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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불법(佛法)의 꽃씨를 뿌리다

1962년 3월경 불심 도문 법사는 동헌 완규 조사를 조실로 모시고 강원도 양양군에 소재한 재단법인 낙산보육원장에 임명돼 천진불(天眞佛)인 어린이들을 돌보며 불성(佛性)의 씨앗이 싹 트게 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도문 법사는 양양 지역의 어촌을 교화하는 데도 주력했다. 강원도 양양군은 6.25 전쟁 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땅이었다. 6·25전쟁이 휴전된 뒤에는 대한민국의 땅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에 비해서 고아들이 많았다. 도문 법사가 낙산보육원장에 임명된 데는 동암 성수 스님의 역할이 컸다. 성수 스님은 용성 진종 조사의 법제자로서 동헌 조사와는 사형사제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성수 스님은 1921년 양주 봉선사에서 인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이듬해 서울 대각사에서 용성 조사의 법제자가 되었다. 통합종단 출범 이후 성수 스님은 양양 낙산사 주지로 부임해 지역포교에 매진하고 있었다. 도문 법사가 은사인 동헌 조사를 모시고 낙산사에 갔을 때 성수 스님이 낙산보육원의 문제에 대해 털어놨다. 얘기인즉슨, 낙산사의 한 스님이 보육원장을 맡았는데 재무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당시 낙산보육원의 원아들은 100여 명에 달했다. 나중에는 낙산보육원 문제가 종단 문제로까지 커졌고, 당시 조계종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청담(靑潭, 1902-1971) 스님, 동산(東山, 1890-1965) 스님, 능가(能嘉, 1923-2020) 스님 등이 동헌 조사에게 도문 법사라면 능히 낙산보육원의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고, 동헌 조사의 지시를 받고 낙산보육원장에 임명되었다. 재단법인 낙산보육원은 정윤옥 양양부인회 회장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집 없는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설립한 것이었다. 당시 성수 스님을 따르는 많은 신도 중에 박경원 강원도지사도 있었다. 낙산보육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박경원 도지사의 행정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성수 스님은 박경원 도지사의 아내인 박진숙 여사에게 재단법인 낙산보육원 2대 이사장을 맡아달라고 했고, 박진숙 여사도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박진숙 여사가 재단법인 낙산보육원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며칠 뒤 박경원 도지사가 낙산보육원을 찾았다. 그런데 박경원 도지사가 도문 법사를 보자마자 땅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올린 뒤 이렇게 말했다. “스님, 저는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 출가했다가 속퇴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법안(法顔)이 제 은사스님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리고 도문 법사의 목소리를 듣더니 박경원 도지사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스님의 몸짓과 목소리도 제 은사스님과 똑같습니다. 제 은사스님은 입적해 뵐 수 없으니 앞으로는 스님을 은사스님처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실제로 박경원 도지사는 도문 법사가 부탁하기 전에 먼저 낙산보육원의 문제를 알아보고 해결해줬다. 게다가 도문 법사의 어머니 최사달 회장이 낙산보육원 후원회장을 맡아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서 낙산보육원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보육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1962년 낙산사 홍련암에서 동헌 조사, 성수 스님, 도원 스님을 모시고 용성 조사의 유훈 실현을 위하여 제1차 기원을 하였다. 이 무렵 강원도 양양군, 속초시, 고성군, 인제군 등지의 중·고등학생과 청신사, 청신녀 등에게 3귀의 5계 수계를 봉행하였다.
