변이 전답으로 전락되어 있는 것을 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의 후원을 받아 1972년부터 1982년까지 11년간 총 33필지 8,909평(29,399㎡)을 매입한 뒤 도량으로 일신하였다.
경주 낭산 중생사
동헌 조사와 도문 법사, 황수영 전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홍사준 전 국립경주박물관 및 국립부여박물관 관장이 연화탑 기단부 복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3년간 논의했다. 그 결과 능지탑 복원에 앞서 준비작업을 철저히 하기로 했다. 우선, 능지탑 주변에 있는 모든 탑 자재를 한군데에 모은 뒤 능지탑 전체 모형도를 만들었다. 다음으로 홍사준 관장이 1년 동안 경주 낭산 중생사에서 동헌 조사, 도문 법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능지탑 기단부를 비롯해 전체 탑 모형도를 조성하는 자문을 하였다. 이어서 능지탑 주변 부지가 모두 민간인의 소유이므로 3년의 연구기간 내에 유훈실현후원회에서 매입해 도량으로 꾸며서 발굴 조사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이처럼 동헌 조사와 도문 법사, 최사달 회장, 임태순 초대 부회장, 원일화 김금화 2대 회장, 정혜월 백옥순 3대 회장 등 유훈실현후원회의 후원으로 능지탑 복원의 기초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황수영, 홍사준, 신영훈, 김동현 등 문화재 전문가들이 주축이 되어 복원 불사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이 능지탑 기단부 복원을 시작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런데 어렵게 복원된 능지탑 기단부가 홍수로 말미암아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경주 낭산 능지탑지
동헌 조사와 도문 법사, 유훈실현후원회 간부들, 황수영, 홍사준, 신영훈 등 문화재 전문가가 경주시 당국과 수차례에 걸쳐 회의를 통해 도문 법사의 명의로 돼 있는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에 소재한 신라 제27대 선덕대왕릉 아래 사천왕사지를 국가에 기증할 경우 경주시가 책임지고 사천왕사지 근처의 민가까지 구입하여 정비하기로 합의했다. 경주시 당국과의 약속대로 낭산 사천왕사지 매입 부지를 국가에 기증함에 따라 능지탑 기단부가 다시 복원될 수 있었다. 이후 낭산 중생사 서편 요사 뒤에 소재한 지장당 마애지장보살 성상이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665호로 지정되었다. 이어서 화엄초조인 의상(義湘) 스님의 출가 본산인 낭산 황복사를 중창하는 데 팔을 걷고 나섰다. 폐허가 된 황복사지에는 신라 3층 석탑(국보 제37호)만 남아 있었다. 개인 사유지 총 3필지 523평을 매입하여 도량으로 일신하였던 것이다.
경주 낭산 중생사 마애지장보살
고려의 일연(一然) 스님이 쓴 『삼국유사』 「천룡사」편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에 당나라 사신 악붕구(樂鵬龜)가, 남산 중 고위산(高位山) 천룡사가 파괴되면 곧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통일신라 말기 천룡사가 파괴되더니 실제로 통일신라가 망하였다. 고려 초, 최치원(崔致遠)의 고손자인 정광 최제안(崔齊顔) 공이 고려를 위하여 천룡사를 중창하였는데 고려 말에 다시 천룡사가 파괴되고 나서 고려도 망하였다. 조선왕조 초기 무학 대사가 제자를 보내어 조선왕조를 위하여 천룡사 삼창을 하였다. 조선 말기 천룡사가 파괴되고 나서 조선왕조도 망하였다. 용성 조사의 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도문 법사는 1972년부터 1982년까지 11년 동안 민간인의 소유였던 천룡사지의 전, 답, 임야, 농가와 민가의 대지 등 50필지 총 59,093평을 매입한 뒤 도량으로 일신하였다. 이후 1993년 12월 23일 천룡사지에 복원된 신라 3층 석탑이 황수영 박사의 노력으로 보물 제1188호로 지정되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996년 12월 천룡사 법당 주위 발굴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조사비용은 유훈실현후원회가 후원했다. 천룡사지 발굴조사보고서의 발간 경비는 유훈실현후원회의 대광화 서태식 고문이 후원했다.
남산 중 고위산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 남산 중 고위산 천룡사지 발굴 조사
『삼국유사』에는 ‘세상에 전하기로는 의상은 부처님의 화신이라 한다.’고 쓰여 있고, 의상 대사가 지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는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이라는 구절이 있다. ‘허공 가득히 보배의 비가 내려서 중생에게 이롭게 하니 중생들은 그릇에 따라서 이익을 얻는다.’라는 의미이다. 도문 법사가 의상 대사의 출가 본산인 낭산 황복사를 중창하는 등 신라고도의 불교성지를 가꾼 업적이야말로 중생에게 이익을 얻게 하는 이타행이라고 할 수 있다. 도문 법사의 원력과 실천으로 신라고도가 장엄됨에 따라 산천초목을 적셔주는 빗물처럼 대중은 근기(根機)에 따라서 법수(法水)를 받아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주 낭산 황복사지 삼층석탑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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