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 조사가 번역한 경전들과 저술한 어록들을 수집하고 재출간함으로써 후대에 그 가르침을 전한 것도 불심 도문 법사의 크나큰 업적이다. 용성 조사의 유훈 10사목 중 7번째는 불타의 경전과 조사의 어록을 1백만 권이 넘도록 발간, 유포하라는 것이었다. 도문 법사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용성 조사가 남긴 저서부터 재출간해야 했다.
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 초대회장 최사달이 염불화(念佛華) 박송화(朴松華) 시모(媤母)의 유언에 따라 용성 조사가 번역한 불교경전 20여 종과 저술한 어록 20여 종 등 총 60여 권을 재단법인 대각회 초대 이사장 동헌 조사에게 증정하였다. 이는 불교계 문서포교의 한 획을 긋는 궤적이었다. 용성 조사는 살아생전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등 주요 불교경전을 번역하고 어록들을 저술했다. 용성 조사는 문서포교의 원력이 지대했던 터라 옥고를 치르는 동안에도 경전 번역과 어록 저술을 멈추지 않았다. 용성 조사는 책을 발간할 때마다 도문 법사의 증조모에게 우편으로 보내왔다. 나중에 용성 조사가 찾아오면 증조부모는 책값을 대신해서 용성 조사의 활동비와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했다. 이런 인연으로 인해 도문 법사의 속가에는 용성 조사가 번역하고 저술한 서적들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대대로 용성 조사의 서적들을 물려줬던 것이다.
용성 진종 조사가 번역‧간행한 서적
당시 용성 조사의 제자인 동헌 완규 조사, 동암 성수 스님, 고암 상언 스님, 자운 성우 스님조차도 용성 조사의 서적들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동헌 조사는 대각회가 재단법인으로 등록되고 오래지 않아서 도문 법사를 불렀다.
“법사님, 대각회가 재단법인으로 등록되었으나 용성 조사가 번역하고 저술한 서적들이 없으니, 이는 껍데기만 있고 정작 알맹이는 없는 꼴입니다. 듣자하니 법사님의 어머니께서 용성 조사의 책들을 갖고 있다고 하니 대각회에 기증할 의사가 있는지 알아보세요.”
하여 도문 법사는 어머니인 최사달 회장에게 연락해 이렇게 말했다.
“보살님, 용성 조사의 서적들은 용성 조사의 진신사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귀중한 것입니다. 팔만대장경 경판을 해인사에서 관리하듯이, 용성 조사의 서적들은 대각회에서 관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사달 회장은 말뜻을 금세 알아들었다. 그 이튿날 최사달 회장은 용성 조사의 서적들을 차에 싣고 와서 동헌 조사와 도문 법사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도문 법사는 지속적으로 용성 조사의 서적들을 재발간해 불자들에게 배포해왔다. 1982년에는 『불일』 제1호로부터 제14호까지, 1983년에는 『연화』 제15호부터 제34호까지, 1984년에는 『연화』 제35호부터 제51호까지, 1985년에는 연화 제53호부터 제73호까지, 1986년에는 연화 제74호로부터 제91호까지, 1987년에는 『연화』 제92호부터 『불심』 제120호까지, 1988년에는 『불심』 제121호부터 제123호까지 발간했다.
1991년에는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용성조사전집 5백 질을 발간해 무상으로 배포하였다. 용성조사전집은 조사가 번역한 불경 20여 종과 저술한 60여 권의 어록 등을 총망라한 것으로 17,236쪽, 18권을 1질로 한 것이다. 또한, 도문 법사는 출가 50주년과 회갑을 맞아 『대각』 제177호인 『불타조사원류』, 『불교오대수행(佛敎五大修行)』 3만 권을 발간해 대중에게 무상으로 배포했다.
1997년에는 최사달 회장의 사망 1주기를 기념해 용성 조사의 어록인 『수심정로』를 발간해 인연이 닿는 대중에게 무상으로 배포했다. 1998년에는 용성 조사가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광복회로부터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조사의 대표적인 어록인 『각해일륜』 1만여 권을 배포하였다.
도문 법사가 불서들을 지속적으로 발간함에 따라 용성 조사가 남긴 불교의 요체를 담은 가르침들은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다. 용성 조사는 20여 종의 불경을 번역하고 10여 종의 어록을 저술하였음은 물론이고 10만여 권을 발간 유포하였다. 문서포교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용성 조사이기에 1백만 권이 넘도록 유포하라는 유훈을 남겼던 것이다. 도문 법사는 1961년도부터 지금까지 60여 년 동안 불교서적과 용성 조사 탄신 제130회를 맞이해 개최된 음악발표회의 노래집 등 150만 권의 불경을 출간해 무상으로 배포함으로써 용성 조사의 유훈을 실현하였던 것이다.
용성 진종 조사 총서
한편 도문 법사는 1998년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광복회로부터 3월의 독립운동가로 용성 조사가 선정된 것을 기념해 다채로운 추모 사업을 전개했다. 이 해는 용성 조사의 오도(悟道) 121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했다. 3월의 독립운동가가 용성 조사로 선정되도록 뒤에서 힘써준 것은 유흥수 광복회 사무총장이었다. 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 한명옥 회장을 비롯해 고문진, 회장단이 구심점이 되어 3·1독립운동의 진원지인 서울 종로 대각사, 서울 종로 원각사지 탑골공원, 백제불교초전법륜성지 서울 서초동 우면산 대성사, 호국 호법도량 신라고도 경주 남산인 금오산 중 고위산 천룡사지, 천룡사 부산포교원, 신라불교초전법륜성지 구미시 도개면 도개2리 아도모례원, 서울 서초동 대각사상연구원, 천안 독립기념관 등에서 용성 조사를 찬탄하는 행사가 봉행되었다.
유훈실현후원회를 비롯한 신도들은 용성 조사의 출가성지인 남원 지리산 교룡산성 덕밀암지 순례를 시작으로 견도성지(見道聖地), 수도성지(修道聖地), 무학도성지(無學道聖地), 오도성지(悟道聖地), 교화성지(敎化聖地)를 차례로 순례하면서 용성 조사가 걸어온 길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1998년 4월 23일부터 4월 25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정부로부터 2억 원을 지원받아 ‘아! 백용성 조사’ 음악제를 개최하였다. 이 음악제에 공연된 노래의 노랫말은 도문 법사와 동국대 목정배 교수가 지었으며, 중앙대학교 한국음악과 교수이자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장인 박범훈 예술감독이 작곡 및 지휘를 맡아주었다. 같은 해 경주 남산인 금오산 중 고위산 천룡사지에서 3월의 독립운동가 기념행사 회향법회 및 일체 영가천도 법회를 봉행하였다.
· 집필자 : 유응오