삼보귀의 오계 수계
강원도에 주석하는 동안 오대산 월정사 복원불사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이는 입적 전 한암 중원(漢巖重遠, 1876-1951) 스님이 남긴 유훈에 따른 것이다. 어린 도문 법사가 예견한 대로 6·25전쟁이 나자 한암 스님은 수법제자인 탄허 택성(吞虛宅成, 1913-1983) 스님을 불러서, 도문 법사를 찾아서 월정사 적광전 복원불사 시에 증명법사 겸 화주법사의 역할을 맡기라고 유훈을 남겼던 것이다. 당시 월정사는 여러 법적 규제 때문에 복원불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도문 법사는 박경원 도지사를 월정사 방장굴로 초대했다. 박경원 강원도지사가 먼저 도와드릴 일이 없냐고 물었다. “도지사님은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승려 출신이 아닙니까?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제행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몸이고 마음입니다. 몸이 있어서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사고(四苦)의 이치를 알 수 있는 것이고, 마음이 있어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덧없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경』을 통해 설하시길 ‘열반에는 머물 곳이 없다. 다만 번뇌를 끊을 뿐이다. 열반의 경지는 영원하고 즐거우며, 진정한 나이고, 청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애욕의 즐거움이 아니라 적멸의 즐거움이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하고 즐거우며 진정한 나이고 청정한 것인 열반을 일깨워줄 곳이 이 세상에 부처님의 도량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니 도지사님이 나서서 월정사의 복원 불사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행정규제를 해결해주십시오. 무엇보다도 3,000㎡를 벌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세요.” 도문 법사의 말을 듣고서 박경원 도지사는 팔을 걷고 나서서 월정사 복원불사의 난맥상을 해결해주었다. 도문 법사는 1963년 8월경 동헌 조사를 조실로 모시고 삼척 태백산 흥복사 주지로 임명돼 광산지역의 광부 교화에 노력하였다. 이듬해 8월에는 동헌 조사를 조실로 모시고 강릉 오대산 관음사 주지로 임명돼 관음사신도회, 관음사청년회, 관음사 중·고등학생회를 설립해 활성화하는 한편, 강릉 금천유치원 원장을 겸직하며 어린이 포교에 진력했다. 당시 강원도 강릉시, 명주군, 인제군, 홍천군 중·고등학교 불교학생회 학생들과 청신사, 청신녀 등에게 3귀의 5계 수계법회를 봉행하였다. 그리고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에서 동헌 조사를 모시고 오대산 월정사 조실 겸 주지 탄허 스님, 월정사 총무 희찬 스님, 상원사 암주 희섭 스님 등이 증명하는 가운데 용성 조사 유훈 성취 제2차 기원을 하였다. 1965년 5월경 평창 연화유치원을 설립한 뒤 초대원장을 맡았다. 연화유치원의 초대 이사장은 월정사 조실 겸 주지인 탄허 스님이 맡아주었다. 당시 극락사 주지를 겸직하던 도문 법사는 극락사 중·고등학생회를 조직해 청소년 포교에 노력하는 한편 농촌 교화에도 힘썼다. 당시 강원도 평창군, 정선군, 영월군, 충청북도 제천군 중·고등학교 불교학생회 학생들과 청신사, 청신녀 등에게 3귀의 5계 수계법회를 봉행하였다. 이처럼 이르는 곳마다 남다른 원력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재가자들을 불교에 귀의하게 인도하니 강원도의 전체 포교사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박경원 도지사에게 강원도에는 19개의 시·군이 있으나 이 시·군에 별도의 포교소가 없으니 19개 시장·군수의 관사를 포교소로 쓰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박경원 도지사도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강원도 전역의 시장·군수의 관사를 자유롭게 드나들다 보니 종단을 막론하고 많은 스님이 불사나 포교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도문 법사는 강원도 각 지역 불교계의 의견을 19개 시장·군수에게 전달함으로써 지역 불교계의 난제를 풀어갈 수 있게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또한, 강릉 관음사 주지 때는 금천유치원장을, 극락사 주지 때는 연화유치원장을 겸직했는데 사찰 산하 유치원이 원아들이 많이 모집되고 원아교육도 모범이 되어서 당시 조계종총무원의 원로스님들이 그 사례를 본받아 전국의 주요 본·말사 산하에 유치원을 설립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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